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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 vs. '포드v페라리', 올해 가장 재미있는 영화는.

중앙선데이 2019.12.06 16:09
  
국내 일부 평자들이 <나이브스 아웃>을 올 한 해 나온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으로 꼽았지만, 솔직히 재미 면에서는 <포드v페라리>에 조금 뒤진다. 

오동진의 라스트 필름8.(오동진 평론가의 영화 에세이)

삽화 임진순

삽화 임진순

<나이브스 아웃>은 식자층이 좋아할 영화다. 세련되고 지적이라는 얘기다. 영화의 전체 분위기가 좀 거들먹거리는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포드v페라리>는, 영화 속 주인공 켄 라일리의 10대 아들 마냥, 부릉부릉 엔진 소리에도 아랫 도리가 움찔거리는 10대 남자 아이들, 여자 아이들의 흥분을 닮았다. 보다 대중적이고 쉬운 텍스트여서 관객의 레인지(range)가 그만큼 더 넓다는 이야기다.

 
<나이브스 아웃>에서는 주인공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의 등장부터가 재미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얼마 전 기묘한 사건을 풀어낸,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사립탐정으로 나온다. 이름과 영어 액센트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뉴올리언즈 태생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명백하게 아가사 크리스티의 얼터 에고(alter-ego) 중 한 명인 포와르를 겨냥한 캐릭터다. 블랑은 영화 초반, 가족들 한 명 한 명을 탐문하는 형사 둘 뒤 그림자 속에 숨어 이제 그만 됐다 싶을 때마다 고음의 건반 하나를 친다. 심문 아닌 심문을 받는 사람들은 그게 영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건 관객들도 그런데, 이 인물에 대해 굉장히 궁금하게 만든다. 결국 이 집의 장녀 린다(제이미 리 커티스)가 이맛살을 모으며 묻는다. “근데 거기, 당신은 누구요?” 영화는 그렇게 이야기의 계곡으로 사람들을 쓸려 들어가게 한다.  
 
사건은 이렇다. 오랜 기간 저명한 미스터리 작가로 살아가며 부와 명성을 쌓아 온 할런 트롬비(이것도 명백하게 스티븐 킹을 연상케 한다. 아니면 적어도 할런 코벤 정도?)가 목을 칼에 베여 숨진 채 발견된다. 이 집안에는 그의 유산을 상속받을 딸 린다와 그의 남편 리처드(돈 존슨), 며느리 조니(토니 콜레트)와 그의 딸 메그(매서린 랭포드), 그리고 막내 아들 월트(마이클)와 그의 아내 그리고 16살 아들 제이콥(제이든 마텔) 등의 식구가 있다. 린다-리처드 부부 사이에는 장성한 아들 랜섬(크리스 에반스)이 있다. 비교적 대 식구가 모였다. 당연히 이들 하나하나의 증언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명저(名著)급 걸작으로 후대의 모든 작품들이 조금 조금씩은 다 베끼고 있는 <라쇼몽>의 구도로 짜여진다. 모두의 증언은 각자가 기억하는 대로, 혹은 기억하고 싶은 대로 진술되거나 위조된다. 아, 여기에 중요한 두 사람이 더 있는데 할럼 트롬비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가정부 프랜(에디 패터슨)과 할런의 오랜 간병인이자 젊고 착한 남미 여성 마르타(아나 드 아르마스)가 있다. 마르타는 에콰도르 출신으로 엄마와 누이 동생과 함께 살고 있지만 불법이민자 집안이다. 
  
나이브스 아웃

나이브스 아웃

자, 할런은 누가 죽였는가. 영화는 비교적 쉽게 그 진실을 드러내는 척 한다. 여기에는 마르타가 직간접적으로 간여가 돼있고 그걸 초반부터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헷갈리게 만들며 마지막에 반전을 가한다. 할런의 죽음이 과실이 곁들여진 본인의 의도된 자살인지, 그래서 유산 상속을 둘러싼 빅 픽처를 할런 스스로 그리려고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과정을 전부 알고 있거나 적어도 예리하게 예측한 가족 중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살해된 것인가. 진실은 그 사이에 놓여 있다. 그 퍼즐이 꽤나 미로 속의 미로 속의 미로를 걷게 만든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늘 가깝게 있는 법이다. 아무래도 마누라 등에 얹혀 바람이나 피우며 한량으로 살아가는 사위 리처드일까? 아니면 사업적인 야망이 가득한 딸 린다? 아니면 아버지 대신 출판사를 운영하며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은 막내 아들? 16살이지만 백인 꼴통 극우 파시즘에 경도돼 있는 이 집안의 막내 손자? 그것도 이것도 아니면 모든 것이 사실은 간병인 마르타가 꾸민 것일까?
이런 영화는 중간중간 자신의 추리를 적용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 브누아 블랑이 이 집안의 최고령자이자 죽은 할런 트롬비의 모친(K.칼란)에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에서 키워드를 찾는 자, 눈이 밝은 편이다. 그는 이렇게 중얼댄다. “진실과 거짓의 모호한 경계는 그 진실을 찾아 내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서 찾아집니다.” 그것 참 괜찮은 격언이다.
  
