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평균 58점' 낙제수준 대출상품 이해력, 70점으로 확 끌어올린 이것

중앙일보 2019.12.09 06:00
대출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과도한 채무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 [연합뉴스]

대출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과도한 채무를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 [연합뉴스]

 
은행에서 1억2000만원을 신용대출로 빌린다. 상품설명서와 기본약관 자료를 보며 은행원의 설명을 5분간 듣고, 이후 18분 동안 자료를 다시 읽는다. 그리고 대출상품에 대한 이해력 시험을 본다. 평균 점수는 몇점이나 나올까. 
 
8일 금융연구원은 ‘가계대출 안내방식 개선을 위한 연구: 핵심상품설명서를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지난 5월 한 대학교에서 학생 159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실험은 만기 3년인 가상의 신용대출 상품을 만들어, 실제 은행 대출계 직원의 설명 내용을 녹음한 것을 들려주는 식으로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대출상품에 가입할 때 창구에서 15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실험을 설계했다.
 
그 결과 전체 학생의 평균 점수는 62.7점에 그쳤다. 간신히 낙제를 면한 수준이다. 이는 지난 1월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우리 국민의 금융이해력 점수(평균 62.2점)와 비슷한 수준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64.9점). 그런데 이번 실험에서 평균 점수보다 중요한 건 그룹별 점수 차이다.  
 

무용지물 핵심상품설명서

그룹 A는 여신거래 기본약관과 가계대출 상품 설명서만 제공받은 그룹이다. 이들의 평균 점수는 58점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특히 연체이자율이나 인지세가 얼마인지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약관과 설명서의 내용이 많고 복잡한 탓이다. 약관은 5쪽, 상품 설명서는 3쪽 분량에 달한다. 소비자들이 전체 내용을 숙지하기엔 주의집중에 한계가 있다.  
 
그룹 B는 A보다 2점 높은 60점을 받았다. 상품설명서와 기본약관에 추가로 1쪽짜리 핵심상품설명서를 받은 경우다. 핵심상품설명서는 소비자의 이해도 제고 차원에서 2007년 도입됐다가 2015년 서류 간소화를 이유로 폐지됐다. 이후 올해 1월에 다시 가계대출에 핵심상품설명서가 추가됐다. 따라서 현재 은행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그룹 B와 같은 수준의 정보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핵심상품설명서를 받지 않은 A그룹과 점수 차이가 2점에 불과한 데서 알 수 있듯이 핵심상품설명서는 이해도를 높이는데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그 형식 때문이다. 핵심상품설명서는 중요한 내용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는데, 대부분의 답이 ‘상품설명서를 확인하라’이다. 상당히 불친절하다. 항목마다 상품설명서를 다시 찾아봐야 하는 추가적인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실제 이를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왼쪽은 현재 은행권에서 사용하는 '핵심상품설명서'의 일부 항목. 오른쪽은 금융연구원이 개발한 그림, 도표 중심의 대안적 핵심상품설명서의 항목. [금융연구원]

왼쪽은 현재 은행권에서 사용하는 '핵심상품설명서'의 일부 항목. 오른쪽은 금융연구원이 개발한 그림, 도표 중심의 대안적 핵심상품설명서의 항목. [금융연구원]

 

그림·도표로 요약하자 이해도 쑥

연구팀은 그룹 C에 주목했다. 금융연구원이 행태경제학을 기반으로 새로 만든 ‘대안 핵심상품설명서’를 받은 그룹이다. 1페이지 안에 대출금리, 연체이자, 금리인하권 같은 주요 내용을 도표와 그림 중심으로 요약했다. 이 그룹의 평균점수는 70점. 약관·설명서만 받은 A나 은행권이 현재 사용 중인 질의응답 형식의 핵심상품설명서를 추가로 받은 B그룹과 비교해 점수가 14% 넘게 뛰었다. 간단 명료하면서 한눈에 들어오는 형식이다 보니 이해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문장 위주 설명은 금융소비자가 처음부터 읽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가계대출의 핵심상품설명서나 보험상품의 상품요약서를 그림·도표·키워드 중심으로 대폭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작은 화면으로 자료를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림과 도표 위주로 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