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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히잡 쓰고 휠체어 농구…가정폭력 피해 22세 여성 웃음 되찾다

중앙일보 2019.12.05 05:02
“앞으로 나가.” “막아.” “패스.” “슛.”
지난달 중순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서부에 있는 사바르 센터의 운동장. 여성 휠체어 농구단이 한창 연습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양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밀고 달리면서 농구공을 골대에 던져 넣고 있었다. 선수들의 이마와 얼굴에는 구슬땀이 흘렀다. 휠체어를 몰면서 경기를 한다는 것과 머리에 히잡(이슬람권 여성들의 스카프)을 쓰고 긴팔에 긴 바지 차림인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농구단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연습 열기가 뜨거웠다. 방글라데시는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슬람 신자)인 이슬람권이다.  

12월3일 세계 장애인의 날 현장 취재
이슬람국 방글라데시 장애인 농구단
가정폭력 희생자 히잡 쓴 여성 등 모여
희망재활 나서자 국가대표 코치도 봉사
로힝야 난민 몰려온 가난한 방글라데시
생활도 힘든데 중증장애까지 안은 주민
난민 장애인과 나란히 재활훈련 받아
의족·교정기·보행연습으로 다시 걸음마
국제적십자위원회와 NGO 신체재활센터
경험·지식 나누면서 인도주의 실천 활동


여성 휠체어 농구단이 연습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여성 휠체어 농구단이 연습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40주년 신체재활센터의 휠체어 농구단

지난달 중순 방글라데시의 비정부기구(NGO)인 ‘신체재활센터(CRP)’ 운동장에서 목격한 여성 휠체어 농구단의 연습 장면이다. 1979년에 설립돼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는 CRP에서 여성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기 위해 운영하는 휠체어 농구팀이다. 2016년 생긴 이 팀은 여성 패럴림픽 위원회도 없는 이 나라에서 사실상 유일한 여성 휠체어 농구팀이다.  
 
신체장애센터 소개 자료에서 발레리 앤 테일러가 방글라데시 CRP를 찾은 영국 왕족에세 현장을 설명하고 있는 사진. [채인택 기자]

신체장애센터 소개 자료에서 발레리 앤 테일러가 방글라데시 CRP를 찾은 영국 왕족에세 현장을 설명하고 있는 사진. [채인택 기자]

영국 출신 테일러, 장애인 재활 외길 40년  

CRP는 40년 전인 1979년 12월 11일 영국 출신의 물리치료사 발레리 앤 테일러(75)가 세운 비정부 단체다. 그해 비영리 국제개발 조직인 ‘해외자원봉사단(VSO)’ 단원으로 방글라데시에 온 그는 지금까지 40년을 머물면서 장애인 재활이라는 단 하나의 일에 몰두해왔다. 그는 다카의 병원 창고에서 4명의 환자를 데리고 CRP를 시작해 현재 100병상 규모의 전문병원으로 키웠다.  
CRP는 국제인도주의 기관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와 협업으로 장애인 재활 사업을 펼친다. ICRC는 박애주의자 앙리 뒤낭이 156년 전인 1863년 설립한 국제 인도주의 기구다. 방글라데시와 북한을 비롯한 전 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는 신체재활센터(CRP)에서 여성 휠체어 농구 선수인 라트나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는 신체재활센터(CRP)에서 여성 휠체어 농구 선수인 라트나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가정폭력 피해자 라트나, 농구단에서 자립 꿈  

선수인 라트나(22세)는 4년 전 가정폭력으로 지붕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됐다. 2015년 CRP에 온 그는 재활치료를 받다 장애인 여성 농구단에서 휠체어 농구를 하기 시작했다. 라트나는 “농구를 하면 오로지 골을 넣거나 동료에게 공을 넘겨야 한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며 “농구를 하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 풍속에 따라 조혼을 하는 바람에 현재 11살반이 된 아들이 있지만 재활치료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라트나는 "올해 초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인도네시아, 네팔 팀과 시합을 해서 이긴 게 기억에 남는다"면서 "휠체어 농구를 하면서 보다 넓은 세계를 보고 더 큰 꿈을 꾸게 됐다"고 밝혔다. 미래의 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앞으로 화장품 사업이나 패션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남자 농구단 코치인 와시프 알리. 여성 휠체어 농구단을 자원봉사로 지도한다 [채인택 기자]

