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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 악플의 고통, 좀비처럼 무서운데 “욕설 없다” 처벌 안 해

중앙일보 2019.12.09 00:29 종합 26면 지면보기

여성연예인 죽음으로 몰아간 악성 댓글 실태

녹색당과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고(故) 구하라씨의 전 남자친구 최모씨 1심 재판을 했던 부장판사에 대해 ’스스로 법복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녹색당과 성적폐 카르텔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고(故) 구하라씨의 전 남자친구 최모씨 1심 재판을 했던 부장판사에 대해 ’스스로 법복을 벗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저는 그분의 죽음이 예능계에서 일어난 특유의 죽음이 아니라 너무나 한국 사회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어떤 일군의 집단이 대체 무엇을 향해서 저렇게 낄낄거리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으로 너무나 마음이 어지러웠어요.”
 

수법 지능화하고 교묘해지지만
법원·검찰 둔감하고 용어도 몰라
한국이 견고한 조직 안에 사는
기득권 남성들의 사회이기 때문

지난달 26일 창비 문학상 시상식에서 제 34회 ‘만해문학상’을 받은 황정은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가 3일 동안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구하라씨의 죽음”이라며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 안에 고여 있는 사랑이 심각하게 졸아드는 걸 느낀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이 멍해졌다. 불과 이틀 전 일인데 벌써 잊고 있었다니…. 나는 왜 그 ‘낄낄거림’들을 심각한 문제로 느끼지 못한 걸까. 낄낄거리는 그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대중 인기로 사는데 악평도 감수해야?
 
‘대단하다 너도….’ ‘한국에 안 오면 된다!!’ ‘완전 관종에 참나 재수 절라 없네.’ ‘얘 보면 징그러워….’
 
지난 9월 말 구하라씨가 일본에서 솔로로 데뷔했다는 기사에 이런 댓글들이 붙었다. 한 블로거는 사망 속보가 나오기 직전까지 기사에 달렸던 악성 댓글(악플)을 지적하며 “설령 법이 그들을 처벌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알아서 자멸하거나 비루한 세상에서 나오지 못하기를 소망한다”고 적었다. 심한 욕설이 담긴 게 아니라면 그 정도 댓글은 연예인이 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데 악평(惡評)도 감수해야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댓글들의 표적이 당신이라면? 적의를 품은 댓글들이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걸 시시각각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마음은 어떨까.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씨는 최근 한 방송에서 “방송이 나간 뒤 ‘(출연진) 다섯 명 다 보통이 아니더라. 그러니 이혼을 당했지’ ‘이혼당해도 싸다’ 같은 댓글을 봤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표현은 자제해 달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별명 쓰거나 주어 없이 악플 공격
 
‘단 한 명에 대한 악플을 모아서 단순 출력한 분량입니다. 이런 감정의 쓰레기 더미가 매일 온몸에 끼얹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고승우 변호사는 지난 10월 인스타그램에 서류 뭉치 사진을 올렸다. 고 변호사는 “원색적인 욕설도 많지만, 악플 단속이 잇따르면서 최근엔 ‘고소 각을 잰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교묘하게 댓글을 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아이돌에 대해 팬덤들끼리 통하는 별명이나 표현, 용어를 쓰며 성적으로, 창의적으로 모멸감을 줍니다. 주어나 목적어 없이 쓰기도 하고….”
 
일반 시민들도 악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성형을 했다”는 등 밑도 끝도 없는 악플에 시달리거나 기사에 이름이 오른 뒤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14년 8880건이던 사이버 모욕·명예훼손 신고는 지난해 1만5926건으로 급증했다. 악플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음에도 법적인 대응은 그 뒤를 따라가기 급급한 실정이다. 초범은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로 처리되거나 벌금형을 받더라도 100만원 안팎이 대부분이다. 손해배상(위자료) 소송을 해도 5만원, 10만원에 그칠 때도 잦다.
  
자존심에 큰 상처 주는데 “모욕 아니다”?
 
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악플들을 단순 출력한 것으로 30㎝가 넘는 두께다. [사진 고승우 변호사]

한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악플들을 단순 출력한 것으로 30㎝가 넘는 두께다. [사진 고승우 변호사]

이은의 변호사를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변호사는 비공개 촬영회 도중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유튜버 양예원씨를 대리해 악플러 150여명을 모욕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지난 2월 고소 당시 “SNS에 진심 어린 반성문을 일정 기간 게재하는 전제로 합의할 의향도 있다”고 밝혔다. 고소 사건부터 물어봤다.
 
