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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을 배신자로 기억하는 남자···진보 40년 인연 심재철

중앙일보 2019.12.10 05:00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9일 자유한국당 새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된 심재철 원내대표는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정국에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맡아 학생운동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ㆍ개혁 정당 내 86 그룹과 인연도 당시 신군부에 맞서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학생운동을 이끌면서 맺었다. 다만 진보 진영은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시위 당시 심 원내대표의 철수 결정이 5ㆍ17 쿠데타로 이어졌다는 점을 비판한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 결정이다.
 
심 원내대표는 그해 6월 30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피의자 중 한 명으로 체포됐다. 당시 체포된 명단 중엔 이해찬 민주당 대표, 설훈 민주당 최고위원 등도 포함돼 있다. 이 대표는 당시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었으며 ‘내란음모를 위한 학생운동의 총책’으로 지목됐다. 심 원내대표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됐다는 죄목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심 원내대표는 1983년 특별복권된 뒤 1985년 중학교 영어교사로 일했다. 1년이 채 안 돼 MBC 기자로 입사한 그는 1987년 MBC 노동조합을 설립해 초대 전임자를 지냈다. 1992년 방송 민주화를 요구하며 MBC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심 원내대표와 같은 서울대 학생운동권 출신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당시 노조 설립을 돕기 위해 MBC 강연을 나선 적도 있다.
 
숫자로보는 인물 심재철

숫자로보는 인물 심재철

심 원내대표가 진보 진영 정치인들과 갈라서게 된 건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면서부터다. 당시 신한국당은 심 원내대표가 투신했던 학생운동을 탄압했던 공화ㆍ민주정의당의 후신이어서 진보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심 원내대표는 15대 총선에선 낙선하고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선돼 원내에 입성했다.
 
심 원내대표는 지난 5월엔 학생운동 시절 동지였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1980년 당시의 일을 두고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심 원내대표는 유 이사장을 지목해 “21살 재기 넘치는 청년의 90쪽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 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유 이사장의 진술서가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주장이다. 유 이사장은 “비밀 조직은 지켰다”고 반박하며 논란이 가열됐다. 심 원내대표와 서울대 77학번으로 동기이고 당시 서울대 학생회 부활추진위 총무위원장이었던 유기홍 전 의원은 심 원내대표를 향해 “한 때 친구였던 자네가 크게 헛발질했다”며 유 이사장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최근 심 원내대표는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을 제기하며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등의 연루설을 주장했다. 이에 양 원장이 “심재철에게 보내는 시”라며 김현승 시인의 ‘양심의 금속성’이란 시로 응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양 원장은 “부디 양심을 돌아보면서 진실하고 수준 높은 정치를 해달라는 부탁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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