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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용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 해안포 사격도 그대로 넘어가면 핵 인질로 전락한다

중앙일보 2019.12.06 00:25 종합 30면 지면보기

북한 창린도 도발에 제대로 대처해야 하는 이유

북한군의 장사장포 훈련 모습. 북한은 9·19 군사 합의 위반에 해당되는 NLL 인근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했으나 한국 정부와 군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군의 장사장포 훈련 모습. 북한은 9·19 군사 합의 위반에 해당되는 NLL 인근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했으나 한국 정부와 군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올 한해 북한의 말과 행동을 보면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무시와 도발로 일관하기로 한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막말, 13차례의 단거리 미사일·방사포 발사, 남북 대화 중단에 이어 민간 교류의 실종, 금강산 우리 측 시설 일방적 철거 발표 등 끝이 없다. 북한 선원 2명을 그들의 의사에 반해 송환하고 11년간 지켜왔던 원칙을 버리고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 불참하는 등 정부의 짝사랑이 외골수가 될수록 북한의 무시도 심해진다는 느낌까지 든다.
 

북한은 핵으로 한국 겁박하고 한·미동맹 이간시키며
재래식 도발로 얻은 이익을 굳히는 전략 쓸 수 있어
해안포 도발에 유감 표명, 재발 방지 요구로는 부족
도발하면 값비싼 대가 치른다는 걸 분명히 보여줘야

최근 문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 대해 “소뿔 우에 닭알 쌓을 궁리만 한다”고 공개 망신을 줬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이 무색하게 이산가족 상봉조차 보수 정부 때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게 남북 관계의 현주소다. 남북관계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더 중요한 사건은 지난 9·23 연평도 포격 8주기에 김정은이 북방한계선(NLL)에서 18㎞ 떨어진 창린도까지 와 해안포 사격을 지휘한 것이다. 북한의 행동은 9·19 남북 군사 합의에 대한 노골적 위반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도발이 남북 군사 합의를 깨려는 의도라고 하지만,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합의를 깨려고 할 정도로 북한은 수준 낮은 상대가 아니다. 우리만 보유한 무인기 정찰 능력은 무력화됐고 백령도·연평도의 자주포 부대는 대포를 배에 실어 내륙에 가져와야 사격 훈련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합의를 북한이 먼저 파기할 이유는 없다.
  
바늘 도둑 엄하게 벌해야 소도둑 안돼
 
그렇다면 북한의 의도는 무엇일까. 먼저 ‘연말 시한’을 앞두고 기 싸움을 벌이는 미국을 향해 트럼프 대통령이 아파할, 도발 가능성을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랑거리’인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을 재고할 수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번 도발은 이러한 위협이 빈말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미국에 던진 것이다. 둘째는 이렇게 해도 남측이 감히 군사 합의를 파기하지 못한다고 보고 강수를 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도발을 그대로 넘길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번 도발이 ‘핵 무력을 완성한’ 북한이 벌인 첫 재래식 도발이라는 점이다. 우리 영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아니지만, 김정은이 나서서 남북 군사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군사 행동을 공개적으로 벌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가볍지 않다.
 
저명한 핵 억제전략 이론가 비핀 나랑 미국 MIT대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를 ‘제한적 목적의 재래식 도발 보호막’으로 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으로서도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큰 위험이 수반되는 만큼 쉽사리 하기 어렵다. 하지만 핵무기를 배경으로 한국을 겁박하고 한·미동맹을 이간시키며 재래식 도발로 얻은 이익을 굳히는 전략을 쓸 가능성은 크다.
 