방글라데시 남자 농구단 코치인 와시프 알리. 여성 휠체어 농구단을 자원봉사로 지도한다 [채인택 기자]

 

국가대표팀 코치가 자원봉사로 지도 나서

라트나는 “재활치료의 하나로 시작한 휠체어 농구가 삶에 활기를 주고 미래의 꿈을 꾸게 해줬다”며 “패럴림픽에도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는 라트나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였다. 아쉽게도 방글라데시에는 아직 여성 패럴림픽 위원회가 없다.  
이곳에선 방글라데시 국가대표 남자농구팀 코치인 와시프 알리는 CRP 여성 휠체어 농구팀을 지도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알리는 “스포츠는 만국 공통의 언어”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이 기쁨을 얻는 모습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차토그람의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로힝야 난민인 무함마드 알롬이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방글라데시 동남부 차토그람의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로힝야 난민인 무함마드 알롬이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이중고 안은 난민 장애인 재활치료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 관구(광역행정구역)에 있는 쿠투팔롱 난민촌. 1991년부터 이웃 미얀마의 라카인 지역에서 종족·종교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라카인 이탈자(로힝야 인으로도 부름)들이 몰려 사는 곳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쿠루팔롱은 지난 9월 기준으로 61만3000여 명이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는 세계 최대 난민촌이 됐다.  
ICRC는 CRP센터를 통해 난민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고 있었다. 대나무와 비닐로 만든 임시 거처가 즐비한 난민촌의 좁은 비포장 도로와 벽돌로 만든 포장도로가 울퉁불퉁하게 깔린 산길을 한참 달리자 산비탈에 작은 가게가 보였다. 과자·음료수와 함께 차를 만들어 파는 찻집 겸 구멍가게다. 방글라데시 주민 거주지와 난민촌 모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계 수단이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쿠투팔롱 난민촌에 사는 로힝야 난민인 자히드 투산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방글라데시 동남부 쿠투팔롱 난민촌에 사는 로힝야 난민인 자히드 투산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투산, 의족으로 걸을 수 있게 되자 귀향 희망  

이 가게를 운영하는 55세의 자히드 투산은 왼쪽 다리가 없었다. 투산은 “미얀마에서 살 때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국경을 건너 난민촌에 온 뒤 의족을 받을 수 있었다. ICRC는 방글라데시의 비정부기구(NGO)인 신체재활센터(CRP)와 손잡고 맞춤형 의족은 물론 재활 훈련까지 제공한다. 투산은 “의족을 받고 재활훈련을 받아 보행이 가능해지자 독지가의 지원이 들어와 작은 가게를 열 수 있게 됐다”며 “내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되니까 이젠 내 발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재활 활동은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물론 심리적 안정까지 제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정 치료 중인 자모라(왼쪽 앞)이 가족과 방글라데시 ICRC 재활치료 담당자인 카지 임다둘 호크(오른쪽)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채인택 기자]

교정 치료 중인 자모라(왼쪽 앞)이 가족과 방글라데시 ICRC 재활치료 담당자인 카지 임다둘 호크(오른쪽)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채인택 기자]

 

선천성 장애 사모라, 교정치료 받고 학교 갈 꿈  

이어서 난민촌의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한 또 다른 마을을 찾았다. 오물이 썩고 있는 개울을 지나 대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고 비포장 산길을 한참 올라갔더니 대나무를 엮어 만든 좁은 집이 나타났다. 7세 소녀 사모라가 어머니, 언니 3명, 남동생 1명과 함께 집에서 손님을 맞았다. 사모라는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손님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언니가 엄마 화장품으로 사모라에게 화장을 해줬다고 한다. 사모라는 왼쪽 다리에 교정기를 차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휘어진 선천성 질환인 내반족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혼자서 서지도 걷지도 못했던 사모라는 3개월 전에 찾아온 ICRC 직원들의 도움으로 교정기를 착용하고 CRP센터에서 재활훈련을 한 뒤 이제는 혼자서 걸어 다니고 있었다. 사모라는 “올해 초등학교에 갈 나이인데 걸을 수 없어 입학을 하지 못했다”며 “내년에는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도 사귀고 싶다”고 말했다.  
차토그람 CRP에서 로힝야 난민(왼쪽)과 방글라데시 현지 주민들이 나란히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채인택 기자]

