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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유산슬·촌므파탈·선넘규·곽철용…탈권위로 떴다

중앙일보 2019.12.12 00:02 종합 25면 지면보기
올 한 해 대중문화계에선 새로운 캐릭터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남극에서 온 펭귄 ‘펭수’를 비롯해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촌므파탈’ 주인공 등 뭔가 엉성해 보이는 B급 감성 캐릭터들이 특히 각광받았다. 비주류에서 출발했지만 기존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대세로 우뚝 선 이들의 성장담이 경쟁 사회 속 고달픈 대중에게 위로와 대리만족을 준 한 해였다. ‘2019 대중문화 히트 캐릭터 5’를 꼽아본다.
  

2019 히트 캐릭터
고정관념 깨는 사이다 행보
젊은 층 중심 열광 반응
방송국 경계도 무너뜨려

SBS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 펭수.

SBS ‘정글의 법칙’에 출연한 펭수.

◆펭수=교육방송 EBS가 어린이 프로그램(‘생방송 톡!톡! 보니하니’)용으로 만든 캐릭터지만 2030 직장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직통령’ 대접을 받고 있다. 사장 이름까지 거침 없이 부르는 ‘사이다’ 행보 덕이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진행한  ‘올해의 인물’ 투표에선 방탄소년단(BTS)를 누르고 방송연예 분야 1위를 차지했다. “눈치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눈치 챙겨” “다 잘할 순 없다. 잘 하는 게 분명 있을 거고, 그걸 더 잘하면 된다” 등이 대표적인 어록.
 
나이는 열 살, 남극유치원을 졸업한 뒤 우주대스타를 꿈꾸며 뽀로로의 나라 한국으로 왔고, 오는 길에 스위스에 들러 요들송을 배웠다는 등 펭수만의 스토리와 세계관이 젊은 세대들의 열광과 ‘덕질’을 끌어내고 있다. 카카오톡 펭수 이모티콘은 지난달 13일 출시되자마자 판매 1위로 올라섰고, 지난달 29일 예약판매를 시작한 펭수 에세이 다이어리는 아직 출간 전인데도 벌써 10만 부 넘게 팔렸다. 펭수의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의 구독자 수는 11일 현재 128만 명이다.
 
소속은 EBS지만 펭수의 무대엔 울타리가 없다. ‘아는 형님’(JTBC), ‘정글의 법칙’(SBS) 등에 출연한 데 이어 오는 29일엔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자로 나선다. 정관장의 내년 설 CF 모델로 발탁돼 첫 상업 광고도 찍었다.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활동하는 유재석.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활동하는 유재석.

◆유산슬=유산슬은 MBC 김태호 PD가 ‘무한도전’ 이후 1년 4개월 만에 방송에 복귀하면서 내놓은 새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속 캐릭터다. ‘놀면 뭐하니?’는 유일한 고정 출연자 유재석이 릴레이 카메라와 드럼 프로젝트 등을 무한도전 식으로 펼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젝트 중 하나인 ‘뽕포유’에서 유재석은 유산슬이란 예명을 받아들고 트로트 가수에 도전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박토벤’ 박현우, ‘정차르트’ 정경천 등 트로트계 재야 고수들이 어설픈 유산슬을 키워가는 과정이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쾌감을 선사한 것.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 등의 신곡들은 음원 차트에까지 올랐다. 유산슬에게도 방송사 경계는 없다. 지난달 18일 KBS1 ‘아침마당’에 출연한 데 이어 오는 18일엔  SBS ‘영재발굴단’ 무대에 선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김태호 PD는 1인 크리에이터 중심인 유튜브 콘텐트의 틀을 TV 방송에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고 평했다.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촌므파탈’ 용식(강하늘).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촌므파탈’ 용식(강하늘).

◆촌므파탈=올 하반기 최고 히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KBS2)의 남주인공 용식(강하늘)을 가리키는 ‘촌므파탈’은 ‘촌스러움’과 ‘옴므파탈’의 합성어. 촌스러우면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남자를 뜻한다. 충청도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용식은 전문직도, 재벌 2세도, 나쁜남자도 아니다. 출생의 비밀이나 불치의 병 등 돌발 상황과도 거리가 멀고,  ‘밀당’도 전혀 없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여주인공을 좋아하고 인정하고 지지한다. 드라마 속 남주인공으로선 전에 없던 캐릭터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백(공효진)에게 “내가 내 여자를 귀하게 모셔야 남들도 함부로 못하는 것”이라며 “손을 안 잡겠다”고 선언하는 모습도 촌스러움 그 자체다. “동백씨 손을 닭발이나 우족이다 생각하면 된다”니, 낭만과는 거리가 먼데도 남성적 매력은 도리어 강화됐다. ‘촌므파탈’의 부상은 ‘잘났지만 피곤한 남자’ 대신 ‘못나도 편안한 남자’에 대한 대중의 판타지가 더 크다는 방증이다.
 
‘워크맨’에서 아르바이트 체험에 나선 장성규. [각 방송]

‘워크맨’에서 아르바이트 체험에 나선 장성규. [각 방송]

◆선넘규=‘선 넘는 장성규’의 줄임말. ‘선 넘는’은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장성규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다. 2011년 JTBC 공채 1기 아나운서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지난 4월 프리 선언을 한 뒤 7월 론칭한 유튜브 채널 ‘워크맨’을 통해 독보적인 예능감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체험 형식의 ‘워크맨’에서 장성규는 불쾌감과 해방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웃음을 끌어낸다. 5개월 만에 구독자 350만을 돌파한 ‘워크맨’은 2019년에 신설된 전세계 유튜브 채널 중 구독자 수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넘규’ 캐릭터의 인기 덕에 장성규는 지난 9월 MBC FM4U ‘굿모닝 FM 장성규입니다’의 DJ로 발탁된 데 이어 KBS 2TV ‘슬기로운 어른이 생활’, MBC ‘오! 나의 파트, 너’ MC까지 꿰찼다.
 
영화 ‘타짜1’의 곽철용(김응수). [사진 유튜브 캡처]

영화 ‘타짜1’의 곽철용(김응수). [사진 유튜브 캡처]

◆곽철용=2019 히트 캐릭터 중 가장 뜬금없는 방식으로 부상한 캐릭터다. 곽철용은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1’에서 배우 김응수가 연기한 인물인데, 올 추석 무렵 ‘타짜3’가 개봉하면서 13년 만에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타짜1’이 훨씬 재미있었다는 여론이 대중의 숨은 영웅 찾기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특히 고니(조승우)와의 도박판에서 곽철용이 한 대사 “묻고 더블로 가”는 유행어로 떠올랐고, 각종 패러디의 대상이 됐다. “나도 순정이 있다” “젊은 친구, 신사답게 행동해” 등 남성스러움을 희화화한 곽철용의 대사도 신세대의 탈권위 감성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새삼 대세 스타로 떠오른 김응수는 BBQ 치킨과 버거킹 광고 모델로 발탁돼 곽철용 캐릭터를 광고에서 재현했다. 또 최근엔 래퍼 머쉬베놈의 신곡 피처링에도 참여해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도 “가오 묻고 멋 따블로 가”라며 곽철용 캐릭터로 랩을 구사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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