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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2만명 찾았다…1000년 역사 헤아리는 걷기 여행길

중앙일보 2019.12.07 01:00

산티아고 순례길 탐방기-1 카미노의 역사 또는 숨은 진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성 야고보의 유해를 모신 성당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이다. 사진 중앙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다. 지팡이를 든 성인 사도 야고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 성 야고보의 유해를 모신 성당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점이다. 사진 중앙의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다. 지팡이를 든 성인 사도 야고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왔다. 11월 하순, 닷새 동안 모두 115㎞를 걸었다. 800㎞나 된다는 전체 코스를 다 걷지는 못했지만, 의미 없는 여행은 아니었다. ‘콤포스텔라’라 불리는 순례 증명서를 받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은 걸어서 100㎞ 이상, 자전거로 200㎞ 이상 순례길을 경험하면 증명서를 발급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는 카미노의 역사와 숨은 진실이다.
 

 저마다의 카미노

산티아고 순례길의 흔한 풍경. 한 순례자가 포르토마린이라는 도시를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흔한 풍경. 한 순례자가 포르토마린이라는 도시를 들어가는 장면이다. 이 다리는 로마 시대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북쪽의 작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을 이른다. 코스는 10개가 넘는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가 ‘프랑스 길’이다. 전체 순례자의 90% 정도가 선택한다.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 30여 일 동안 약 800㎞를 걷는다. 『순례자』의 작가 파울루 코엘류도, 제주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장도 프랑스 길을 걸었다. 그리고 인생이 바뀌었다. 어쩌면 세상도 바뀌었다.
 
‘북쪽 길’은 스페인 북부 이룬에서 이베리아 반도 해안을 따라 걷는 약 820㎞ 길이의 길이고, ‘포르투갈 길’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약 630㎞를 걷는 길이다. 출발점은 달라도 모든 길의 종점은 같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이 도시의 성당에서 길이 끝난다. 다시 말해 산티아고 순례길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성당을 가는 길이다(스페인의 땅끝마을로 불리는 피니스테레까지 가는 길도 있다. 산티아고 성당까지 걷고 추가로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 지도. 10개가 넘는 길이 하나의 도시로 향한다. [지도 롯데관광]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 지도. 10개가 넘는 길이 하나의 도시로 향한다. [지도 롯데관광]

산티아고 순례길 지도, 지도 오른쪽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115㎞를 걸었다.[지도 롯데관광]

산티아고 순례길 지도, 지도 오른쪽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 115㎞를 걸었다.[지도 롯데관광]

나는 프랑스 길의 막바지 115㎞ 구간을 걸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동쪽 사리아에서 출발해 하루 평균 23㎞씩 걸었다. 5만 보 넘게 걸은 날도 있었다. 순례 증명서에는 내가 걸은 길이 115㎞라 표기됐으나, 지도에 표시된 거리는 117.5㎞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거리 표기가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프랑스 길은 순례자 여권에 775㎞로 나오지만, 지도에는 모두 800㎞가 넘는다고 적혀 있다. 어차피 저마다 제 길을 걷는다.
 

 산티아고와 제임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의 성 야고보 상.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의 성 야고보 상.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있는 성 야고보의 유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있는 성 야고보의 유해,

St. James, Saint-Jacques, Santiago, Santo Jacobo.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성 야고보다.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표기가 산티아고고, 로마자 표기가 세인트 제임스다.
 
야고보는 예수의 십이사도 중 한 명이다. 그의 무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에 있다. 유럽 각지의 기독교인이 성 야고보의 무덤을 찾아 떠난 순례가 현재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걷기여행길이 된 것이다. 코스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고, 종점이 하나뿐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순례의 역사는 얼추 1000년을 헤아린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종점이라 불리는 피니스테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 땅끝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지금은 무언가를 태우는 행위가 일절 금지돼 있다. 대신 신발 상이 갯바위에 설치돼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최종 종점이라 불리는 피니스테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 땅끝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의 신발이나 옷가지를 태워 대서양에 띄우는 의식을 치렀다고 한다. 지금은 무언가를 태우는 행위가 일절 금지돼 있다. 대신 신발 상이 갯바위에 설치돼 있었다.

사도 야고보?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익숙한 사도 요한이 야고보의 동생이다. 형제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 예수가 베드로와 함께 두 형제를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야고보는 성서에서 십이사도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다. 생전의 야고보가 이베리아 반도 일대 즉 지금의 스페인에서 복음 활동을 했다. 요즘도 수많은 기독교인이 야고보가 걸었던 길이라 믿으며 이 긴 길을 걷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과도 같은 가리비 껍데기. 기념품으로도 인기가 좋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과도 같은 가리비 껍데기. 기념품으로도 인기가 좋다.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산티아고 순례길 기념품

가리비 껍데기로 만든 산티아고 순례길 기념품

서기 44년.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처형된다. 야고보의 제자들이 스승의 유해를 수습해 스승이 선교활동을 했던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으로 보낸다. 야고보의 유해를 실은 배가 스페인 해안에 다다랐을 때 가리비가 감싸줘 배를 육지로 이끌었다고 한다. 2000년이 지난 지금, 가리비 껍데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으로 쓰이는 까닭이다. 
 

