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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겨울왕국 2’를 겨울 내내 보려면

중앙일보 2019.12.05 00:17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주말에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 주연의 ‘아이리시맨’(감독 마틴 스코세이지)을 보고 싶었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신작’인데도 집 근처 멀티플렉스 체인 영화관에선 조조 혹은 심야 상영뿐이었다. 이젠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나마 넷플릭스 영화니까 집에서 볼 수 있다. 상당수 영화는 몇 주 만에 내려와 영화 DB 리스트에나 존재하기 일쑤다.
 
멀티플렉스의 장점은 여러 영화 중에 골라볼 수 있단 거다. 그런데 지금 극장은 ‘겨울왕국 2’ 일색이다. 개봉 3주차인 12월 3일 상영 점유율이 51.1%다. 이날 전국 극장의 총 상영 회차 중 절반이 ‘겨울왕국 2’였단 얘기다. 개봉 당일인 11월 27일 63%나 첫 주말 74%에 비해 떨어진 게 이 정도다. 프라임 시간대(오후 1~11시)는 더 하다.
 
2014년 1월 개봉한 1편 땐 달랐다. ‘변호인’이 1000만 고지로 달려가던 중 엇비슷한 점유율로 출발했다. 최고 상영 점유율은 30% 정도였다. 당시엔 점유율 50% 이상이 드물었다(2013~2015년 4편). 2016~2018년엔 12편이나 된다. 올해는 벌써 7편이다. ‘겨울왕국’ 1편은 1000만 관객을 석 달에 걸쳐 모았지만 2편은 개봉 14일 만에 900만명이 봤다.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다.
 
하루 최고 상영 점유율 50% 넘긴 영화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하루 최고 상영 점유율 50% 넘긴 영화는.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국 같은 쏠림 현상은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노철환 인하대 교수(연극영화학)에 따르면 프랑스는 극장 협약에 따라 스크린이 6개 이상인 멀티플렉스에선 동일 영화에 최대 2개만 스크린을 준다. 흥행에 따라 순차적으로 늘려가는 미국에서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전체 상영 회차의 10%를 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선 ‘엔드게임’ 최고 상영 점유율이 80.9%에 이르렀다. ‘겨울왕국 2’의 기세가 꺾일 때쯤엔 새 흥행 기대주가 일제히 그 자리를 채울 것이다.
 
극장은 “관객이 원하니 많이 배정할 뿐”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좌석판매율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지난 토요일 ‘겨울왕국 2’ 좌석이 절반 채워질 동안(50.2%), ‘블랙머니’(45.2%)와 ‘신의 한 수: 귀수편’(40.5%)도 선전했다. 평일엔 셋 다 10% 안팎으로 비슷하다. ‘겨울왕국 2’를 동시에 너무 많이 건 결과다.
 
자율이 지켜지지 않으니 ‘규제’ 요구가 커진다. 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프라임 시간대 최고 상영률을 50% 이하로 제한하도록 했다. 가장 문화적인 여가 행위에 법과 규제가 끼어드는 게 바람직하진 않다. 하지만 ‘겨울왕국 2’를 느긋이 보려던 관객의 선택권도 뺏길 지경이다. 엘사를 겨울 내내 보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한 때다.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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