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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인사이트] 역대정권 실패한 구조조정, 마크롱이 성공한 비결은

중앙일보 2019.12.11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집권 3년차 프랑스 마크롱의 리더십

2017년 5월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을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강한 추진력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면서 프랑스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3월 마크롱 대통령이 남부 그레우 레방에서 열린 대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5월 역대 최연소 프랑스 대통령을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강한 추진력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면서 프랑스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3월 마크롱 대통령이 남부 그레우 레방에서 열린 대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의 출범시기도 비슷했고 경제개혁에 대한 열망도 비슷했으니, 이즈음 프랑스의 마크롱 정권을 평가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공과를 따져보는 것이 시의 적절해 보인다. 우리 형편이 딱히 좋지 않은데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제법 호평이어서, 도대체 뭐가 달랐기에 우리는 이렇고 저쪽은 그런가라는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마크롱 정권의 성공은 친기업정책과 친노동정책을
함께 추진해 온 덕분이다”
“노동자는 파업의 권한을 잃었지만, 일상에서 누리는
삶의 질은 이전보다 상승되었다”

경제문제가 제일 궁금하다. 정권 출범 당시 10%를 넘던 실업률이 이제는 8%로 하락했다고 한다. 경제성장률도 독일보다 앞선다고 보도된다.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폭발된 ‘노란 조끼들’의 반정부 행렬도 이제는 누그러졌다고 한다. 도대체 비결이 무엇일까 .  
  
우선 눈에 띄는 정책들은 다음과 같다. 부유세를 폐지했고 법인세를 인하했으며,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기업에 부여했다. 더구나 노동자의 권리를 산별 노조가 아닌 기업별 노조에 한정해서 보호하도록 조치했다. 이른바 노동유연성을 인정하는 정책을 펼쳐 온 것이다. 또 시라크  정부(보수)와 올랑드 정부(진보)가 개혁하려다 실패한 35시간 노동시간제의 임금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혁했다. 그리고 지금은 공공인력을 8만5000명 감축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연금개혁을 대대적으로 단행하겠다고 공포해 둔 상태이다. 이것만 두고 보면 마크롱 정권의 성공은, 보수 우파들이 주장하듯이 친(親)기업 정책을 추진해 온 덕분이다. 그러니 궁금증이 더욱 증폭된다. 강력한 노조의 힘을 자랑하던 프랑스에서 역대 정권이 시도했다가 번번이 실패했던 구조조정 정책을 마크롱 정부는 어떻게 성공적으로 실천할 수 있었을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비책이라도 있었던 걸까.
  
비책은 친기업·친노동 정책의 병행
 
그 비책은 친(親)노동정책을 함께 추진한 데 있었다고 필자는 진단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선 실업보험에 대한 개편이 중요하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분담했던 2.4%의 고용보험료를 없애고 사측만 보험료를 내도록 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담겨 있었는데, 하나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는 노동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조에서도 보험시스템 개혁에 반대할 수 없었고, 정부가 노동개혁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 나아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자영업자에게까지 확대했다. 이른바 ‘직업적 미래 선택의 자유법’이라는 법령에서 찾아 볼 수 있듯이, 자발적 실업자와 자영업자를 실업급여의 대상으로 포함하여 창업이나 직업전환을 유도한 것이다.
 
또 기업의 해고권한을 확대시킨 것과 동시에 장기 고용의 점수가 높은 기업에게는 보너스를 적용해서 차등적으로 고용보험료를 부담하도록 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유도하는 정책이다. 한편 노동자의 재교육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하여 개인교육계좌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직업교육의 시간과 직업교육의 비용이 명시된다. 이 계좌에 쌓이는 포인트는 이직을 해도 누적되며, 은퇴 전까지 유급휴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더구나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랑제꼴과 같은 명문대학에서 저소득자의 자녀에게 장학금 혜택을 더 주도록 하는 교육제도를 개선했다. 교육과 경제를 연계하여 보편적 복지의 규모를 확대한 것이다. 그리고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국공립 병원에 대규모의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서민 복지에도 만전을 기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는 파업의 권한을 잃었지만, 일상에서 누리는 삶의 질은 이전보다 상승되었다.
  
