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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라드 칼럼] 바시르 정권의 급작스런 붕괴, 북한에서도 일어날까

중앙일보 2019.12.06 00:20 종합 33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한국인이 관심을 가져야 할 나라를 하나 소개하려 한다. 바로 수단이다. 북한은 여러 면에서 동독보다 수단에 가깝다. 수단은 오마르 알 바시르 대통령 통치하에 북한처럼 엄격한 통제 체제를 유지했다. 국민 대다수가 가난한데도 권력자들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1년 전까지 아무도 알 바시르 대통령의 몰락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직을 연임했으며 유엔 제재를 견뎌냈다.
 

수단 국민 경제난에 시위 발발
군부가 총구를 돌려 정권 붕괴
독재 정권의 미래는 예측 못해

그랬던 그가 결국 몰락했다. 모든 과정이 갑작스럽게 전개됐다. 정권 붕괴 조짐은 경제난에서 처음 나타났다. 2018년 말 식료품값이 인상되자 국민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불만 표출은 여러 나라에서 흔한 일이고, 불평이 반드시 정치적 위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2018년 12월 19일 갑자기 수단이 폭발했다. 처음에는 북쪽 수단에서, 뒤이어 전국 각지에서 계층을 막론하고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알 바시르 정권은 시위자들을 죽이고 체포했다. 인터넷을 막아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했다.
 
강경 진압에도 시위가 번졌고 올해 2월 22일 알 바시르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모든 지방 관리를 군 장교와 정보국 직원으로 교체했다. 몇 주 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시위대는 4월 6일 군사령부 앞 도로를 점령했다. 시위자들은 대부분 젊은이로, 알 바시르 정권 지배층의 자녀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대통령 경호대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이 시점에 수단군이 개입했다. 젊은 시위자 중 상당수가 군 간부 자녀였는데, 그들의 아버지들이 나섰다. 수단 정규군은 시위대를 보호하며 대통령 경호대에 반격했다. 그리고 4월 11일, 수단 군부가 알 바시르를 축출했다.
 
북한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두 나라가 똑같지는 않다. 외국인에게는 북한 여행보다 수단 여행이 훨씬 쉽다. 수단 간부들은 북한 간부들보다 외부 세계와 더 자주 접촉한다. 또한 수단 내에서의 변화들은 외부의 개입 없이 추진될 수 있었다. 북한 김정은 정권 몰락 사태에는 주변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수단에서 일어난 변화는 북한 정권에 몇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혁명을 촉발한 것은 경제 침체였다. 수단 정부 예산의 60%를 차지하는 막대한 군사 비용이 수단의 경제난을 초래했고, 이는 수단의 국가 경제를 크게 악화시켰다. 북한의 상황도 매우 유사하다. 둘째, 수단에서 혁명을 일으킨 계층은 빈곤층이 아닌 상류층이었다. 군 간부 자녀들은 빈곤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수단의 경제난이 알 바시르의 책임이라 믿고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셋째, 수단 군대는 정권에 반기를 들고 무력까지 사용해 독재자에게 맞섰다. 정권이 군인을 우대했는데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 북한군은 선군 정치가 끝난 뒤로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탈북민들은 북한군의 사기가 꺾이고 분노가 커가고 있다고 증언한다.
 
넷째, 반대 세력의 지도자는 어디에서 출현할지 알 수 없다. 수단 시위대 지도자들은 행동을 개시하기 전까지 조짐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42세 고등학교 교사, 전통적 공주 복장 차림으로 군사령부 앞에서 시위를 주도한 22세 여대생도 있었다.
 
다섯째, 알 바시르는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지만,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중국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에게 정치적 은신처를 제공할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정권이 곧 몰락한다는 말은 아니다. 가장 견고해 보이는 독재 정권이라도 예기치 못한 시기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정치적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할 뿐이다. 어떤 나라의 역사도 질서정연하게 전개되는 법이 없고, 북한은 어쩌면 가장 예측 불가능한 흐름을 맞을 수도 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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