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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도 못앉은 '노른자리' 막내가···씨티은행 신사옥 파격실험

중앙일보 2019.12.04 06:00
매일 아침 앉을 자리를 선택하는 공유 좌석제, 일어서서 일할 수 있는 높낮이 조절 책상, 170만원짜리 독일제 사무용 의자, 각도 조절 가능한 듀얼 모니터, 어느 컴퓨터나 내 컴퓨터가 되는 가상데스크톱인프라.

 
지난달 28일 방문한 한국씨티은행의 서울 문래동 영시티 신사옥엔 눈길을 끄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다. 조명과 블라인드, 가림판 디자인마저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차별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었다.

 

오늘의 자리는 골방? 카페?

씨티은행 최윤석 부부장이 출근길에 자신이 앉을 자리를 고르고 있다. 한애란 기자

씨티은행 최윤석 부부장이 출근길에 자신이 앉을 자리를 고르고 있다. 한애란 기자

 
오전 8시 40분, 이 은행 최윤석 부부장이 영시티 12층 키오스크에서 앉을 자리를 골랐다. 출입증을 대고 자신의 근무시간을 입력한 뒤 초록색으로 표시된 자리 중 하나를 선택하면 거기가 바로 자리다. 최 부부장은 “서서 일하고 싶어서 높이 조절을 할 수 있는 책상을 골랐다”고 말했다.

 
오전 9시가 되자 12층 3분의 2가량 찼다. 선택한 자리는 취향 따라 제각각이었다. 높이 조절 책상이 있으면서 전망 좋은 창가 자리가 인기였다. 자유롭게 각도 조절이 되는 두 개의 모니터도 갖춰진 자리다. 카페 같은 느낌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벤치좌석도 많이 선택받았다. 골방처럼 콕 처박혀 바깥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자리(집중업무실)도 일찍 찼다.

 
높이 조절 책상과 각도 조절 되는 두개의 모니터, 화상회의 시스템 등이 갖춰진 문래동 신사옥. 한애란 기자

높이 조절 책상과 각도 조절 되는 두개의 모니터, 화상회의 시스템 등이 갖춰진 문래동 신사옥. 한애란 기자

어디서든 로그인만 하면 내 컴퓨터

어느 자리든 세 가지는 기본이다. 본사 또는 해외와 화상회의를 위한 시스템과 하나에 170만원짜리인 최고급 독일제 사무의자, 그리고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다.  
 
공유좌석제를 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가상데스크톱인프라(VDI) 덕분이다. 사무실·회의실·카페 어디에서든 컴퓨터로 로그인만 하면 그 컴퓨터가 자기 것이 된다. 회의실에서 바로 자신의 컴퓨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따로 회의자료를 만들 필요도 없고, 회의가 끝난 뒤 내용을 정리하느라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다.

 
씨티은행 신사옥의 큐브 모양 회의실. 회의실에서 자신의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다. [씨티은행]

씨티은행 신사옥의 큐브 모양 회의실. 회의실에서 자신의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다. [씨티은행]

 
이 모든 건 씨티은행이 새 사무공간에 적용하는 글로벌 표준인 ‘씨티(City) 플랜’을 따랐다. 발데라바노 발렌틴 소비자금융그룹 부행장은 “자신의 아이디만 입력하면 빌딩 곳곳에서 일할 수 있다”며 “종이 사용이 기존보다 70%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자리의 평등, 문화의 변화

공간이 바뀌면 문화도 바뀐다. 이전 종로구 새문안로 사옥의 자리 배치는 여느 국내 기업과 같았다. 높은 직급이면 창가이고, 말단 직원은 통로 옆자리였다. 공유좌석제가 되면서 그 문화는 깨졌다. 말단 직원도 일찍 오면 집중업무실을 차지할 수 있다. 자연스레 자리의 평등이 이뤄졌다.

 
창밖을 바라보며 일하는 카페 느낌의 자리도 인기다. 한애란 기자

창밖을 바라보며 일하는 카페 느낌의 자리도 인기다. 한애란 기자

 
혹시 말만 공유좌석이지, 자리에 물건을 쌓아두는 식으로 점점 ‘고정좌석화’하진 않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매일 밤 자리에 남아있는 모든 물건을 싹 다 치워서 유실물센터에 갖다둔다고 했다. 찾으러 가는 것이 귀찮다 보니 웬만하면 물건을 놔두지 않는다. 대신 층마다 있는 개인 사물함을 이용한다.

