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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감량하고 천재 카레이서 변신한 ‘배트맨’ 크리스찬 베일

중앙일보 2019.12.09 00:04 종합 25면 지면보기
영화 ‘포드 V 페라리’ 한 장면. 가운데 우승컵을 치켜든 사람이 주인공인 1960년대 레이서 켄 마일스다. 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코리아]

영화 ‘포드 V 페라리’ 한 장면. 가운데 우승컵을 치켜든 사람이 주인공인 1960년대 레이서 켄 마일스다. 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코리아]

크리스찬 베일(45)의 변신이 놀랍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그 배우가 맞나 싶다. 베일은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포드 V 페라리’에서 실존 인물인 포드사의 전설적인 레이서, 켄 마일스를 맡았다. ‘포드 V 페라리’는 미국 차 ‘포드’와 이탈리아 ‘페라리’가 1966년 세계 3대 자동차 대회 프랑스 ‘르망 24시’에서 격돌한 실화가 토대다. 르망 24시는 레이서 3명이 시속 370㎞의 불꽃 튀는 경주를 24시간 펼치는 지옥의 경기. 영화는 당시 출전이 처음이던 포드가 이 대회를 6연속 제패한 페라리를 꺾으려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기를, 요동치는 엔진음이 심장에 와 꽂히듯 몰입 넘치게 그려냈다. 2시간 반 넘는 상영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관람평이 잇따른다. 전작 ‘로건’(2017)에서 늙어버린 초능력자의 최후 전투를 처절한 서부극처럼 그려 히어로물의 새 지평을 연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했다. 베일은 깡마르고 그을린 얼굴, 까칠한 영국식 억양으로 켄 마일스를 재현해냈다.
 

실화 영화 ‘포드 V 페라리’ 주인공
자동차 경주 학교 다니며 훈련 받아

베일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아메리칸 사이코’)부터 성경 속 모세(‘엑소더스: 신들과 왕들’)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정교한 연기를 보여줘 ‘연기머신’ ‘베일 신’이라 불려왔다. 특히 실존 인물 연기에 있어선 장인급이다.
 
생애 첫 아카데미상(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가 약물중독 권투선수로 분한 실화극 ‘더 파이터’(2010). 이를 비롯해 50편에 달하는 출연작 중 아카데미 등 시상식 단골 후보가 된 작품 대부분이 실존 인물을 연기한 것이었다. ‘아메리칸 허슬’(2013)의 희대의 사기꾼, ‘빅쇼트’(2015)의 월스트리트를 물 먹인 괴짜 천재 등이다. 전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50년에 걸친 세월을 연기한 ‘바이스’로 올해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영화사와의 사전 인터뷰에서 그는 “실존 인물의 특징이나 버릇 같은 게 있어 실존 인물 연기가 오히려 편하다. 그런 특징을 자기가 그냥 만들어내면 주목받으려고 애쓰는 오만한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위해 베일은 촬영 전 수개월간 자동차 경주 전문인 밥 본듀런트 하이 퍼포먼스 운전 학교에서 훈련 받았다.  차가 폭발하기 직전까지 한계를 밀어붙이는 느낌을 위해 배우들이 최대한 많이 운전하도록 한 감독의 의도에 따라서다. 베일은 극 중 켄 마일스가 타는 셸비 코브라 및 여러 버전 포드 GT40 주행을 모두 몸에 익혔다. 또 배역에 맞춰 체중을 30㎏ 넘게 줄였다. 평소 그는 20~30㎏씩 찌웠다 빼길 반복해 ‘육체의 연금술사’란 별명을 얻었다. ‘배트맨’ 3부작에서 90㎏ 가까운 근육질로 출연한 사이사이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레스큐 던’의 베트남전 포로(61㎏), ‘더 파이터’의 볼이 핼쑥한 마약중독자(66㎏) 등 감량한 데 더해 ‘바이스’ ‘아메리칸 허슬’에선 배나온 민머리 외모를 위해 20㎏나 증량한 바 있다.
 
베일은 아역으로 출발했다. 영국 출신으로 웨일즈에서 태어나 가난 탓에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자라다 배우 일을 하며 미국에 정착했다. 열두 살에 TV 영화 ‘아나스타샤’(1986)로 데뷔해 이듬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태평양전쟁을 소년의 시선으로 다룬 ‘태양의 제국’에서 4000대 1 경쟁을 뚫고 주연에 발탁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연기경력이 30년이 넘지만 배우란 직업과는 여전히 애증의 관계다. 최근 일간지 ‘토론토 선’과 인터뷰에서 “내게 꿈이 하나 있다면 오토바이를 타고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이다. 아직 못했지만, 언젠가 한다. 내게 연기는 생업이자, 우리 가족의 목숨을 구한 은인이다. 그러나 고백컨대 결코 내 꿈은 아니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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