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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전원회의 소집···한미 "北 중대사변 준비" 첩보입수

중앙일보 2019.12.05 01:30 종합 1면 지면보기
김정은

김정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의 시한으로 정한 이른바 ‘연말시한’을 앞두고 북·미가 강대강으로 대치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얼어붙고 있다. 북한은 4일 박정천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명의의 담화를 내 “미국이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도 상응행동을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총참모장은 담화에서 “미국 대통령이 3일 영국에서 진행된 나토 수뇌자 회의 기간 우리에 대한 재미없는 발언을 하였다는 데 대해 전해들었다”며 “자국이 보유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미국에 있어서 매우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군 서열 2위 총참모장 이례적 담화
“미국이 무력 쓰면 상응 대응할 것”

핵·ICBM 모라토리엄 취소 가능성
북, 구체적 회의 날짜는 언급 안 해

김정은, 49일 만에 백두산 등정
군사령관 대동 사실상 ‘야전회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영국 런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북한에 대해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발언하자 북한이 바로 다음날 박 총참모장의 담화로 맞받은 것이다. 그동안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외무성 인사들이 대미 담화를 냈지만 군부 인사가 담화를 낸 건 이례적이다. 박 총참모장은 북한 군부 서열 2위 인사다. 그는 “우리 무력의 최고사령관도 이 소식(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언급)을 매우 불쾌하게 접했다”고도 했다. 
 
김정은, 당 전원회의 연말 소집…한·미 ‘중대사변’ 첩보 입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모닥불 쬐는 모습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시절을 연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간부들과 백두산에 올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모닥불 쬐는 모습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시절을 연출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뉴시스]

북한군 최고사령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엔 ‘중대한 결정’을 논의하기 위해 노동당 전원회의를 이달 하순 소집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무력’ 언급을 하고, 2017년 말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김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호칭한 뒤 북한이 내놓은 발표다. 통신은 “조선혁명 발전과 변화된 대내외적 정세의 요구에 맞게 중대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12월 하순에 소집할 것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원회의는 당대회와 당대회 사이 중요한 노선이나 대내외 정책의 변화를 결정하는 정책결정기구다.
 
북한은 지난해 4월 20일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중지한다”는 ‘모라토리엄’을 공식 확정했다. 당시는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전원회의로, 김 위원장은 첫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라토리엄을 약속했다.
 
부인 이설주도 같이 군마를 탔다. [연합뉴스]

부인 이설주도 같이 군마를 탔다. [연합뉴스]

그러나 북한이 이번엔 “변화된 대내외적 정세”라고 소집 이유를 밝힘에 따라 이달 말까지 북·미 간 극적인 반전이 없이 전원회의가 열릴 경우 모라토리엄 결정을 취소하며 핵실험 및 ICBM 시험발사를 재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이번 전원회의는 김 위원장의 집권 이후 처음으로 12월에 소집됐다는 점에서 ‘연말시한’과 연계된 것으로 대북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통상 12월 한 달 내내 총화(결산)와 신년사 준비로 정치 행사를 할 여력이 없어 12월에 전원회의를 열지 않아 왔다”며 “따라서 12월 소집은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단 북한이 이달 하순으로 시기를 밝히고 구체적인 날짜를 언급하지 않은 건 그 사이 미국의 향후 대응을 지켜보겠다는 뜻이 담겼다는 관측도 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이미 새로운 길의 내용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런데도 연말 전원회의라고 알린 건 ‘그때까지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뜻을 전달하며 미국에 공을 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원회의 소집을 알린 북한은 김 위원장의 백두산 군마 등정도 공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최고영도자 동지께서는 동행한 지휘성원들과 함께 군마를 타시고 백두대지를 힘차게 달리시며 백두광야에 뜨거운 선혈을 뿌려 조선혁명사의 첫 페이지를 장엄히 아로새겨온 빨치산의 피 어린 역사를 뜨겁게 안아보시었다”고 보도했다. 49일 전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올랐던 김 위원장은 특히 이날은 각군 사령관과 군단장 등을 대동했다. 통신은 “박정천 총참모장과 군종사령관, 군단장들”이라고 알렸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에서 부인 이설주와 함께 모닥불을 피우는 모습을 공개했지만, 군 인사들을 대동한 건 북한이 혁명 성산으로 여기는 백두산에서 ‘대내외적 정세’에 대응해 일종의 야전회의를 열어 출정식을 연상케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설주가 김 위원장 어깨를 짚고 개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이설주가 김 위원장 어깨를 짚고 개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 관계가 대치 국면으로 급속하게 바뀐 배경은 비핵화 협상을 놓고 북·미가 평행선을 달렸기 때문이다. 당초 양측은 11월 말~12월 초 실무협상 개최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또 제재해제가 먼저냐, 비핵화부터 진행하느냐의 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했다.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11월초 북한에 실무협상을 제의하면서 대화 기류가 일부 만들어지는 듯했다”며 “하지만 북한이 전부 아니면 안 된다(all or nothing)는 식으로 미국을 압박하며 11월 말까지 미국의 입장을 달라고 요구했고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서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됐다”고 귀띔했다.
 
북한이 3일 미국을 향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언급하며 사실상 ICBM 시험 발사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나, 그간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미사일 발사에 대해 “문제될 것이 없다”며 개의치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거론한 자체가 가파르게 고조되고 있는 북·미 관계의 수위를 보여준다.
 
특히 지난달부터 나타나는 북한의 내부 동향을 놓곤 정보 당국도 민감하게 관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내부적으로 연말을 기해 ‘중대 사변’을 준비하고 있다는 미확인 첩보를 한·미 정보 당국이 입수해 이에 따른 북한 동향 파악에 나섰다고 한다. 북한의 ‘새로운 길’이 한반도 긴장 고조를 통한 극한의 대치라는 과거의 벼랑끝 전술로의 회귀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지난달 하순부터 미군 특수 정찰기가 사실상 한반도 상공에 상주하면서 대놓고 대북 감시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 언급 이후 미국 정부는 일단 “싱가포르 합의 이행”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한 채 북한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3일(현지시간) 중앙일보의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관계 전환, 항구적인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 등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을 진전시키는 데 계속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실무협상을 이끌었던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는 이날 한국국제교류재단(KF) 워싱턴사무소 송년 행사에 참석해 “현 시점에 우리가 희망했던 만큼 많은 진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력사용 가능성’ 언급에도 공식적으로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 나가겠다는 입장을 알렸다.
 
정용수·백민정 기자,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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