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후남의 영화몽상] 20년 뒤가 더 궁금한 리더,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

중앙일보 2019.12.10 00:15 종합 27면 지면보기
이후남 문화디렉터

이후남 문화디렉터

‘겨울왕국2’가 1편보다 재미있다고는 못하겠다. 속편의 숙명대로 또 모험에 나서야 하는데, 초반의 전개는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평이했다. 그런데도 결국 감동을 받았다. 스포일러를 피해서 말하자면, 주인공 엘사와 안나 자매가 위기에 처했을 때, 특히 지난 역사의 비밀이 드러났을 때 대처한 방식 때문이다.
 
현실의 정치 지도자라면 책임 소재를 추궁하거나, 반대로 면죄부를 얻으려 하거나, 아니면 ‘역사 바로 세우기’라도 할 법한데 아렌델 왕국의 엘사 여왕과 안나 공주는 조금의 좌고우면도 없다. 그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투구한다. 망설임 없는 행동은 러닝타임 안에 스토리를 끝내야 하는 탓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보아온 크고 작은 조직의 리더들에 비교하면 분명 신선했다.
 
‘겨울왕국2’에서 엘사는 한층 강력한 마법을, 안나는 마법 대신 인간적 능력을 발휘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겨울왕국2’에서 엘사는 한층 강력한 마법을, 안나는 마법 대신 인간적 능력을 발휘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 업무 능력은 몰라도 눈치는 늘어난다. 발칙했던 신입도 점차 조직에 융합 또는 순응하는 데 익숙해진다. 자리가 올라가도, 어쩌면 올라갈수록 그런 것 같다. 물론 월급쟁이 평민과 날 때부터 공주인 자매를 비교하는 건 무리다. 한데 엘사와 안나는 1편부터 보통 공주가 아니었다. 왕자가 공주를 구하는 공주 이야기의 규칙을 단호하게 깨뜨린 주인공들이다. 그랬던 만큼 2편에서 성장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그 리더십을 지지하고 싶어진다.
 
세월이 흐르면 자매도 달라질까. 더 궁금한 건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어린 관객들의 미래다. 여성이라면,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에 눈치껏 편입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판을 벌이는 주인공이 되기를 기대하게 된다.
 
긍정적 의미의 규칙 파괴자는 빼어난 추리소설을 연상시키는 영화 ‘나이브즈 아웃(Knives Out)’에도 나온다.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는 ‘겨울왕국2’에 이어 2위에 올라있다. 이 영화에서도 규칙 파괴자가 여성이라는 건 스포일러는 아닐 듯싶다.
 
이후남 문화디렉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