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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퍼스펙티브] 한·일 경제협력은 ‘양국 생존 위한 운명적 선택’

중앙일보 2019.12.09 00:25 종합 28면 지면보기

지정학 함정에 빠진 한·일 관계 출구전략

최태원 SK 회장은 ’일본 에너지 기업과 서로 주식을 사게 되면서 사람으로 치면 피를 섞은 관계로 발전했다“며 한·일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최태원 SK 회장, 나카니시 히로아키 경단련 회장,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사토 야스히로 미즈호파이낸셜 회장. 김동호 논설위원

최태원 SK 회장은 ’일본 에너지 기업과 서로 주식을 사게 되면서 사람으로 치면 피를 섞은 관계로 발전했다“며 한·일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 최태원 SK 회장, 나카니시 히로아키 경단련 회장, 미무라 아키오 일본상공회의소 회장, 사토 야스히로 미즈호파이낸셜 회장. 김동호 논설위원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소용돌이치면서 국제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한국은 그 틈에 끼어 가장 강력한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안보는 한·미·일 3각 동맹에 기반을 두고, 경제는 중국에 축을 두면서다. 설상가상으로 징용 피해자를 둘러싼 일본과의 과거사 갈등이 경제로 번지면서 최악의 지정학적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양국 기업 가로막는 불확실성 증대
지정학 갈등 ‘지경학’으로 해소해야
3국 공동 진출, 4차 산업 협력 가능
24일 한·일 정상회담 결정적 기회

이 격랑에 휘말린 한·일 양국 기업인들이 ‘미래설계(Shaping the Future)’를 주제로 6~8일 열린 ‘도쿄포럼 2019’에서 머리를 맞댔다. 토론에는  한·일·미·중 전문가 150명이 참석했다. 최종현학술재단 이사장으로 이 포럼을 조직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홍구 전 총리를 비롯해 손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 일본 경제인연합회(경단련) 회장 등 한·일 재계 리더가 대거 참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행사장인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서 만나 양국을 대표하는 경제인들이 적극적인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한·일 정상회담(24일로 예상)에 좋은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먼저 ‘21세기 동북아 지정학의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열린 국제관계 세션에서는 미·중 토론자들이 국제 질서를 놓고 관점의 차이를 드러냈고, 한·일 토론자들은 과거의 덫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구축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를 기본 전제로 풀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북·미 대화가 깨지고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아 ‘블러디 노즈(Bloody Nose·코피)’로 가거나 한·일 핵무장으로 이어질 것인가”라는 사회자 질문(박인국 최종현학술원 원장)에 대한 응답이었다. 포럼에는 1000여명의 청중이 몰려들어 토론의 열기를 더했다. 토론자들의 관점과 논쟁을 소개한다.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한·일 양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 방위비로 50억 달러를 거론한 것은 분담금 협상을 위한 것이지 주한 미군 철수 의도는 아니다.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아시아는 미국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무대가 됐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러시아의 존재감도 그 배경이다. 지난 40년간 전향적으로 중국과 교류하자는 ‘닉슨·키신저 컨센서스’는 이제 끝났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이 거세지고 미국을 위협할 만큼 공격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장윈링(张蕴岭) 중국 사회과학원 지역안보연구센터장=중국의 급부상이 국제질서를 바꾸어 놓고 있다. 미·중 경쟁은 평화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과거와 달리 핵무기가 등장하면서 어느 쪽도 전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동북아 3국 간 복잡한 문제와 북핵 이슈도 이런 맥락에서 풀어야 한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지금 국제질서는 국제사회를 이끌어 나갈 리더십이 없는 ‘킨들버거 딜레마’를 우려할 만하다. 19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은 글로벌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일어났고, 세계는 지금도 그런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지쳤고, 중국은 아직 책임감이 없다. 이 와중에 불거진 북핵 문제는 단계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스몰 딜(Small Deal)이 가장 효과적인 해법일 수 있다. 꾸준한 비핵화 노력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후지사키 이치로(藤崎一郞) 전 주미 일본대사=중국이 미국의 라이벌이 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북핵은 현 상태 동결이 아니라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돼야 한다.
 