이 영화가 트럼프 시대를 빗대고 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이민자를 둘러싼 논쟁이 얼핏 그런 은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보다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으로 성공한 미국 부유층의 멘탈리티가 현재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나름 심장하다. 트럼프 류의 정신 상태가 저렇게 허무맹랑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든 라이언 존슨의 얘기일 것이다. 
영화의 소품, 의상, 분장, 스타일 등이 대단하다. 영화가 ‘영화적’이라고 할 때는 이런 외형이 보여질 때다.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 역시 빛난다. 쿠바 출신의 아나 드 아르마스는 <블레이드 러너 2049> 이후 톱 스타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주목할 신성(新星)이다.

포드v페라리

포드v페라리

 
<포드v페라리>는 미국의 포드 차가 레이싱 카를 개발해 프랑스의 세계적 카 레이싱 대회인 ‘르망24’에 출전해 이탈리아의 페라리 차를 이긴다는 얘기다. 여기에 차를 개발하고 대회 출전을 기획하는 전직 레이서 출신으로 경기용 자동차의 디자이너이자 엔지니어인 캐롤 셀비(멧 데이먼)와 카 레이서인 켄 마일즈(크리스찬 베일)의 우정과 인간승리가 촘촘하게 얹힌다. 그 스토리 텔링이 뒤끝 하나 없이 깔끔하다. 매끈한 상업영화는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우선돼야 하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동차 경주 장면을 많이 보여줘야 하는 내용인 만큼 무엇보다 그 속도감과 효과음의 사용이 매우 중요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경기용 차가 출발하기 전, 엔진을 가속할 때의 서스펜스가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만큼 영화의 흥분감이 최고조를 오르락 내리락 한다. 
그만큼 캐릭터들도 자기 몫이 중요했는데, 크리스찬 베일은 불 같은 성격에 고집이 강한 캐릭터이니 그건 오히려 쉬운 편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늘 포드 본사와 지루하고 짜증나는 협상에 나서야 하는 데다 그 와중에 레이싱 경기 자체를 디자이닝 해야 하는 캐롤 역은 심사가 복잡한 면을 종종 드러내야 하는 만큼 맷 데이먼의 연기가 상대적으로 더 돋보일 수 밖에 없다. 
삽화 임진순

삽화 임진순

그는 영화 속에서 자주 껌을 씹는다. 자신의 자동차 매장이자 회사로 찾아 온 포드 사의 마케팅 담당 간부 리 아이아코카에게 르망24에서 페라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할 때도 초조한 듯, 흥분한 듯, 즐기는 듯, 약간 짜증난 듯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연신 수다 아닌 수다를 떠는데, 이때 맷 데이먼의 모습은 향후 그의 필모에서 역대급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포드v페라리>는 1960년대 매출 저하로 위기에 빠진 포드 자동차 회사가 경영을 일신하기 위해 카 레이싱이라는 ‘신종 마케팅’을 선택하는 얘기를 보여 주는 척, 사실은 지금의 미국 경제, 미국 사회의 균열을 보여 주려는 작품이다. 포드식 자본주의의 영광을 되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우파적 시선도 읽힌다. 얄미운 것은 그 같은 미국식 이데올로기의 ‘음흉함’을 영화적 재미로 잘도 감추고 있다는 점이다. 맨골드 감독이 역시 역전의 용사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3:10 투 유마> <나잇&데이> <로건> 등은 기억할 만한 역작이었다.

 
재미있는 영화는 복잡한 세상을 살짝 잊게 만든다. 하지만 결국 다시 지금의 요란한 세상을 음미하게 한다.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 재미있는 영화가 늘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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