 

직원의 막연한 불안감을 관리하라

씨티은행의 소비자금융그룹은 그동안 한미은행과의 합병(2004년) 전 옛 씨티은행의 본사였던 종로구 새문안로 사옥을 썼다. 소비자금융 관련 유관부서는 서울 시내 세 곳(창신동, 노량진, 선릉역)에 흩어져 있었다. 이를 한곳에 모으는 건 오래전부터 구상해왔지만, 문래동 영시티로의 이전이 확정된 건 1년 반 전이다.  
 
최신 시설로 꽉 들어찬 신사옥으로의 이사. 직원들은 반겼을까. 처음엔 꼭 그렇지도 않았다. 지역적으로 (서울의) 외곽으로 가는데다 ‘거기 가면 내 자리도 없다더라’는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았다.

 
 조용히 일하고 싶은 직원이 선택하는 집중업무실. 한애란 기자

조용히 일하고 싶은 직원이 선택하는 집중업무실. 한애란 기자

 
“1000명 넘는 인원이 동시에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기존 직원에게 생소한 자율좌석제, 가상데스크톱인프라 사용 같은 많은 변화도 따랐지요.”

 
신화선 비즈니스개선본부 본부장은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이러한 변화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도록 돕기 위해 부서별로 체인지 에이전트(변화 요원, Change Agent)를 임명하고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변화 관리(Change Management)’다.

 
먼저 올해 초부터 이사 예정일(10월 7일 완료)을 공개했다. 이후 수시로 현재 공사가 얼마나 진척됐는지를 수시로 알렸다. 막연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부서마다 1명씩 총 60명 정도의 ‘변화 요원(Chang Agent)’를 지정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10회에 걸쳐 교육을 했다. ‘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중요한가’라는 철학적인 내용부터, 이삿짐을 어떻게 싸야 하는지까지 다양했다. 이를 각 변화 요원이 부서에 전파하고, 부서원의 질문과 건의를 받아 담당 부서에 전달케 했다. 이사 대상 직원 1600명이 수천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씨티은행 발렌틴 부행장은 신사옥으로 이전한 뒤 종이 사용량이 70%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씨티은행]

씨티은행 발렌틴 부행장은 신사옥으로 이전한 뒤 종이 사용량이 70%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씨티은행]

 
어떤 질문과 건의도 무시당하지 않았다. 사소한 질문까지 모두 답을 받았고 100% 해결책을 제시해줬다. 서울 내 이전인데도 구리·분당·일산을 오가는 통근버스가 생기고, 문래동 사옥과 종로구 다동 본사를 하루 세 차례 오가는 셔틀버스도 생겼다. 심상훈 RE자산관리부장은 “사실 불만 대부분은 정보가 원활하게 공유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라며 “되도록 많은 정보를 e메일 등을 통해 알리고 질문엔 모두 피드백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선발대’도 꾸렸다. 1차 선발대는 이사 예정일 석 달 전부터 문래동 근무를 시작했다. 실제 일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찾기 위해서였다. 2차 선발대는 이사 날짜 일주일 전에 문래동으로 왔다. 아무런 끊김 없이 이사 오자마자 일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휴식을 취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워크카페. 여기에도 스크린과 컴퓨터가 설치돼있다. 한애란 기자

휴식을 취하면서 일도 할 수 있는 워크카페. 여기에도 스크린과 컴퓨터가 설치돼있다. 한애란 기자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이사와 관련한 커뮤니케이션을 열심히 한 건 직원 ‘마음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표준 사무공간 개선 프로그램(씨티 플랜)에서 ‘변화 관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거의 건물 디자인과 동등한 수준이지요. 아무리 디자인을 잘해놨어도 직원들의 변화에 대한 우려를 잘 추스르지 못하면 소용없으니까요.” 
 
심상훈 부장의 설명이다. 변화가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결국 직원의 마음가짐에 있음을 글로벌 은행은 잘 알고 있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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