 정복자 간달프

성 야고보는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성 야고보는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서기 813년. 한 수도사가 이베리아 반도 들판 위에서 신비로이 빛나는 별을 목격한다. 이후 들판에서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고, 교회는 이 자리에 성당을 짓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이름은 이 신화에서 비롯된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다른 이름이고, 콤포스텔라는 ‘들판(Campus)’과 ‘별(Stellae)’을 합친 말이다. 별이 쏟아지는 들판의 사도 야고보. 이 긴 이름의 도시가 품은 뜻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 놓고 간 사진이 자주 눈에 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길에 놓인 사진에서 슬픈 사연을 읽게 된다. 길은 걷는 건 이처럼 무언가를 내려놓는 일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 놓고 간 사진이 자주 눈에 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길에 놓인 사진에서 슬픈 사연을 읽게 된다. 길은 걷는 건 이처럼 무언가를 내려놓는 일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작은 십자가. 그 아래 놓은 애견 사진.

누군가 만들어놓은 작은 십자가. 그 아래 놓은 애견 사진.

도시가 건설되자 순례의 시대가 시작된다. 14세기에만 연 100만 명 이상이 순례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마주쳤을 법한 이름들, 이를테면 샤를마뉴 대제, 성 프란체스코, 이사벨라 여왕 같은 인물도 이 길을 걸었다고 한다. 지금의 순례길은 1123년 프랑스 사제 에임리 피코가 남긴 다섯 권짜리 가이드북에서 기초한다. 길이 천 년 묵었으니 가이드북도 천 년을 헤아린다.
 
신화는 이따금 비밀을 감추는 기능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그러하다. 냉정히 따져 보자. 이스라엘에서 죽은 야고보의 무덤이 스페인 북쪽 들판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역사학자들은 당시 스페인 정세에 주목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재해석한다. 
 
7세기 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침략한다. 스페인의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도들에 터전을 빼앗기던 시절, 마침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반도에서 발견된다. 이어 성인의 은혜를 받기 위해 고통을 수반한 순례 운동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뿔뿔이 흩어졌던 스페인은 성 야고보를 중심으로 다시 뭉친다. 종교적 차원의 움직임만은 아니다. 실제로 순례길을 따라 군대가 조직되고 결집한다. 마침내 1492년 1월 2일 국토회복운동 ‘레콘키스타(Reconquista)’가 끝난다. 무려 700년 만에 외세를 몰아낸 것이다. 이후 스페인은 대양으로 나아갔고, 전 세계를 통치한다.
성 야고보 상이 서 있는 순례길 이정표.

성 야고보 상이 서 있는 순례길 이정표.

순례길 곳곳에서 성 야고보의 이미지를 만난다.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모습이다. 영락없는 마법사 간달프다. 실제로 영화 ‘반지의 제왕’은 성 야고보에서 간달프의 이미지를 빌려왔다고 한다. 
 
야고보는 칼을 차고 말을 탄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산티아고 마타모로스(Santiago Matamoros). 무어인을 죽이는 산티아고’라는 뜻이다. 중남미 곳곳에도 비슷한 동상이 남아 있다. 16세기 신대륙을 정벌할 때도 스페인은 성 야고보의 힘을 다시 빌렸다. 이때의 야고보는 산티아고 마타인디오스(Sanntiago Mataindios), 인디언을 죽이는 산티아고다. 이 시대가 우러르는 구원의 길은 어쩌면 전쟁의 길이었다.
 

 2018년 한국인 5665명 순례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이 발급한 순례 증명서. 종이가 고급스럽다. 양피지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이 발급한 순례 증명서. 종이가 고급스럽다. 양피지다.

길에도 부침이 있나 보다. 외세가 물러난 뒤 산티아고 순례길은 잊힌 길이 된다. 스페인 왕정이 사실상 순례를 금지한다. 길을 따라 반대 세력이 뭉칠까 저어해서였다. 간신히 명맥을 이어오던 순례길은 1980년대 이후 반전에 성공한다.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방문하고, 1987년 파울루 코엘류가 발표한 『순례자』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1993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순례길은 다시 전 세계의 이목을 끈다. 
묵시아. 성모 마리아가 야고보를 위로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하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묵시아. 성모 마리아가 야고보를 위로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하는 작은 해안 마을이다.

피니스테레의 신발 태우던 장소 지금은 아무것도 태울 수 없다. 대신 많은 순례자가 손때 묻은 소지품을 놓고 간다. 여기에 나는 10년 가까이 사용하던 제주올레 손수건을 놓고 왔다.

피니스테레의 신발 태우던 장소 지금은 아무것도 태울 수 없다. 대신 많은 순례자가 손때 묻은 소지품을 놓고 간다. 여기에 나는 10년 가까이 사용하던 제주올레 손수건을 놓고 왔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국에 따르면 2018년 순례길을 걸을 사람(순례 인증서를 받은 사람)은 모두 32만7378명이다. 도보 순례자는 30만6064명이고, 자전거 순례자는 2만787명이다. 휠체어 순례자도 79명이나 있었다. 
 
국적으로 보면 스페인과 이탈리아인이 전체 순례자의 절반을 넘는다(52.28%). 한국인은 모두 5665명으로 전체 순례자의 1.73%를 차지했다. 전 세계 9위로 비유럽 국가 중에서 1위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1477명, 중국 1111명, 대만 1024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은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사랑할까. 그건 탐방기 2회 ‘관광 콘텐트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다룬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스페인)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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