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래픽 유발자’ 해외 콘텐트 기업 갑질 사라질까

중앙일보 2019.12.05 16:09

방통위, 망 이용계약 가이드라인 발표   

#. 8월 22일 방송통신위원회는 페이스북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방통위가 지난해 페이스북을 상대로 “접속경로 변경으로 이용에 불편을 초래했다”며 과징금을 부여한 데 대해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 지난달 12일 SK브로드밴드는 방통위에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갈등을 중재해 달라”며 방통위에 재정을 신청했다.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 1년간 수차례 협상을 진행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발생한 이 두 사건은 글로벌 CP(콘텐트 제공 사업자)와 국내 통신사(ISP)간 갈등과 정부 개입 사례를 보여준 대표적 장면이다. 두 사건은 모두 통신사와 CP간의 망 이용 계약이 도화선이 됐다는 점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망 이용 계약 가이드라인’ 도입에 불을 당겼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0월 21일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망 이용 계약 가이드라인(안)을 공개했다. 방통위 측은 “망 이용과 관련해 사업자 간 사적 계약을 존중하며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사업자 간 자율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이용자 피해 발생, 불공정 행위를 통한 시장 왜곡 등 시장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제한된 상황에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가이드라인 마련의 취지를 밝혔다. 
 

관련기사

"통신사 글로벌 CP엔 을, 국내 CP엔 갑"  

 방통위는 특히 글로벌 CP와 통신사, 통신사와 국내 CP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반상권 방통위 이용자 정책총괄과장은 “통신사업자가 중소 CP(콘텐트 제공 사업자)에게 약관을 주면 중소 CP가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많지 않다. 거꾸로 글로벌 CP들이 표준 계약서를 내밀면 국내 통신사업자가 이를 수정하기란 쉽지 않다”며 “갑과 을의 관계가 상대적”이라고 말했다. 통신사가 글로벌 CP에겐 을이면서 동시에 국내 CP에겐 갑의 위치에 있다는 의미다. 이어 그는 “글로벌 CP보다 더 불리한 조건으로 망 이용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국내 CP에게 비용 측면에서 부담을 줄 뿐 아니라 콘텐트 경쟁력을 낮추는 이중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AP=연합뉴스]

 이런 취지에서 가이드라인은 크게 ▶망 이용계약의 원칙과 절차 ▶불공정행위 유형 ▶이용자 보호 등을 담았다. 방통위는 가이드라인 8조를 통해 상대방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계약의 조건을 명시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특정 계약 내용 만을 수용할 것을 강요하거나, 상대방이 제시한 안에 대해 불합리한 이유로 계약을 지연ㆍ거부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제 3자와 망 이용 계약을 체결하거나 거부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등이다.  
 가이드라인은 또 ‘본인이 체결한 다른 계약 조건과 비교해 상대방에게 현저하게 불리한 인터넷망 이용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담았다. 다만 방통위 측은 “대량 구매, 장기 구매, 선구매 등의 할인율 등이나 전략적 제휴 등으로 인한 계약 조건은 예외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페이스북 겨냥 "CP, 통신사업자에 이용자 불편 정보 미리 제공" 

‘페이스북 사건’과 관련한 보완 장치도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 가이드라인 11조(콘텐트제공사업자의 의무)는 “이용자의 콘텐트 이용에 현저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상되는 경우는 사전에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관련기사

'을'인 국내 CP는 "가이드라인 악용될 우려"  

 하지만 ‘을’을 보호하겠다고 나선 방통위의 취지와는 달리 정작 국내 CP 업계에선 가이드라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 국내 CP업계 관계자는 “트래픽 급증 시 통신사에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는 11조 내용은 국내 CP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으로 역차별을 가중하는 것”이라며 “통신사가 국내 CP와의 계약에 악용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통신사 역시 기대했던 것보다 가이드라인이 두루뭉술해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국내외 대형 CP의 망 이용 대가 관련 불공정 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 포함되길 기대했지만 구체성이 떨어져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점도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반상권 과장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사업자 간 다툼이 있을 때 중재를 하거나 관련 법을 해석할 때 지침이 될 수 있고, 시장에 시그널을 주자는 취지”라며 “향후 입법이 필요한 경우엔 입법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