‘한·일 경제 교류와 미래의 협력방안’을 주제로 열린 비즈니스 특별 세션에서는 미래지향적 협력 방안이 쏟아졌다. 반도체·5세대 이동통신(5G)·액화천연가스(LNG), 3국 공동진출 등 한·일 기업이 협력하면 시너지를 낼 일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관계 세션 참석자들. 왼쪽부터 박인국 최종현학술원 원장,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존 햄리 CSIS 소장, 장윈링 중국사회과학원 지역안보연구센터장, 후지사키 이치로 전 주미 일본대사,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김동호 논설위원

국제관계 세션 참석자들. 왼쪽부터 박인국 최종현학술원 원장,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이사장, 존 햄리 CSIS 소장, 장윈링 중국사회과학원 지역안보연구센터장, 후지사키 이치로 전 주미 일본대사,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김동호 논설위원

최태원 회장은 “이런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협력기구로 ‘퓨처 파운데이션(Future Foundation·미래재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함께 해법을 찾고 서로 이해할 수 있고 신뢰를 구축해 나가자는 요지였다. 지정학적 위기를 ‘지경학적 협력’으로 풀자는 취지다. 양국 생존을 위한 운명적 선택이다. 토론은 “한·일관계를 넘어 글로벌 관점에서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회자(오구라 가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 제안에 따라 폭넓게 이뤄졌다.
 
▶김윤 한일경제협회 회장(삼양홀딩스 회장)=경제인들에게는 일관성·투명성·예측 가능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계속되면서 한·일 양국 교역도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소재·부품·장비의 글로벌 공급망이 위협받고 있다. 양국 기업은 지금까지 서로 협력하고 선의의 경쟁을 벌여 공존공영하는 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이념이나 총론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현실을 바탕으로 협력하는 관계로 돌아가야 한다. 우선 제3국 공동진출을 제안한다. 위험을 최소화하고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삼양사와 미쓰비시 상사가 파키스탄에서 벌인 폴리에스터 합작사업 등 성공사례도 많다.
 
▶나카니시 히로아키(中西宏明)경단련 회장=한국 기업들이 크게 성장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한·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글로벌 경제로 연결돼 나갔다. 양국 정치가 어떻게 되더라도 비즈니스는 언제나 협력관계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데 만들면 팔리는 시대가 아니고 서로가 공유·분업해야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 특히 고령화·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소비자 관점에서 새로운 가치관에 따라 시장이 크게 성장하는 세계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최태원 SK 회장=정보통신기술(ICT)은 두 나라가 세계 최강이다. 특히 반도체는 한국이 세계 시장점유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TV·휴대폰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반도체 웨이퍼 생산의 55%, 포토레지스트의 70%, 이미지센서 50%, 반도체증착상비 40%를 점유한다. 앞으로 좀 더 협력범위를 넓혀나가면 윈윈 관계를 고도화할 수 있다. 2005년부터 SK에너지와 당시 저팬에너지(현재 JX홀딩스)가 전략적 동맹을 맺고 서로의 주식을 샀다. 주식을 샀다는 건 사람 관계로 말하면 피를 섞은 것이다. 서슴없이 도시바메모리에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투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차세대 메모리 공동개발 관계가 됐다. 5G에서도 좋은 협력이 가능하다.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일본상공회의소 회장=현재 한·일관계는 최악이다. 그런데 양국 사이에는 440억 달러의 직접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그 바탕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 협정이라는 전제였다. 일본 재계는 안심하고 한국에 투자할 수 있었다. 청구권 자금 5억 달러가 한국에 제공돼 포항제철 건설이 가능해졌고 일본에서 포항제철 직원 1000여명을 교육했다. 오늘의 포스코는 강력한 라이벌로 성장했지만, (신일본제철 회장을 지낸) 나는 그 결과를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 그 기본적인 협력 프레임이 삐걱거리면서 큰 불안감을 느낀다. 이제는 한·일 양국의 기업인들이 정치적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허용수 GS에너지 사장=한·일이 합치면 LNG 1위 수요처가 된다. 협업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동남아 성장에 따라 전략 수요가 증가 중이다. 가스 수입과 발전사업 공동사업이 가능하다. 양국 수출입은행의 지원을 받으면 큰 프로젝트도 할 수 있다. 저장·물류·금융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LNG 국제 허브를 만들 수 있다. 수소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양국이 힘을 합치면 규모를 키우고 시간도 앞당길 수 있다.
 
▶사토 야스히로(佐藤康博) 미즈호파이낸셜 회장=한·일 갈등이 고개를 들자 일본 시중은행이 한국 기업에 대한 융자를 회수하는 것 아니냐는 한국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통화 스와프협정을 되살려야 한다. 한·일 관계는 일대일 관계가 아니다. 미·중 경쟁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중국은 ‘제조 2025’를 들고 나와 모든 것을 다 하겠다고 나오고 있다. 이런 중국 국가전략 안에서 한·일 협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도쿄포럼
최태원 SK 회장과 SK그룹이 최종현 선대회장의 인재육성 뜻을 기려 설립한 최종현학술원이 도쿄대와 올해 처음 개최한 국제포럼이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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