억제 전략의 원리는 바늘 도둑을 엄하게 징벌함으로써 소도둑이 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한국을 겨냥한 단거리 미사일과 방사포 발사를 그들의 ‘군사적 권리’로 만들었다. 이제 북한이 재래식 도발의 수위를 야금야금 높여 나가고 한·미동맹이 효과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북한의 핵 인질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연한 대응 없으면 북한은 또 도발
 
만약 북한이 그들이 멋대로 그은 서해 ‘경비계선’을 침범했다면서 우리 해군 함정을 나포하고, 우리가 대응하면 핵무기를 쓰겠다고 위협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한·미동맹이 굳건하게 유지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결연한 대응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번 도발에 대해 유감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또 북한이 아무런 답을 않는 것은 똑같은 도발을 다시 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도발하면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고 후일 더 큰 도발을 막는 길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이후 북한이 이렇다 할 재래식 도발을 못한 것은 우리 군이 철저한 응징 결의를 밝히고 이러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2015년 목함 지뢰 도발 시 북한은 전선사령부 공개 경고장, 준전시 상태 선포, 48시간 최후통첩, 전면전 불사, 전방부대 전투 준비 완료 선언, 접경지역 주민 대피령까지 숨 가쁘게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래도 우리측이 흔들리지 않고 북한의 대포 4발 발사에 대해 29발 응사로 맞불을 놓자 결국 대화를 제의하고 유감을 표명했다.2010년 잠시 흔들렸던 대북 억제력을 복원시킨 것이다.
  
북핵을 현실로 보고 안보전략 마련해야
 
이를 교훈 삼아 우리의 결의를 보여줘야 한다. 먼저, 14개월째 사격 훈련을 못 하고 있는 연평도·백령도 자주포 부대의 사격 훈련을 한 차례 북한과 반대 방향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북한의 해안포 사격에 대해 비례성의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에 입각한 대응이다. 둘째, 브룩스 전 주한 미군 사령관이 주장했듯 내년 연합훈련 재개에 대비한 한·미 군 당국 간 협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반복된다면 연합훈련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경고이자 정체된 북·미 핵 협상을 되살리는 카드도 될 수 있다.
 
북핵 위협에 대응할 좀 더 근본적인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 최근 일각에서는 전술핵 재배치, 핵무장 주장이 나온다. 북한의 핵 보유가 우리 안보의 뉴노멀이 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여 당연히 모든 옵션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먼저 핵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높이는 방안들을 한·미 간에 정교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2015년 확대 신설된 한·미 억제전략위원회(DSC)를 활성화시키면 된다. 나토식 핵 공유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핵에 대응한 우리의 3축 체계 구축을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북·미 협상 진행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에 대한 위협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정부 외교·안보진용은 지금의 결정이 대한민국 안보 30년을 좌우한다는 긴박감과 북한의 의도를 꿰뚫는 전략적 시각을 가지고 북한 도발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핵 보유는 재래식 군사 대결 때도 우위 차지하는 데 유리할 수 있어
핵 억제전략의 효시는 냉전기 미국·소련 사이의 상호확증파괴(MAD) 전략이다. 이후 사실상 핵보유국은 영국·프랑스·중국과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북한까지 9개국으로 늘어났다. 비핀 나랑 MIT대 교수는 이들의 핵전략을 세 가지로 나눈다. 이스라엘처럼 자신이 보유한 핵무기 사용 위협을 통해 미국의 지원을 유도하는(catalytic) 전략, 중국·인도처럼 핵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핵으로 보복한다고 선언하는 확증 보복(assured retaliation) 전략, 비대칭 에스컬레이션(asymmetric escalation) 전략이다.
 
비대칭 에스컬레이션 전략은 재래식 군사력이 열세인 핵보유국의 경우 상대방의 재래식 공격에 대해서도 여차하면 핵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재래식 군사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다. 냉전시대 프랑스와 현재의 파키스탄이 해당한다. 북한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본다.
 
예컨대 파키스탄과 인도가 1965년 카슈미르를 놓고 국지전을 벌였을 때 인도는 우세한 군사력을 마음 놓고 활용해 파키스탄을 굴복시켰지만, 99년 국지전 때는 인도가 파키스탄 핵무기를 의식해 공군력 사용과 대규모 침공을 자제했다. 비록 핵무기를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핵 보유를 이용해서 재래식 군사 대결에서 이득을 본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도는 파키스탄보다 훨씬 강한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파키스탄의 핵무기를 의식해 몸조심했다. 만약 북한 의도대로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금지되고 핵우산이 약화한다면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핵 없는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나올지 우려된다.
 
조태용 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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