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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 타고 운하 여행, 동화책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

중앙일보 2019.12.06 10:00

[더,오래] 권지애의 리스본 골목여행(4)

 
여행하는 동안 매일 비가 와서 안타까웠지만 잠깐 내밀었던 파란 하늘 덕분에 더욱 고마운 기억이 남는 포르투갈의 베네치아 아베이루. [사진 권지애]

여행하는 동안 매일 비가 와서 안타까웠지만 잠깐 내밀었던 파란 하늘 덕분에 더욱 고마운 기억이 남는 포르투갈의 베네치아 아베이루. [사진 권지애]



아베이루와 코스타 노바
포르투갈 소도시 여행으로 네 번째 연재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날씨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여행하는 동안 거의 매일 비가 와서 너무 슬펐겠네’ ‘비 오는 데 무슨 재미로 있었니?’ 등등의 측은지심 가득 어린 말을 들을 때 마다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날씨란 게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기에 매일 매일 날씨가 쨍할 수도 흐릴 수 없다. 그런 만큼 자연의 순리대로 있는 그대로의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 행복한 여행을 위한 여행자들이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흐렸지만 단 하루도 같지 않은 하늘과 표정으로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소도시 여행은 날씨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중으로 잠깐 내밀었던 파란 하늘 덕분에 더욱 고맙고 기억에 남는 포르투갈의 베네치아 아베이루(Aveiro). 이곳에서의 소박한 이야기는 운하를 떠다니는 작고 화려한 배, 몰리세이루(Moliceiro)에서부터 시작된다.
 
뾰족하고 둥글게 올라간 뱃머리와 배꼬리에 컬러풀한 색감으로 성자나 유명인사가 그려져 있는 몰리세이루. 예전엔 해조와 미역, 소금 등을 모으고 나르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유명하다.

뾰족하고 둥글게 올라간 뱃머리와 배꼬리에 컬러풀한 색감으로 성자나 유명인사가 그려져 있는 몰리세이루. 예전엔 해조와 미역, 소금 등을 모으고 나르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유명하다.

 
운하 곳곳에서 탑승이 가능한 몰리세이루는 길이 15m, 폭 2m의 길고 날렵한 배로 오래 전에는 해조와 미역, 소금 등을 모으고 나르는 생업을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일등 관광상품으로 아베이루에 오면 가장 먼저 해야할 리스트에 올려져 있다. 나 역시 운하에 도착하자 마자 배를 타고자 둘러 보곤 그 중에 화려한 배 한 척을 골랐다.
 
뾰족하고 둥글게 올라간 뱃머리와 배꼬리에 컬러풀한 색감으로 성자나 유명인사가 그려져 있는 것도 독특했는데 성(性)과 관련된 위트 있는 장면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에 모두가 카메라 세례를! 위트를 실은 이 배를 타고 아베이루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게 되는데 대서양까지 흘러간다는 운하는 생각보다 좁고 작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은 전혀 없다. 운하 양쪽에 파스텔톤의 작은 집들이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소금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소금을 채취하는 타일 벽화와 동상들을 만날 수 있다.

소금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소금을 채취하는 타일 벽화와 동상들을 만날 수 있다.

 
한적한 거리에 한 번 놀라고 아줄레쥬 타일로 장식된 교회와 상점들, 박물관 외관만큼 멋진 평범한 주택들에 두 번 놀라게 된다.

한적한 거리에 한 번 놀라고 아줄레쥬 타일로 장식된 교회와 상점들, 박물관 외관만큼 멋진 평범한 주택들에 두 번 놀라게 된다.

 
하늘을 가르는 반원 모양의 다리 10개를 지나고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데는 2~30분 정도로 지루할 틈 없는 딱 좋은 시간이다. 배에서 내려 걷다 보면 소금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소금을 채취하는 타일 벽화와 동상들을 만나게 되는데 유명한 관광지 답지 않은 한적한 거리에 한번 놀라고 고층 건물 하나 없고 3~4층의 아담한 아르누보 양식의 공공기관 건물, 아줄레쥬 타일로 장식된 교회와 상점들 여기에 박물관 외관만큼 멋진 평범한 주택들에 두 번 놀라게 된다.
 
