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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아기처럼 대하면 노인복지? 디지털을 알려다오

중앙일보 2019.12.09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59) 

“이것 좀 어떻게 하는지 종이에 크게 한 장 써다오.” 이번에는 찍은 사진을 곧바로 카카오톡으로 전송하는 게 헷갈리시는가 보다. 몇 번 해드려 봤지만 그렇게 써드려서 될 일이 아니다.
 
평생을 지혜롭고 요령 있게 살아오신 어머니께 스마트폰은 뒤늦게 나타난 큰 도전이다. 어려운 기능은 욕심내지 않더라도 당장 카톡이라도 원활하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침침한 눈과 둔해진 손으로는 그리 만만치 않다. 매번 컨디션에 따라 활용 정도가 달라지신다.
 
스마트폰은 어머니께서 노후에 만난 가장 큰 ‘도전’이다. 들어도 늘 잊어버린다고 하시고, 컨디션에 따라 활용 정도도 달라지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스마트폰은 어머니께서 노후에 만난 가장 큰 ‘도전’이다. 들어도 늘 잊어버린다고 하시고, 컨디션에 따라 활용 정도도 달라지지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꾹꾹 누르기만 하면 집 밖에서 전화도 되고 문자도 되던 ‘훌륭한 2G폰’ 시대에는 세상이 편했는데 그건 다 어디 가고 이런 맹랑한 게 사람을 괴롭히냐고 하신다. 신문명에 대한 답답함과 세월에 대한 서글픔이 동시에 느껴진다.
 
전부터 ‘꽃꽂이나 서예 교실은 많은데 왜 노인 대상 스마트폰 교실은 없을까?’ 생각했다. 요즘은 주민센터 같은 곳에 많이 개설되어 있지만 이제 걷기 힘들어서 못 가신다.
 
디지털 소외가 어머니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50대 이상, 게다가 직장생활도 끝난 세대라면 대부분 위기감을 느낀다. 노년으로 갈수록 심해질 것이고, 쌩쌩한 30~40대도 언젠가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니 모두의 문제다. 그걸 실감하게 되는 일이 몇 건 있었다.
 
얼마 전에 모 항공사의 메일을 받았다. 항공권을 모바일이나 공항의 무인 키오스크에서 발권할 수 있으면서 굳이 창구에 와서 발급받으면 수수료를 받겠다는 안내였다. 면제 대상도 적혀 있었다. 유아동반자, 교통약자처럼 직원 도움이 필요한 손님한테는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인데, VIP 고객도 포함되어 있다. ‘VIP면 자기 힘으로 무인발권 못하나?’ 하며 심사가 약간 꼬이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에는 근처 경동시장에서 장을 봐가는 노인들이 많다. 재미로 소일 삼아 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젊은 세대처럼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다면 훨씬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박헌정]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에는 근처 경동시장에서 장을 봐가는 노인들이 많다. 재미로 소일 삼아 다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젊은 세대처럼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다면 훨씬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쇼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박헌정]

 
그건 좋다. 적어도 ‘몇 세 이상’ 규정은 있을 줄 알았는데 자세히 읽어봐도 없다. 이제 인터넷이나 기계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공항에서 3000원 더 써야 한다.
 
또 있다. 금융감독원은 앞으로 은행 통장도 발급비용을 부과하겠다던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반발여론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디지털화 추세라면 굳이 강제하지 않아도 되겠단다. 디지털을 잘 이해 못 하는 세대가 사라지면 자연히 해결된다는 소리처럼 들린다.(금감원이 개별기업의 통장비용까지 간여하는 게 금융보안 차원인지 은행 수익과 경영건전성 차원인지 그것도 아니면 환경 차원인지 알 수 없다.)
 
온라인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은 가뜩이나 점포와 창구가 줄어 대기시간도 길어졌는데 돈까지 2000원씩 낼 뻔했다. 노인을 위한 큰 글씨의 스마트폰 사용설명서 하나 없는 세상에서 말이다. 통장발급 아니더라도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면 수수료 면제나 금리 혜택을 받으니 이미 디지털 소외계층은 상대적인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노인 세대는 돈 걱정, 건강 걱정만 없다면 늘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인들이 지닌 지적(知的) 욕구까지 생각해야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복지’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것 아닐까. [사진 Pixabay]

우리는 노인 세대는 돈 걱정, 건강 걱정만 없다면 늘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노인들이 지닌 지적(知的) 욕구까지 생각해야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복지’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는 것 아닐까. [사진 Pixabay]

 
그러니 노인들이 뭐 바쁘다고 저렇게 신호등 바뀌려고 하는데 길을 막 건너시냐고 짜증 낼 게 아니다. 집에서 컴퓨터로 할 수 없으니 해 짧은 겨울에 은행도 가고 시장도 가려고 바쁘다. 그렇게 열심히 다녀도 인터넷에서 가격비교 해서 새벽배송 시키는 젊은 층보다 더 비싸게 사서 직접 가져와야 한다. 그게 ‘소외’의 모습이다.
 
‘그럼 우리 사회는 윗사람들에게 야박한 패륜사회인가?’ 하고 생각해 보면, 그건 또 다른 문제 같다. 동네 내과에 가면 65세 이상은 독감 예방접종이 무료라고 크게 적혀 있다. 정형외과에서 노인들이 적은 비용으로 아주 정성스러운 물리치료를 받고 흡족해하시는 걸 보면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가 이 세상의 효자들이다.
 
어머니께서는 아파트 노인센터에만 다녀오시면 “나라에서 노인한테 이렇게 돈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신다. 한 달에 20일간 점심을 제공받는데 1만 원만 내면 된단다. 이미 편성된 노인예산은 쓰기 바쁜가 보다. 제도와 재정만 보면 치매 문제도 이미 극복한 나라 같다.
 
온갖 대책을 늘어놓는 관(官), 이윤 때문에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도 외면하는 민(民), 노인은 그 사이에서 체면을 잃는다.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논쟁도 잊힐 만하면 튀어나와 결론도 없이 세대 간에 싸움만 붙이다 사라진다.
 
요즘은 스마트폰 강좌가 많이 열리지만 정작 더 필요했을 10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노인 세대에까지 대중화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아예 ‘젊은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사진 전주시 평생학습관 홈페이지]

요즘은 스마트폰 강좌가 많이 열리지만 정작 더 필요했을 10년 전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노인 세대에까지 대중화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아예 ‘젊은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사진 전주시 평생학습관 홈페이지]

 
우리 사회의 노인정책은 ‘평균수명 증대를 위한 건강 비용은 책임지겠지만 디지털 시대를 살아야 할 지적 비용은 각자 알아서 하세요’, 이게 현실인 것 같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노인을 애기처럼 지적 무능력 상태로 간주하고 그들 이야기 들어주고 놀아주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이성’ 부분은 빠져있다. 그러니 현장 사람들만 힘들 것 같다.
 
말로는 공경과 복지를 외치면서 정작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외면하고 병원 보내주고 공짜 차 태워주는 건, 돈으로 ‘때우는’ 복지다. 부모님께 “그냥 편하게 쉬세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하는 게 효도가 아니다. 그 말 앞에 “잘 아시지도 못하면서”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다 때 되면 한 번씩 부모 노후자금 빼갈지 모른다. 우리 노인정책도 “그냥 쉬세요” 하다가 때 되면 표만 걷어갈 게 아니라 ‘잘 아시게’ 해드려야 한다. 디지털을 말이다.
 
노인들끼리 10원짜리 고스톱 치다가 가끔 다툰다는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스마트폰으로 하면 싸울 일도, 멤버 기다릴 일도 없는데.”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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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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