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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 쌓인 한국산 쓰레기산···"매일 밤 연기 치솟는다"

중앙일보 2019.12.04 05:00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필리핀 민다나오=천권필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필리핀 민다나오=천권필 기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쓰레기가 보관된 곳에 스캐빈저(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사람)들이 몰래 들어가서 쓸만한 쓰레기를 훔쳐 갔어요.”

 
지난달 21일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공항에서 차를 타고 타골로안으로 향하는 길에 안내를 맡은 조지(68)가 말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
작년 7월 불법 수출한 플라스틱 쓰레기
1년 지났는데 필리핀에 아직도 쌓여 있어
8월에는 화재 발생해 11시간 동안 불타
“쓰레기 다시 포장해 항구로 옮겨야”

그는 “세관 당국에서 20~30명의 스캐빈저들을 잡아서 감옥에 보냈고, 그 이후로 경비가 삼엄해졌다”고 했다.
 
차를 타고 두 시간쯤 지나자 한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 한복판에는 철제 벽으로 둘러싸인 축구장 6개 크기(4만5000㎡)의 야적장이 있었고, 총을 든 경찰 두 명이 안을 지키고 있었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야적장 내부로 들어가니 끝이 안 보이는 거대한 쓰레기 산이 나타났다.
지난해 7월 한국에서 불법 수출한 플라스틱 쓰레기다.
 
아파트 광고 현수막에서부터 전기밥솥까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 수 있는 한글 문구들을 쓰레기 더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섭씨 40도에 이르는 무더위 속에서 1년 4개월 동안 방치된 탓에 부패한 쓰레기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쓰레기 사이사이로는 침출수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섬에서 섬으로…제주 쓰레기 필리핀까지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방치된 한국 쓰레기 중에서 흰색 비닐로 압축 포장된 쓰레기는 제주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방치된 한국 쓰레기 중에서 흰색 비닐로 압축 포장된 쓰레기는 제주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천권필 기자

제주도에서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가 압축 포장된 채로 매립장에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제주도에서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가 압축 포장된 채로 매립장에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다녀보니 흰색 비닐로 압축 포장된 쓰레기들이 눈에 띄었다. 낯이 익었다.
지난 7월 제주도 쓰레기 대란 문제를 취재했을 당시 매립장에 쌓여 있었던 압축 폐기물이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곳에 보관된 5100t(톤)의 한국 쓰레기 중에서 제주도에서 온 쓰레기만 1800t에 이른다.
 
섬에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가 수천㎞ 떨어진 또 다른 섬까지 옮겨져 쌓여 있는 것이다.
뜯긴 비닐 사이에서는 풀이 자라고 있었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보관된 한국 쓰레기에서 풀이 자라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보관된 한국 쓰레기에서 풀이 자라고 있다. 천권필 기자

  

“싼값에 처리” 필리핀에 불법 수출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이 정도로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한국에서 필리핀의 외딴 섬까지 온 사연은 이렇다.
 
전 세계 폐플라스틱을 사들이던 중국 정부가 2017년 갑자기 수입을 규제하면서 국내 폐기물 처리업자들은 수출길이 막히게 됐다.
 
폐기물 수출업자인 A씨 등은 이 점을 노리고 필리핀 현지에 폐기물 수입·통관업체를 세운 뒤, 폐기물 중간처리업체들에 “저렴한 가격에 폐기물을 처리해주겠다”며 접근했다.
 
그리고는 재활용할 수 없는 생활 쓰레기, 의료폐기물 등을 함께 압축해 지난해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민다나오 섬으로 보냈다.
지난해 11월 필리핀 140여 개 환경운동단체 에코웨이스트연합(EcoWaste Coalition) 소속 환경운동가들이 '한국산 플라스틱 쓰레기'의 조속한 반송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지난해 11월 필리핀 140여 개 환경운동단체 에코웨이스트연합(EcoWaste Coalition) 소속 환경운동가들이 '한국산 플라스틱 쓰레기'의 조속한 반송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이후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산 쓰레기로 인한 환경 문제가 불거졌고, 필리핀 환경단체 회원들은 “쓰레기를 한국으로 돌려보내라”며 주(駐)필리핀 한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열기도 했다.
 
결국, 필리핀 항구 컨테이너에 보관돼있던 1200여t은 올 2월 국내로 반송돼 소각 처리됐다.
하지만 나머지 5100t의 쓰레기는 여전히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남아있는 상황이다.
 
쓰레기를 불법 수출한 A씨 역시 인터폴 수배 대상에까지 올랐지만, 필리핀에서 잠적해 지금까지 행방조차 알 수 없다.
 

쓰레기 산 11시간 불타기도…“빨리 가져가라”

지난 8월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한국 쓰레기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Juliette Uy 의원 페이스북]

지난 8월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한국 쓰레기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 Juliette Uy 의원 페이스북]

문제는 열대성 기후인 필리핀에 쓰레기가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악취와 침출수 등 환경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인해 인근 주민들은 화재 위험에까지 노출돼 있다.
실제로 지난 8월에는 쓰레기 산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고, 소방차가 출동해 11시간이 지나서야 불길을 끌 수 있었다.
 
쓰레기 산을 지키고 있는 현지 경찰은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가스 때문에 거의 매일 밤 연기가 솟아오른다”고 말했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있는 한국산 쓰레기산 인근의 한 집에 한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있는 한국산 쓰레기산 인근의 한 집에 한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천권필 기자

쓰레기 산 주변에는 마을이 있었고 주민들은 철제 벽 바로 옆에서 농사까지 짓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아파트 광고 현수막이 가림막으로 걸려 있었다.
 
주민 클랜또이 씨는 “바람이 불 때마다 쓰레기 산에서 냄새가 넘어온다”며 “(한국으로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쓰레기 다시 포장해야…연말까지 반송” 

한국산 불법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포장하기 위해 포장재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한국산 불법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포장하기 위해 포장재가 쌓여 있다. 천권필 기자

현지에 방치된 쓰레기가 논란이 되자 환경부는 지난 6월 민다나오 섬으로 대표단을 파견했다.
그리고는 필리핀 측에서 항구까지 쓰레기를 옮기면 배로 한국으로 옮기는 비용을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산 쓰레기는 필리핀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산 쓰레기가 아직 회수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쓰레기가 대부분 포장되지 않은 채로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침출수 등의 문제로 쓰레기를 항구까지 옮기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한국에서 불법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천권필 기자

현장에는 쓰레기를 다시 담기 위한 포장재가 한쪽에 가득 쌓여 있었다. 일부 쓰레기는 재포장돼 있었지만,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쓰레기 이송이 언제 마무리될지조차 확실치 않다.
 
존 사이먼 필리핀 민다나오 섬 세관장은 “(한국으로 보내려면) 우선 쓰레기를 포장재에 담고, 그다음에 컨테이너로 옮겨야 하는데, 쓰레기를 전부 보내기 위해서는 200개 안팎의 컨테이너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우리는 다른 국가의 쓰레기장이 아니다. 연말까지는 필리핀에 더는 한국 쓰레기가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항구로 쓰레기를 옮기면 이후 배를 통해 한국으로 보내 처리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운송과 처리 비용에만 수십억 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단 필리핀 측에서 항구로 폐기물을 옮길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후 쓰레기를 국내로 반입해 소각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환경 단체인 에코웨이스트연합의 에일린 루체로는 “반송 절차가 오랫동안 지연되면서 개방된 공간에 보관 중인 쓰레기가 주민들의 건강과 지역 환경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남은 쓰레기를 본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즉각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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