그러다 한 가게 앞에 유독 긴 줄이 늘어서 있어 한 걸음에 달려가본 곳에는 하얀 조개 모양의 스낵을 모두가 하나씩 들고 있었다. 궁금증을 증폭케 만든 이 스낵은 전통 빵 과자 오보스 몰레스. 달걀 노른자와 설탕을 넣어 만든 것으로 한 입 깨물면 부드러운 노란색 크림이 들어 있다. 너무 달지도 않고 자꾸만 먹고 싶게 되는 것이 포르투갈 다른 도시에선 살 수 없기에 꼭 먹어 볼 것을 추천한다.
 
달걀 노른자와 설탕을 넣어 만든 부드러운 노란색 크림이 들어있는 조개모양의 전통 빵 과자 '오보스 몰레스'.

달걀 노른자와 설탕을 넣어 만든 부드러운 노란색 크림이 들어있는 조개모양의 전통 빵 과자 '오보스 몰레스'.

 
산등성이와 언덕에 위치해 걷기 힘들었던 토마르와 마르바오와는 다른, 평평한 길로 걸어 다니기에 너무 좋은 아베이루를 당일치기로만 여긴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하나 둘씩 레스토랑과 상점에 불이 켜지면 좀 더 소박해 지고, 좀 더 아늑해지기에 해 질 녘에 촬영했던 아베이루 사진은 엽서로 만들고 싶을 만큼 로맨틱하고 운치로 넘쳐 흐른다.
 
코스타 노바는 아베이루와 지척이라 할 만큼 가깝다. 대중교통은 좀 더 걸릴 수 있겠지만 자동차로 이동한다면 2~30분 거리밖에 안되는 곳에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이름도 멋진 코스타 노바가 있다. 캔디 컬러의 스트라이프로 칠해진 집들이 나란히 해안가에 즐비하다. 어디에다 포커스를 맞춰야할지 모를 정도로 보이는 모든 것이 팝아트풍의 그림 같다.
 
초록색 스트라이프 집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 바닷가로 유유자적 걸어 가셨다. 현재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일상의 삶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초록색 스트라이프 집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 바닷가로 유유자적 걸어 가셨다. 현재의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일상의 삶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바다로 나간 어부가 집으로 돌아 올 때 자신의 집을 빨리 찾기 위해 칠하기 시작한 스트라이프가 마을 전체로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바다로 나간 어부가 집으로 돌아 올 때 자신의 집을 빨리 찾기 위해 칠하기 시작한 스트라이프가 마을 전체로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줄무늬 마을, 스트라이프 천국으로 불리는 이 해안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영화 세트장이 아닐까 착각이 일 정도.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자세히 보면 바다 바람과 오랜 시간이 덧씌워져 빈티지한 멋까지 갖춘 이 집들은 원래 어부의 오두막으로, 낚시 장비를 보관하고 피난처를 제공 하는 곳이었는데 바다로 나간 어부가 집으로 돌아 올 때 자신의 집을 빨리 찾기 위해 칠하기 시작 스트라이프가 마을 전체로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이다.
 
19 세기에 코스타 노바는 꽤 인기 있는 해변 휴양지가 되었으며 가난한 지역 어민들은 여름철에 이 오두막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주며 생계를 꾸려 갔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스트라이프 집을 골라 그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 바닷가로 유유자적 걸어가셨다. SNS의 유명 포토 스팟이지만 여전히 현재의 시간과 유유히 함께 흘러가는 일상의 삶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스트라이프 풍경을 만끽한 후에 걸어간 대서양이 펼쳐진 바닷가. 부드러운 샌드 비치로 오래 걷고 싶었지만 몇 분만 걸어도 눈물을 흘리게 한 강렬한 대서양의 바람은 이내 발길을 바닷가 바로 앞 레스토랑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역시나 대서양을 끼고 있기에 신선하고도 가성비 좋은 해산물 음식들로 인해 미각에 폭죽이 터졌다.
 
콘텐트 크리에이터·여행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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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애 권지애 콘텐트 크리에이터 필진

[권지애의 리스본 골목 여행] 대항해시대 찬란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포르투갈, 수도인 리스본은 화려한 과거의 향기와 현재의 아름다운 격동이 끊임없이 물결치는 곳이다. 유럽의 서쪽, 서쪽의 끝에서 대서양을 향해 부르던 서글펐던 파두의 선율은 이제 이방인들에겐 매혹적인 선물로 다가온다. 하지만 와인과 에그타르트, 해산물 그리고 가성비 좋은 물가만으로 표현되기에 리스본 속에 펼쳐진 역사의 흔적들은 여행의 가치를 높여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거 향기로 가득한, 프라이빗한 골목 속으로 함께 거닐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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