차토그람 CRP에서 로힝야 난민(왼쪽)과 방글라데시 현지 주민들이 나란히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채인택 기자]

 

난민과 지역주민이 나란히 재활훈련  

ICRC의 지원으로 CRP가 운영하는 차토그람(과거 치타공으로 알려짐) 센터에선 라카인 탈출 난민과 방글라데시 지역 주민 장애인이 나란히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지난해 난민촌 취재 도중 만났던 무함마드 알롬과 재회할 수 있었다. 알롬은 “미얀마에 살던 1991년 소요 사태로 양 다리에 부상을 입었는데 상처가 덧나면서 이듬해 모두 잃었다”며 “기어서 국경을 넘어왔지만 난민촌에서 ICRC를 만나면서 의족을 얻고 재활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알롬은 재활치료실에서 혼자서 의족을 이용해 늠름하게 걸고 있었다. 그는 “의족으로 재봉틀도 돌려 생업인 의류 수선 일도 하고 있다”며 “혼자서 시장도 가고 일도 하는 등 의족과 재활훈련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라고 소개했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차토그람의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로힝야 난민인 무함마드 알롬이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방글라데시 동남부 차토그람의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로힝야 난민인 무함마드 알롬이 재활 훈련을 받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재활치료 받은 지역주민, 생활 복귀 꿈

그의 옆에서는 난민촌 근처의 방글라데시 우키야 마을에 사는 현지 주민 조후라 베굼이 한쪽 다리에 의족을 하고 걷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24개월 전 사고로 다리를 다쳐 결국 절단했다는 그는 집에만 머물며 화장실도 아들딸의 도움을 받고 겨우 갈 수 있었다. 하지만 10일 전에 처음으로 의족을 맞추고 재활 훈련을 받으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베굼은 “이젠 혼자 화장실에 가는 것은 물론 가사 일도 다시 하면서 집안에서 내 위치를 되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날 CRP 차토그람 센터에선 2명의 난민과 6명의 난민촌 인근 주민이 나란히 의족으로 보행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ICRC 콕스바자르 현장 사무소의 공보 담당 잠쉐돌 카림은 “난민촌과 그 주변을 모두 챙기면서 지역 주민도 돌보고 난민도 보살피는 것이 ICRC의 접근법”이라고 소개했다. 장애인 재활이 필요한 난민과 지역 주민 사이에 경계는 없었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차토그람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만난 로힝야 난민 무함마드 알롬이 장애를 안게 된 사연을 말하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방글라데시 동남부 차토그람 신체재활센터(CRP)에서 만난 로힝야 난민 무함마드 알롬이 장애를 안게 된 사연을 말하고 있다. [비디오 화면 캡처]

 

12월 3일은 세계장애인의 날

지난 12월 3일은 ‘세계 장애인의 날(International Day of People with Disability)’이다. 유엔이 1982년 제37회 유엔총회에서 지정하고 1992년부터 시행한 기념일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 장애인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이를 위한 보조 수단의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 복지와 재활 수준을 점검하는 날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2007년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4월 20일을 법정기념일인 ‘장애인의 날’로 지정해 행사를 열지만, 국제사회에선 세계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나라가 상당수다.  
현재 세계 최대의 난민촌인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촌의 모습. 지난해 진창이던 길에 벽돌이 깔려 비교적 깔끔해진 모습이다. [채인택 기자]

현재 세계 최대의 난민촌인 방글라데시 쿠투팔롱 난민촌의 모습. 지난해 진창이던 길에 벽돌이 깔려 비교적 깔끔해진 모습이다. [채인택 기자]

 

156년 된 ICRC와 40년 된 CRP의 협업

장애인 중에서도 가난이나 사회적 상황 때문에 적절한 재활 치료나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경제적 약자와 난민은 국제사회의 각별한 관심 대상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장애를 가진 난민과 지역 주민을 위한 활동을 펼치는 방글라데시를 찾았던 이유다. ICRC 한국사무소의 박지해 공보관은 “난민과 그들을 받아들인 가난한 농촌 마을의 장애인들에게 복지와 재활 기회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숱한 사람의 헌신과 수많은 나라의 기부 덕분”이라고 말했다. 
직접 방문한 방글라데시의 여러 장애인 재활시설에선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이 넘쳤다.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치열한 현장이었다.  
 
다카·쿠투팔롱·차토그람(방글라데시)=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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