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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와서 미국 때린 왕이 “일방주의가 세계평화 최대 위협”

중앙일보 2019.12.05 00:03 종합 14면 지면보기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4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왕 부장은 오늘(5일)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다. 김상선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4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왕 부장은 오늘(5일)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한다. 김상선 기자

4일 방한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최근 세계 안정과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은 일방주의가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패권 행위로 국제관계 준칙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비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다.
 

강경화와 회담에서 이례적 발언
“한국과 함께 다자무역 수호할 것”
중국 입장 동조해달라는 메시지
한한령 등 사드 보복 개선 논의

왕 위원은 이날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회담 모두발언에서 “중국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괴롭히는 것에 반대하고, 자신의 힘만 믿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에 반대하며,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물론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는 것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무역 전쟁에서 추가 관세 부과 카드로 중국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미국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특히 ‘내정 간섭’은 홍콩 사태 등과 직결돼 있다. 미국은 홍콩 인권법에 이어 위구르 인권법까지 추진하며 인권 문제로도 중국을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은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해왔다.
 
왕 위원의 발언은 기존 중국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지만, 때와 장소가 의미심장했다.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시도로 한·미 간 균열이 가까스로 봉합된 직후 서울을 방문, 한국의 외교 수장 면전에서 미국을 때린 격이기 때문이다.
 
특히 왕 위원은 양국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미국을 저격했다. 통상 취재진이 직접 보고 듣는 회담 모두발언은 대부분 인사말과 덕담으로 채워지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이례적이었다. 한국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메시지라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왕 위원은 또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모든 책임 있는 나라들과 함께 다자주의 이념을 견지하고, 공평과 정의의 원칙을 지키고, 굳건하게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체제를 수호하고, 굳건하게 국제법을 기초로 하는 국제질서를 수호하고, 굳건하게 WTO(세계무역기구)를 초석으로 하는 다자무역 체제를 수호할 것”이라며 “나는 우리 사이에 반드시 새로운 공동 인식이 형성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모두발언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공동 인식’은 한국이 이런 중국의 입장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여러 방면에서 미·중 간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왕 위원의 발언에는 한국을 중국 쪽에 좀 더 가깝게 끌어당기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왕 위원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홈페이지에 발언 전문을 게재했다. 왕 위원이 사전에 준비한 원고를 그대로 소화했다는 뜻이다.
 
한한령(한류 금지령) 등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한 논의도 있었다. 강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그간 양국관계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성과를 평가하고 다소 미진한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진한 부분’은 사드 보복을 뜻한다.
 
이와 관련, 양측은 차관급 인문교류 촉진위원회와 전략대화 채널 등을 곧 열어 필요한 사안을 논의하자고 합의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서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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