본문 바로가기

중·러 가스연대, 미국 LNG패권 흔들…“한국에 추가강매 우려”

중앙일보 2019.12.12 00:03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 2일 러시아와 중국은 첫 파이프라인가스(PNG)인 ‘파워 오브 시베리아(POS 1)’의 가동을 시작했다. 양국은 두 번째 PNG인 ‘알타이가스(POS 2)’도 건설할 계획이다. [사진 가스프롬]

지난 2일 러시아와 중국은 첫 파이프라인가스(PNG)인 ‘파워 오브 시베리아(POS 1)’의 가동을 시작했다. 양국은 두 번째 PNG인 ‘알타이가스(POS 2)’도 건설할 계획이다. [사진 가스프롬]

지난 2일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첫 파이프라인가스(PNG)인 ‘파워 오브 시베리아(Power of Siberia·POS 1)’가 가동을 시작하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부국과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 손을 맞잡으면서 후폭풍이 불 것이란 전망이다. 당장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국들이 거대한 중국 시장을 잃은 미국의 등쌀에 비싼 미국산 LNG를 떠안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중·러 잇는 가스 파이프라인 가동
러시아, 싼 가스로 미국 고사 전략
값비싼 미국산 LNG 입지 줄어
“안보·주한미군 카드로 압박할 듯”

중·러 가스연합의 총구는 미국을 향한다. 셰일 혁명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에서 LNG 수출을 확대해 오던 미국의 전략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 시장을 놓칠 경우 미국의 가스 수출 산업이 몰락할 것이란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다. 세계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내년에 세계 최대 가스 수입국에 오른다.
  
한국 LNG 수입분 중 미국산이 20%
 
중국은 2024년까지 전 세계에서 늘어나는 가스 수요의 4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바잉 파워(Buying Power·구매력)가 에너지 패권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러는 최근 빠른 속도로 협력을 강화했다. 이미 양국은 북극에서 LNG를 공동 생산하고 있고, 두 번째 PNG 건설 계획(POS 2)도 세운 상태다.
 
중·러 가스관 연결 계획.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러 가스관 연결 계획.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장 변화에 따른 희생양은 미국의 아시아 우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안보를 빌미로 전통적인 LNG 수입 대국인 한국·일본·대만 등에 강매에 가까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근욱 옥스퍼드에너지연구소(OIES) 선임연구원은 “중국 수출이 어렵다면 결국 비싼 미국산 LNG를 사들일 나라는 안보 프리미엄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라며 “그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인 해당국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산 LNG는 태생적으로 비싸다. 자국의 가스허브지수(미국은 헨리허브지수)에 가격이 연동되는 데다 셰일층에서 가스를 뽑아내는 기술적인 비용, 여기에 태평양을 횡단하는 물류비용 등이 더해지면 1MMBtu(가스측정 단위·1MMBtu=1000ft³)당 8달러 수준으로 팔아야만 수익성이 있다. 이 때문에 인도는 도입 단가가 너무 높다며 미국산 LNG 수입을 사실상 포기했다.
 
전체 LNG 수입분 중 미국산 비중이 20%(2020년대 중반 기준)로 상당히 높은 한국에는 위기가 될 수 있다. 이미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로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LNG 구매 압박을 받았다. 급기야 지난 9월엔 가스공사가 2025년부터 15년간 158만t을 수입하기로 하면서 한국은 세계 최대 미국산 LNG 수입국이 됐다. 익명을 원한 가스공사 출신 전문가는 “정부는 2020년대 중반부터 부족해지는 장기 공급 물량 약 750만t을 러시아~북한을 경유하는 한반도 PNG 프로젝트로 충당할 계획”이라면서 “하지만 미국이 주한미군 카드 등으로 압박할 경우 이 물량 역시 대부분 미국산으로 받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가격 경쟁력이 높은 PNG를 바탕으로 미국을 고사시키는 전략을 펴고 있다. 미·중 갈등 국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PNG로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기존 PNG 수입국인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에도 수출량을 대폭 늘릴 예정이다. 러시아와 가스 수출 교두보인 독일을 잇는 ‘노르드 스트림(Nord Stream) 2’ 가스관은 기존 가스관 대비 수송량이 2배 수준이다. 운영사인 가스프롬은 노르드 스트림 2를 통한 본격적인 수출을 내년 여름으로 잡고 있다. 터키를 경유해 유럽으로 들어가는 남부 루트인 ‘투르크 스트림(Turk Stream)’까지 가동될 경우 미국 LNG의 유럽 공략은 더욱 힘들어진다.
  
“일본처럼 해외 가스전 직접 투자를”
 
지난 2일 가동을 시작한 ‘파워 오브 시베리아’는 약 3000㎞에 이른다. [사진 가스프롬]

지난 2일 가동을 시작한 ‘파워 오브 시베리아’는 약 3000㎞에 이른다. [사진 가스프롬]

러시아는 또 앞으로 가스 대금 결제 통화에서 달러를 배제할 계획이다. 유럽과는 유로화, 중국과는 위안화로 결제하겠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오가는 에너지 시장에서 달러의 영향력을 약화하겠다는 의미다. 최근 가동한 POS 1의 경우 거래 규모가 30년간 4000억 달러(약 476조원)에 달한다.
 
LNG 시장에서도 러시아는 다크호스다. 러시아의 북극 LNG 사업을 이끄는 노바텍은 내년 착공하는 북극 LNG 2의 경우 미국산 LNG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아시아 시장에 공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본은 이 프로젝트에 지분 참여(지분율 10%, 198만t)를 했지만 한국은 검토만 하다 시기를 놓쳤다.<중앙일보 6월 27일자 B2면, 7월 5일자 2면>

관련기사

 
류지철 전 에너지경제연구원 동북아에너지센터장은 “과거 한국은 정주영(전 현대그룹 회장), 정태수(전 한보그룹 회장)로 상징되는 ‘오너 비즈니스’를 통해 러시아 시장에 접근했지만 지금은 그런 큰 모멘텀이 될 만한 프로젝트가 없다”면서 “중국이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한국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짚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백 선임연구원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LNG를 비싸게 도입했던 일본은 호주 가스전에 직접 투자하고, 인도네시아에선 로열더치셸과 공동 투자하는 등 자체적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며 “한국도 보다 싸고 다양한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전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