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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 못 앉은 ‘1인실’에 막내가…씨티은행 파격실험

중앙일보 2019.12.05 00:02 경제 5면 지면보기
씨티은행 신사옥의 큐브 모양 회의실. 회의실에서 자신의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다. 한애란 기자

씨티은행 신사옥의 큐브 모양 회의실. 회의실에서 자신의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다. 한애란 기자

매일 아침 앉을 자리를 선택하는 자율좌석제, 서서 일할 수 있는 높이 조절 책상, 최고급 독일제 사무용 의자, 각도 조절 가능한 듀얼 모니터, 어느 컴퓨터나 내 컴퓨터가 되는 가상데스크톱인프라.
 

문래동 영시티의 자율좌석제
높이조절 책상, 카페석, 독방
누구나 원하는 대로 선택 가능

계급별 자리 없애니 문화 달라져
첨단시설보다 ‘마음 관리’가 중요

지난달 28일 방문한 한국씨티은행의 서울 문래동 영시티 신사옥엔 눈길을 끄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다. 카페 조명과 블라인드 디자인마저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차별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었다.
 
◆오늘의 자리는 골방? 카페?=오전 8시 40분, 이 은행 최윤석 부부장이 영시티 12층 키오스크에서 앉을 자리를 골랐다. 출입증을 대고 그날의 근무시간을 입력한 뒤 초록색으로 표시된 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최 부부장은 “일어나서 일하고 싶어서 높이 조절을 할 수 있는 책상을 골랐다”고 말했다.
 
휴식을 취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워크카페. 여기에도 스크린과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사진 씨티은행]

휴식을 취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워크카페. 여기에도 스크린과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사진 씨티은행]

오전 9시가 되자 12층이 3분의 2가량 찼다. 직원들이 선택한 자리는 취향 따라 제각각이었다. 높이 조절 책상과 두 개의 모니터가 있으면서 전망도 좋은 창가 자리가 인기였다. 카페 같은 느낌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벤치좌석도 많이 선택받았다. 골방처럼 콕 처박혀 바깥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1인실(집중업무실)도 일찍 찼다.
 
어느 자리든 세 가지는 기본이다. 화상회의 시스템과 170만원짜리 독일제 의자, 그리고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다. 공유좌석제를 할 수 있는 건 VDI 덕분이다. 사무실·회의실·카페 어디에서든 컴퓨터로 로그인만 하면 본인의 컴퓨터를 불러올 수 있다. 자연히 회의자료를 따로 만들 필요도 없고, 회의가 끝난 뒤 내용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다.
 
창밖을 바라보며 일하는 카페 느낌의 자리도 인기다. [사진 씨티은행]

창밖을 바라보며 일하는 카페 느낌의 자리도 인기다. [사진 씨티은행]

◆“종이 사용량 70% 절감”=이 모든 건 씨티은행이 새 사무공간에 적용하는 글로벌 표준인 ‘씨티(City) 플랜’을 따랐다. 발데라바노 발렌틴 소비자금융그룹 부행장은 “자신의 아이디만 입력하면 빌딩 곳곳에서 일할 수 있다”며 “종이 사용이 기존보다 70%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공간이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 이전 새문안로 사옥의 자리 배치는 여느 국내 기업과 같았다. 높은 직급이면 창가이고, 말단 직원은 통로 옆자리였다. 자율좌석제가 되면서 그 문화는 깨졌다. 말단 직원도 일찍 오면 집중업무실을 차지할 수 있다. 자연스레 자리의 평등이 이뤄졌다.
 
말만 자율좌석이지, 자리에 물건을 쌓아두는 식으로 점점 ‘고정좌석화’하진 않을까. 물어보니 매일 밤 자리에 남아있는 물건을 싹 치워서 유실물센터에 갖다둔다고 했다. 찾으러 가기 귀찮다 보니 웬만하면 물건을 남겨두지 않는다. 대신 층마다 있는 개인 사물함을 이용한다.
 
씨티은행 최윤석 부부장이 출근길에 자신이 앉을 자리를 고르고 있다. 한애란 기자

씨티은행 최윤석 부부장이 출근길에 자신이 앉을 자리를 고르고 있다. 한애란 기자

◆변화에 대한 불안감까지 관리=씨티은행 소비자금융그룹은 그동안 한미은행과의 합병(2004년) 전 옛 씨티은행의 본사였던 종로구 새문안로 사옥을 썼다. 소비자금융 관련 유관부서는 서울 시내 세 곳(창신동, 노량진, 선릉역)에 흩어져 있었다. 이를 문래동 영시티로 모으는 것이 확정된 건 1년 반 전이다.
 
최신 시설로 꽉 들어찬 신사옥으로의 이사. 직원들은 반겼을까. 처음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서울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가는 데다 ‘거기 가면 자기 자리도 없다더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았다.
 
“1000명 넘는 인원이 동시에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기존 직원에게 생소한 자율좌석제 같은 많은 변화도 따랐지요.”
 
신화선 비즈니스개선본부 본부장은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이러한 변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도록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변화 관리(Change Management)’다.
 
먼저 올해 초부터 이사 예정일(10월 7일 완료)을 공개했다. 이후 수시로 현재 공사가 얼마나 진척됐는지를 수시로 알렸다. 막연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부서마다 1명씩 총 60명 정도의 ‘변화 요원(Change Agent)’을 지정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10회에 걸쳐 교육을 했다. ‘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중요한가’라는 철학적인 내용부터, 이삿짐을 어떻게 싸야 하는지까지 다양했다. 이를 각 변화 요원이 부서에 전파하고, 부서원의 질문과 건의를 받아 담당 부서에 전달케 했다. 이사 대상 직원 1600명이 수천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어떤 질문과 건의도 무시당하지 않았다. 사소한 질문까지 모두 답을 받았다. 서울 내 이전인데도 구리·분당·일산을 오가는 통근버스가 생기고, 문래동 사옥과 종로구 다동 본사를 하루 세 차례 오가는 셔틀버스도 생겼다. 심상훈 RE자산관리부장은 “사실 불만 대부분은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며 “되도록 많은 정보를 e메일 등을 통해 알리고 질문엔 모두 피드백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변화 관리는 글로벌 표준 사무공간 개선 프로그램(씨티 플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거의 건물 디자인과 동등한 수준이지요.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놨어도 직원들의 변화에 대한 우려를 잘 추스르지 못하면 소용없으니까요.”
 
심상훈 부장의 설명이다. 변화가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결국 직원의 마음가짐에 있음을 글로벌 은행은 알고 있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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