“악플이 8만 개인데, 일단 일부분만 고소한 것이다. 일부는 합의했고, 일부는 기소됐다. 이번 달에 추가 고소를 할 예정이다.”
 
합의한 경우는 어떤 사람들인가.
“정말 어쩌다 댓글을 달았다가 고소당하자 ‘심쿵’을 했거나 공무원 시험을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반성문을 받아보니 자신이 쓴 악플이 한 개가 아니라 900개라고 털어놓은 사람도 있었다.”
 
악플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자신이 조리돌림당하는 게 바로 확인되고, 무섭게 번져나가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된다는 것이다. 깨진 창문의 효과처럼 한번 악플이 달리면 좀비들처럼 달라붙는다. 사람이 모욕 때문에 죽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욕감 때문에 자신이 왜곡되는 걸 보면서 절망하게 된다.”
 
사이버 모욕·명예훼손 추이는

사이버 모욕·명예훼손 추이는

법적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면.
“법원·검찰이 모욕을 판단하는 잣대가 사회적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더 기분 나쁘고 상처 입히는 말들을 교묘하게, 반복적으로 하는데도, 쌍욕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소되지 않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적지 않다.”
 
법원과 검찰이 둔감한 이유는.
“판·검사들이 악플을 심하게 당해보지 않았고, 당할 가능성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 국회의원이나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길어야 며칠 달리는 게 전부다. 법 만들고 적용하는 분들이 견고한 조직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해악을 체감하지 못하는 거다. 연예인도 남성은 악플이 덜 달린다. 여성이고, 젊고, 이름이 노출돼 있으면 광범위하게, 깊게 공격을 받는다. 판·검사들이 온라인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한 원인이다.”
 
온라인 용어를 모른다는 건?
“예를 들면 ‘즙짜고 있네’란 말이 있다. 울고 있다는 뜻이다. 굉장히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인데 큰 모욕이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용어 의미도 모르고, 파급력도 이해하지 못한다.”
  
악플러 만나보면 제대로 자기주장도 못 해
 
이 변호사 자신도 사이버폭력의 피해자다. 고소한 뒤 “악성 게시글을 계속 쓰고 있는데 어떻게 좀 해 달라”고 하자 경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손가락을 부러뜨릴 수도 없고….” 유독 악성이 심한 악플러는 오히려 처벌을 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판사, 검사도 껌처럼 들러붙을 것 같은 사람은 자기 손으로 처리하고 싶지 않은 걸까. 이 변호사는 “악플을 보다 보면 ‘워킹데드’(미국 드라마)에 나오듯 끝도 없이 바글거리는 좀비들을 마주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선플SNS인권위원회 공익법률지원단장으로 활동 중인 윤기원 변호사는 “악플러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오프라인에선 자기주장도 제대로 못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법원에서 위자료 액수를 크게 올려야 하고요. 악플을 지속적 괴롭힘(스토킹)처럼 경범죄에 집어넣어 복잡한 고소·고발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댓글 아이디 풀 네임과 IP(인터넷 프로토콜) 주소를 공개해 책임성을 강화하는 준(準)인터넷 실명제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 제한’으로 위헌 결정했던 인터넷 실명제와는 전체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고승우 변호사는 “악플의 폐해가 크지만 표현의 자유와 균형점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은 악플에 대한 법원·검찰의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고 인식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함께 낄낄거리며 죄책감 희미해져서야
 
취재하면서 내가 왜 구하라씨의 죽음을 쉽게 잊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50대 한국 남성인 나는 여성으로 살아보지 않았다. 악플 공격을 심하게 받은 적도 없고,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한 적도 없다. 젠더 관련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젊은 여성들이 분노하고 좌절하는 건 그들의 고통과 불안에 공감하지 않는 남성 기득권 사회의 불감증 때문이다.
 
“2차 가해는 함께 하기 때문에 죄의식이 n분의 1로 줄어든다”(이은의 변호사)고 한다. 온라인에서 수많은 이들이 함께 댓글을 즐기며 낄낄거리면서 죄책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 그 낄낄거림을 조장하고 방조해온 언론의 책임도 크다. ‘난 댓글 보고 웃은 것뿐인데…’ ‘대중이 원하는 것인데…’ 하는 마음이 우릴 사악한 쓰레기 더미 속에 살게 한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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