‘노란조끼’ 껴안은 소통의 리더십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여기에 더하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보인 소통의 리더십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마크롱은 2019년 초반 3개월이 넘는 시간을 소위 ‘국가 대토론( Le Grand Debat National)’의 기간으로 정하고 거리로 나온 노란조끼 부대들뿐만 아니라 경영악화에 힘들어 하는 중소기업의 사장들을 일일이 만나서, 얘기를 듣고 토론하고 정부의 계획을 설명했다.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노동자들의 파업장소에 나타나 진진하게 그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했으며, 종종 6시간이 넘는 마라톤 토론을 통해서 정부에 반대하던 노동자들을 설득하여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것에 비교하면 한국경제의 해법은 너무 단순하지 않은가.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것이 결국은 노동자들의 유효수요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서 경제성장의 동인을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또 공공부분의 일자리를 늘리고 비정규직을 줄여가는 정책도 정부가 재정정책을 동원하여 고용기회를 확대하고, 임금의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다. 이것은 대공황을 맞이하여 미국이 실시했던 케인주의적 정책의 아류에 불과하다.
 
52시간 노동시간제도 마찬가지다. 이는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에서 이미 20년 전에 프랑스에서 실시된 바 있고, 시간 대비 임금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생산성이 좋지 않다고 판결이 난 낙후된 정책이다. 한물 간 정책을 들고 국가가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디지털 경제를 목전에 둔 한국사회에서는 시대착오적일 수 밖에 없다. 현장을 모른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정권이 노동자 유효수요관리에 방점을 찍고 있는 이유는 전 정권에 대한 차별화 전략 때문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펼친 기업정책이 법인세를 낮추거나 개발사업에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을 낙후시켰다고 비판했으며, 그로 인해서 현 정권이 탄생했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펼칠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비되는 문재인 정권의 조정능력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고 경제를 살리는 방식은 이념 대결이나 여야의 정치투쟁과는 다른 것이다.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국민 전체가 먹고 살기 힘들고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일자리도 생기기 힘든 것이 뻔한데, 친 기업정책은 나쁜 것이고 친 노동정책만 좋은 것이라는 발상은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다. 고용의 평등과 기업의 성장은 함께 달성되어야 할 공동의 목표이다.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면, 그래서 국민들이 조금 더 윤택하게 살 수 있다면 국가가 주도하는 친 노동정책도, 시장이 주도하는 친 기업정책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도 마찬가지이다. 트럼프가 나토의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면서 유럽국가와 대결양상을 보일 때, 마크롱은 이민문제를 들고 나와 유럽연합 상임이사국의 신임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서 나토의 미래를 결정하는 논의 중에 프랑스의 입김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요구에 맞서 대미관계도 점차 악화되는 분위기이고, 남북관계에서도 소외되고 있으며 일본과의 관계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년 보수정권이 아집에 가까운 측근정치와 이념대결로 폭망했다면 문재인 정권도 “나만 옳다”는 정의감과 고집스러운 운동권의 논리로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경제뿐만 아니라 외교도 위험해 보이는 지금, 그래서 마크롱 정권의 성공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념과 원칙에 충실하면 논리적으로 당당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을 위한 정치란 결국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용하고 설득하고 포용할 수 있는 조정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조정능력이 문제이다.
 
키워드
에마뉘엘 마크롱
42세. 2017년 중도 정당 ‘레퓌블라크 앙마르슈’를 창당해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으로 당선하고 그 해 5월 취임했다. 강도 높은 노동 개혁과 구조조정 정책으로 청년 실업, 강성 노조 문제 등 ‘프랑스 병’을 단시간 내에 치유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가 대토론(Le Grand Debat National)
올 1월 노르망디에서 열린 토론회를 시작으로 3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각계 각층 유권자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500여명의 참석자가 마크롱을 원형으로 둘러싼 가운데 3∼6시간씩 대통령과 난상토론을 벌이는 형식이다. 
◆홍성민
파리10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0년부터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화정치학 서설: 한국진보정치의 새로운 모색』 등의 저서를 냈다.

  
홍성민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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