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무원연금 일시금 탄 죄? 기초연금 못 받는 퇴직 공무원들

중앙일보 2019.12.04 05:00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이 생각에 잠겨있다.[연합뉴스]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이 생각에 잠겨있다.[연합뉴스]

 부산광역시 정모(80)씨는 구청에서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서 일한다. 어린이집 원생이나 유치원생, 초등학생이 농작물 재배와 수확을 체험하도록 돕는 일이다. 하루 5시간, 월 7일 일하면 약 29만원을 받는다. 이 돈으로 고혈압·전립샘비대증 등의 약값 5만원을 낸다. 틀니를 해야 하는데, 비용 부담 때문에 미루다 최근에서야 치과를 찾았다. 정씨는 주변 노인들이 기초연금을 받는 게 마냥 부럽다. 어떤 노인은 50%의 기초연금을 받는데, 그것도 부럽다. 
 정씨가 기초연금을 못 받는 이유는 전직 경찰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현행 기초연금법은 공무원·사립학교교직원·군인·별정우체국 등 특수직역 연금 수령자를 대상에서 제외한다.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실제 소득이 적거나 빈곤상태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정씨는 그동안 국회·보건복지부·청와대 등에 수없이 민원을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정씨는 1997년 공무원연금을 일시금(약 1억3000만원)으로 타서 두 자녀의 학자금으로 썼다. 정씨는 "일시금 받았다고 아무런 혜택을 안 준다. 29만원으로 우리 부부가 거지 생활을 하는데, 죽을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내 나이 팔순을 넘겼고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 나중에라도 복지 정책이 균형을 잡아서 힘없는 노인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회, 기초연금법 개정안 4개 손 안 대 폐기 운명

 

 공무원연금 높다고 기초연금 제한

 공무원 등을 빼는 이유는 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92만원(20년 이상 가입자), 공무원연금은 240만원이다. 이렇게 많이 받는데 기초연금을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08년 도입한 기초노령연금(월 8만여원)은 특수직역 연금 수령자를 포함했으나 2014년 박근혜 정부가 기초연금(월 20만원)으로 확대하면서 제외했다. 이들을 포함하는 걸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지난달 소득인정액(재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것을 포함)이 하위 50% 이하에 속하는 전직 공무원 등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1인 가구는 소득인정액이 약 50만원 이하, 부부 가구는 8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으로 제한해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미 국회에는 민주당 오제세·정춘숙 의원, 자유한국당 박덕흠 의원이 전직 공무원 등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법률을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보건복지위원회에서 4개의 법안을 논의하지 않았다. 연말까지 국회에서 재논의되거나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아 법안들이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빈곤 상태인데 지급해야"

 김상희 의원은 "직역연금 수급자(공무원·군인 등) 등은 개인의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연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여 현재 고정적인 연금 소득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는데도 기초연금을 못 받는다"고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정춘숙 의원 법안은 공무원 등의 직역연금 수령자와 배우자에게, 박덕흠 의원 안은 연금 대신 일시금을 받은 사람과 배우자에게, 오제세 의원 안은 일시금 수령자와 그 배우자, 연금 수령자의 배우자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정춘숙 의원 안대로 할 경우 연간 700억원가량의 예산이 들어간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은 사람은 기초연금을 지급하면서 왜 공무원연금 일시금 수령자를 차별하느냐"고 반박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현재 생계가 어렵고 소득하위 70% 이하 요건에 해당하면 과거 연금의 종류와 관계없이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고 말한다. 
 2014년 7월 이전에 기초노령연금(기초연금의 전신)을 받아오던 공무원 등의 직역연금 수령자 5만3000명은 기득권을 인정해 50%의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5만명은 연금 대신 일시금으로 받았고, 3000명은 연금으로 받는데, 연금액수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의 정씨는 "2008년 주변에서 '창피스럽게 나라에 손을 벌리냐'고 해서 기초노령연금을 신청하지 않았더니 '50% 기초연금'도 못 받고 있다"며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헌재, 공무원 지급 제한 합헌 판결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공무원연금을 이미 일시금으로 탔는데, 기초연금을 받으면 이중의 혜택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헌법재판소도 지난해 8월 이런 취지에서 공무원 등에게 기초연금을 제한하는 게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헌재는 "공무원연금 등을 일시금으로 받아서 (자녀에게) 증여하는 방법으로 재산 수준을 낮춘 뒤 기초연금을 부정으로 수급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반대다. 복지부는 공무원연금의 수준이 높고, 일시금 혜택을 이미 받았으며, 공무원연금 등이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본다는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공무원이니까 공무원 선배를 챙긴다는 오해를 받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기획재정부는 공무원연금 등을 일시금으로 수령해서 이를 다 쓰고 기초연금을 받는 게 연금 수령자와 형평성에 맞지 않고,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