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오끼 -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서는 매일 아침 활어, 선어 경매장이 선다. 오전 9시 선어 경매가 시작되자 싸늘했던 부둣가에 비로소 활기가 돈다. 알이 그득 밴 도루묵, 기름기 좔좔 도는 가자미, 못생긴 곰치가 경매장 바닥에 누워 팔려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묵직하고 칼칼한 국수의 힘

오뚜기칼국수에서 먹은 장칼만둣국.

장칼국수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대중음식이다. 값은 저렴한데 깊은 포만감을 준다.
양이 워낙 푸짐해 공깃밥은 엄두가 안 났다. 이 가격에 이만큼의 포만감을 안겨주는 음식도 드물 터이다. 손님이 문 열고 나갈 때마다 김계화(71) 사장은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는 말을 빠뜨리는 법이 없었다. 소박한 음식과 인사 한마디가 건네준 힘은 꽤 셌다.
제철 맞은 도루묵

묵호항과 이웃한 마을 논골에는 등대를 향해 오르는 논골담길이 잇다. 골목에는 옛 시절을 추억하는 벽화가 빼곡히 그려져 있다. 논골은 늘 장화를 신고 다녀야 할 정도로 질척였다.
“동피랑(통영)과 총포(여수)의 벽화는 쇠락한 마을을 예쁘게 보이기 위한 장식용 벽화인 데 비해 이 마을의 벽화는 현실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삶은 무엇인지 물어오는 느낌, 힘든 시절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 있는 것이다.”
논골담길을 걸은 뒤 묵호항 활선어센터를 찾았다. 묵호항을 먹여 살렸던 명태는 아예 씨가 말랐고, 오징어는 ‘금(金)징어’가 된 지 오래다. 대신 배가 터지도록 알을 밴 도루묵이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었다. 못생긴 곰치와 기름기 좔좔 도는 대구도 많았다. 활어 코너에서는 대방어가 펄떡였다. ‘충남수산’ 조진숙 사장은 “며칠만 더 있어도 도루묵 알이 질겨진다”며 “지금 먹어야 가장 부드럽고 고소하다”고 강조했다.

알배기 도루묵은 초겨울인 지금 먹어야 제맛이다. 조금만 지나면 알이 질겨진다.
동해 뱃사람의 소울푸드
사는 게 퍽퍽하다고 느껴지면 어시장 경매장을 찾는다. 방금까지 바다를 헤집던 물고기,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뱃사람, 불가해한 암호를 외치는 경매사, 악착같이 좋은 물건을 찾는 상인들이 엉켜 있는 장면은 가장 활기 넘치는 삶의 현장 중 하나일 것이리라.

묵호항 경매장의 주인공은 곰치다. 죽은 생선을 파는 선어 경매인데 몸을 꿈틀, 입을 뻐끔거리는 곰치가 많았다.
“곰치 배는 강릉·속초보다 동해가 월등히 많습니다. 곰치는 1년 내내 잡히는데 날이 추울 때 곰치국을 많이 찾으니 겨울에 가격이 오르죠. 12월부터 대게잡이를 시작하면 어획량이 줄어 곰치 값이 더 뜁니다.”

동해에서는 예부터 김치를 넣고 곰치국을 끓여 먹었다. 고된 뱃일과 음주로 꼬인 속을 시원한 국물을 들이키며 풀어줬다.
전국 3대 오일장과 소머리국밥
묵호항에서 남쪽 9㎞ 아래에 북평장이 있다. 조선 정조 20년(1796년) 기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시장이다. 그때부터 오일장은 매달 3‧8‧13‧18‧23‧28일, 꼭 여섯 번씩 열렸다.
북평장은 전국 3대 오일장으로 꼽히는 큰 장이다. 그럴 수밖에. 동해안을 종단하는 7번 국도뿐 아니라 정선에서 넘어오는 42번 국도, 태백과 연결된 38번 국도가 북평장 바로 앞까지 나 있다. 동해시 이정숙 관광과 계장은 “한마디로 북평장엔 없는 게 없다”며 “지금도 많은 시민이 대형마트보다 북평장에서 장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북평장은 전국 3대 오일장으로 꼽힌다. 농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사기도 하고 맛난 주전부리를 먹기도 한다.

북평장 한편에서 47년째 고깃국을 끓이고 있는 대성집 정봉여 사장.

대성집에서 맛본 소머리국밥. 국물은 진득하고 고기는 입에서 녹을 듯 부드럽다.
밥반찬 말고 빵 반찬
묵호항 인근 후미진 골목에 프랑스의 작은 슈퍼마켓 같은 공간이 있다. 직접 만든 빵과 식재료를 파는 ‘메르시마마 스튜디오’다. 먼저 알아두자. 일주일에 단 3일, 목~토요일에만 문을 연다.
메르시마마 권혜경(60) 대표는 이력이 독특하다. 30년 동안 패션 일을 하다가 돌연 ‘빵 반찬’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단다. 한국에선 빵에 잼 발라 먹는 게 보통인데 빵의 본고장 프랑스처럼 다양한 반찬을 곁들이는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

메르시마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권혜경 대표. 약 30년 간 패션 일을 하다가 고향인 동해에 정착해 빵 반찬을 만들고 있다.
반찬은 다채롭다. 구운 토마토, 바질페스토 같은 유럽식이 있는가 하면 아보카도 명란, 앙버터 같은 퓨전 메뉴도 있다. 빵 반찬 3종 세트(2만7000원)와 명란 바게트(5800원)가 가장 인기다. 전화로 예약하고 방문하면 바게트에 얹은 빵 반찬을 맛볼 수 있다. 따뜻한 차와 함께 제법 든든할 정도로 다양한 음식이 나온다. 시식은 무료이나, 자선단체에 보낼 기부금(1인 2000원)을 받는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확고한 권 대표도 결국 고향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려면 환경이 가장 중요한데 미세먼지 청정지역인 동해만 한 곳이 없더라고요.”

메르시마마에서 파는 빵 반찬. 유럽식 반찬도 있고 명란과 아보카도, 쪽파 등을 결합한 퓨전 메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