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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논설위원이 간다] “12월 문재인·아베 만나더라도 성급한 기대는 금물”

중앙일보 2019.12.04 00:42 종합 26면 지면보기

지소미아 유예 결정 이후의 일본 여론 

지소미아 종료 유예로 한·일 파국은 막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일본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사진은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이 1일 도쿄에서 반한 시위를 하는 장면. [연합뉴스]

지소미아 종료 유예로 한·일 파국은 막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게 일본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사진은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이 1일 도쿄에서 반한 시위를 하는 장면. [연합뉴스]

위기는 모면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다. 한·일 군사정보호협정(지소미아)의 ‘종료 유예’ 결정 이후에도 한·일 관계는 여전히 외줄 위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하기만 하고, 전망은 시계 제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인식에는 뜻을 같이하면서도 “상대방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 지난달 27일 도쿄에서 열린 한국 신아시아연구소(소장 이상우 전 한림대 총장)와 일본 평화안전보장연구소(소장 니시하라 마사시)의 정책간담회에 참석해 위기의 한쪽 당사자인 일본은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해법을 구상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 회의에는 유명환 전 외교장관, 신각수 전 주일대사, 시게이에 도시노리 전 주한 일본대사, 다카노 도시유키 전 주한 일본대사, 이즈미 하지메 도쿄국제대학 교수, 야마구치 쓰요시 자민당 중의원 등이 참석했으나 ‘채텀하우스 규칙’에 따라 구체적 발언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위안부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일본은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침체된 사이 한국은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힘이 엇비슷할 정도까지 왔다. 일본인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오보여서 천만다행”
 
“한·미동맹 해체”. 한 참석자가 발언 도중 날짜 지난 신문을 펼쳐 보이며 굵은 활자의 헤드라인을 가리켰다. 지소미아 종료 여부를 놓고 청와대가 최후의 결정에 들어간 지난달 22일 낮, 도쿄 시내 주요 가판대에 깔린 ‘석간 후지’였다. 신문이 인쇄되던 시각까지는 청와대가 8월에 내린 종료 결정을 그대로 강행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기 때문에, 지소미아 종료를 기정사실로 단정하고 쓴 전망 기사였다. 자극적인 내용과 제목으로 승부를 거는 상업지이긴 하지만, 일본이 어떤 관점에서 지소미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 ‘한·미 동맹 해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일본의 타블로이드 신문 ‘석간 후지’

지소미아 종료와 관련 ‘한·미 동맹 해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일본의 타블로이드 신문 ‘석간 후지’

한국 정부가 한·미·일 안보협력의 기반을 흔들고 나아가 한·미동맹 해체로 이어짐으로써 동북아 안보환경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기사에서 묻어났다. 사실에 부합하든 않든, 그런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지금 일본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석간 후지의 보도는 결과적으로 오보가 되고 말았다. “오보여서 천만다행”이란 게 대다수 일본인의 의견이라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최근 한·일 갈등의 출발점인 강제징용 해법으로 일본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은 ‘문희상 방안’이다. 문 의장이 지난달 5일 도쿄의 와세다 대학 연설에서 발표한 이 해법은 한·일 양국 기업의 기부금에 양국 국민 성금까지 포함한 재원을 마련하여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것이다. 기금은 양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조성하되 ‘책임 있는 기업’, 즉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뿐 아니라 다른 일본 기업까지 포함해 자발적 기부를 받는다는 데 기존 정부 안과의 차별성이 있다. 현지에서 만난 고위 외교소식통은 “여태까지 나온 방안들 중에 일본이 가장 반기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 방안을 한국 정부의 방안으로 정식 제안해 오면 이를 바탕으로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물밑 채널로 전해 오기도 했다고 한다. 평화안전보장연구소와의 정책간담회에서도 이 방안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자발적’이란 세 글자
 
참석자 A=“한국 정부가 어쨌든 문제 해결 과정에 관여해야 문제 해결이 쉬워진다. 먼저 한국 정부와 기업이 돈을 내고 나중에 일본 기업이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게 열어 두는 방안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참석자 B=“돈의 명목이 문제다. 불법 행위에 따른 위자료를 지불하는 것이라면 일본은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형식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국내적으로 먼저 만들어 놓은 기금에 사후 ‘동참(join)’하는 형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참석자 C=“(이미 판결이 났거나 계류 중인 소송뿐 아니라) 앞으로 계속 제기될 수 있는 소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안도 제시해야 한다.”
 
‘문희상 안’은 대체로 이런 요구조건들을 충족한다. 일본 측이 반기는 이유는 ‘자발적’이란 세 글자에 있다. 한국 기업과 정부 자금으로 먼저 기금을 만들고 난 뒤 일본 기업이‘자발적’으로 성금을 ‘기부’하는 형식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끝났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에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문제의 근원적·포괄적 해결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문 의장의 발언도 일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문희상 안’의 장애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 국내에 있다. 대법원 판결은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에 판결하라고 났는데 한국 정부·기업 자금으로 배상하고, “일본 피고 기업은 참여하고 싶으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면 과연 오랜 기간 소송을 한 원고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미쓰비시 소송의 대리인인 최봉태 변호사는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에는 이해가 가지만, 자칫하면 일본 측에 면책의 명분을 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일본 기업들이 진정으로 기금에 출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 열리겠지만 …
 
지소미아 유예 발표 직후 한·일 외무장관은 12월 하순에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부가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계기로 한·일 갈등이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일본 측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란 의견을 보였다. 한 참석자가 “비관적인 말밖에 하지 못해 나도 유감”이라며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A=“지소미아를 유예한 것은 환영하지만 수출관리 규제를 푸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체를 철회하거나 원상복귀시키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애초 지소미아를 무역정책과 연계시킨 것에 이해가 잘 안 된다. 외교 기법상 서로 다른 문제를 연계하는 정책은 물밑에서 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했다.”
 
B=“한·일 갈등의 근원에는 강제징용 문제와 함께 위안부기금 해산 문제가 있다. 위안부 합의는 아베 총리로서도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고 이뤄낸 것이다. 이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일본 정부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C=“일본은 1965년 협정으로 시작된 관계의 근본을 지키려고 하는데 한국이 변화를 일으키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있다. 가령,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에 대한 해석 문제가 한국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이 ‘불일치의 일치(agree to disagree)’란 원칙으로 대처해 왔는데, 한국이 이를 바꾸려 한다면 일본은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보다 더 시간이 지난 뒤 다음 세대에 맡겨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또 다른 참석자는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갈등의 원인을 진단했다. “한·일 관계의 변화는 힘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두 나라의 힘이 대등하게 된 것이 문제의 근본이다. 일본이 계속 침체된 사이 한국은 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힘이 엇비슷할 정도까지 왔다. 일본인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방일 기간 중인 지난달 29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101세로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차대전 종전 후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였다. 2006년 그를 인터뷰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휙 스치고 지나갔다. “한국인들의 감정은 3세대 100년이 가야지 풀릴 것이다.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인들에게 씻어내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제 강점이 끝난 지 70년을 넘어섰다. 앞으로 한 세대 30년이 더 지나면 나카소네가 말한 시기가 된다. 과연 그때가 되면 나카소네의 예언대로 한·일은 과거의 앙금을 털어 낼 수 있을까. 지금처럼 속 좁은 양국 정부의 자세로는 100년이 아니라 300년이 가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지난 1년 1개월간의 한·일 갈등을 되씹어보며 든 생각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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