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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손녀, 말 나올까봐 하나고 포기…대치동 이사가려 했다”

중앙일보 2019.12.10 00:05 종합 2면 지면보기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공정·공평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2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공정·공평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명함 속 ‘고문’ 직함이 아직 좀 낯설다. 그를 회장이나 이사장이라 칭하는 데 더 익숙해서다. 하나금융지주 회장(2005~2012년)과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2009~2013년), 학교법인 하나학원 이사장(2009~2016년)을 지낸 김승유 한국투자금융지주 고문을 지난 2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2년 전 농가주택을 짓고 정착한 충남 당진에서 이날 아침 차를 몰고 서울에 왔다고 했다. 교육정책을 주제로 시작된 인터뷰가 최근의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영화 ‘블랙머니’로 확대됐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정부 손 떼야 할 것 중 하나가 대입
자사고 없애면 교육이 정상화되나

DLF·DLS…터무니없는 상품
고객이 동의했더라도 걸러줘야
론스타 다룬 영화, 설정 말 안돼

2010년 개교한 하나고가 내년이면 개교 10주년이다. 우여곡절 속에도 모두 인정하는 명문고가 됐다.
“내가 교육을 뭘 알았겠나. 하나고를 만들 때 ‘전문가한테 맡기자’ 해서 교육연구소에 용역을 줬다. 그때 나온 게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하는 교과과목제, 예술·체육 활동을 1개씩 해야 하는 1인2기 교육이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끝없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대학입시에 모든 교육제도를 건다. 대통령 한마디에 일주일 만에 교육제도 바꾸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나.”
 
하나고는 ‘공교육 정상화’를 내세운 학교인데, 정부는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를 부추긴다며 일괄 폐지하겠다고 한다.
“공정·공평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하나고는 20%를 사회통합 전형으로 뽑는다. 이를 통해 하나고에 들어온 보육시설 출신 학생이 명문대에 입학했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닌가. 정말 자사고·외고를 없애면 우리 교육이 정상화되나. 부작용이 있으면 찾아내서 개선해야지, 그 자체를 없애라고 하면 되나.”
 
심각했던 그의 표정이 “외손녀가 중학교 3학년”이라는 말과 함께 살짝 밝아졌다. 그는 “외손녀가 공부를 잘하는데, 꿈이 하나고에 오는 거였다”면서 “요새 같은 때 (말 나올까 봐) 아예 지원을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외손녀의 일반고 진학을 앞두고 딸이 지난여름에 이사를 계획하다가 집값이 너무 치솟아 결국 포기했다고도 했다. 이사하려던 지역이 어디였는지 슬쩍 물어보니 대치동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나고 만들 때 교육전문가에게 맡겼다”  
 
정시를 확대한다니 강남 집값이 뛴다.
“사교육 과열이 심해지자 도입한 게 수시전형인데 온갖 전형이 생겨서 학생과 학부모가 이해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정부가 서서히 손 떼야 할 몇 가지 것 중 하나가 대학입시다. 공정성에 위배되면 과감하게 철퇴를 가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지 ‘밥을 어떻게 떠서 어떻게 먹고 어떻게 씹어라’까지 하는 건 아니다.”
 
교육정책에 있어 정부가 전체적인 시장을 넓게 봐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자연스레 금융 이야기로 이어졌다.
 
파생결합증권(DLF) 사태로 KEB하나은행이 시끄러웠다.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DLF니, DLS(파생결합증권)니 그런 건 사실 터무니없는 상품이다. 그게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관리)에서 걸러지지 않는다는 것, 고객이 동의서 썼다고 해서 그냥 판다는 것, 그건 프로페셔널로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하나은행은 전통적으로 프라이빗뱅킹(PB)에 강했다.
“그래서 우리(하나은행의 강점)가 그건데, 최대 이익이 4% 정도인데 최대 손실은 100%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그건 아무리 고객이 동의하더라도 걸러줘야 한다. 이게 조직의 컬처(문화)가 돼야 한다. 신한·국민은행은 (DLF를) 안 팔았다.”
 
론스타 사건을 다룬 영화 '블랙머니'. [중앙포토]

론스타 사건을 다룬 영화 '블랙머니'. [중앙포토]

한탄하듯 은행의 조직문화를 지적하던 그는 금융당국의 규제 일변도 정책엔 목소리를 높였다.
 
“(DLF 사태 이야기로) 돌아가서, 은행이 잘못했으니까 이제 판매 못 해? 그건 또 안 될 일이다. 파생상품은 은행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투자은행(IB)과 손잡고 같이 상품을 개발한다. 그런데 이렇게 규제하면 그다음엔 한국에 시장이 없으니까 해외 IB와의 네트워크가 끊긴다. DLF 사태에 대해서는 분명히 제재해야 하지만 전반적으로 막는 것은 잘못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일주일 만에 교육 바꿔”
 
최근 개봉한 영화 ‘블랙머니’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을 영화화했다고 알려진 작품이다.
 
영화에서 ‘자산가치 70조원짜리 은행이 1조7000억원에 팔렸다’고 나온다.
“‘검은 머리 외국인(외국인으로 가장한 한국인)’이 투자했다는 설정인데 말이 안 된다.”
 
내년에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투자자 간 소송(ISD)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지난 5월 국제상공회의소(ICC) 재판에서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에 전부 승소했다.
“ICC 승소는 영화에 안 나오더라. 지난해 12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재판에 열흘간 참석했다. 론스타가 협상 과정에서 나와 통화한 내용을 몰래 녹취했더라. 론스타 측이 ‘정부가 시켜서 매각가를 깎으려는 거냐’고 여러 번 물어봤지만 나는 ‘아니다. 정부와 관계없이 너와 내가 협상하는 거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중재인이 우리 손을 들어줬다.”
 
그는 영화 ‘블랙머니’ 속 설정이 왜 말이 안 되는 소리인지 설명을 덧붙였다.
 
“사모펀드는 주주가 누군지를 공개 안 하는데 한창 협상을 진행할 때 미국 각 지역 상·하원 의원들이 주미 한국대사관에 압박을 넣었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까 대학 기금과 목사 퇴직금, 소방관 퇴직금 같은 연기금이 론스타 주주로 들어와 있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 아니다. 구체적인 주주가 있다.”
 
한애란·정용환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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