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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수세 몰리던 차이잉원, 홍콩 사태로 기사회생

중앙일보 2019.12.04 00:40 종합 28면 지면보기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만 대선

대만 총통선거가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대만 유권자들 사이에 ‘일국양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홍콩 장기 시위 사태의 원인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민진당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사진은 지난 6월 대만 입법원 앞에서 ‘하나의 중국’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있는 대만 시위대의 모습. [타이베이 AP=연합뉴스]

대만 총통선거가 한달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대만 유권자들 사이에 ‘일국양제’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홍콩 장기 시위 사태의 원인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민진당 차이잉원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사진은 지난 6월 대만 입법원 앞에서 ‘하나의 중국’에 반대하는 팻말을 들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있는 대만 시위대의 모습. [타이베이 AP=연합뉴스]

홍콩 시위의 본질은 고도의 자치와 민주를 약속대로 확실히 보장하라는 요구다. 중국지도부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그들에겐 세상 물정 모르는 홍콩 청년들의 ‘복에 겨운’ 투정으로 보이는 것 같다. 최근 홍콩 사태의 여파가 해협 건너 대만으로 번지면서 2020년 1월 11일로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의 최대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요인이 등장한 것이다.    
  

“홍콩 사태는 외면당하던 차이잉원 민진당 정부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최근에는 차이와 한궈위의 지지율이 20% 가까운
격차를 보이면서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차이잉원이 재선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최종 목적지는 대만이다. 홍콩은 중국의 숙원인 대만통일을 위한 일국양제의 시범지역일 뿐이다. 홍콩이 번영과 안정을 구가할수록 일국양제의 진가는 더욱 빛난다. 따라서 식민지배에서 어렵게 돌아온 홍콩을 포동포동 살찌워서 2300만 대만 관중에게 일국양제의 ‘위대함’을 보여줘야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중국은 홍콩의 일국양제 시행 성과에 만족했다.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한 2014년의 우산혁명도 자신들의 의도대로 잘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하고 당 중앙의 지시를 잘 받든 공로자를 중심으로 홍콩 지도부를 새로 구성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대만
 
중국의 낙관적 진단과 달리 대만에선 우산혁명을 통해 일국양제의 구조적 결함을 확인하면서 ‘수용 불가’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당시 대만인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믿은 게 바보지”라며 중국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중국이 일국양제를 최상의 통일방안으로 제시할 때부터 이를 철저히 무시했던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다. 최근의 홍콩 시위 현장을 바라보는 대만인들의 심정은 그리 편치 않다. 통일과 독립의 깊은 협곡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만의 미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국양제의 우수성을 대만에 증명해 보여야 할 중국으로선 나날이 거세지는 홍콩의 반정부 시위가 개탄스럽다. 반면 홍콩의 일국양제 시행 과정을 예의주시해 온 대만은 중국의 집요한 일국양제 수용 요구를 거부할 명분을 얻었다. 물론 일국양제 수용 불가와 반중국 정서만으로 대만 내 정치세력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명확히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대만 대선과 중국 요인
 
그동안 중국은 대만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 핵심은 태생적으로 대만독립에 집착하는 민진당(民進黨)의 집권을 저지하고 상대적으로 친대륙적 정서를 가진 국민당을 지원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국민당의 50여 년 초장기 집권을 종식시키고 2000년에 등장한 천수이볜(陳水扁) 민진당 정부의 대만 정체성 확립(正名), 신헌법 제정 등의 독립 움직임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 중국은 더욱 노골적으로 대만 대선과정에 개입하여 독립 추구 세력(臺獨分子)의 집권 저지에 주력하고 있다.
 
차이잉원

차이잉원

실제로 중국은 2008년 국민당의 재집권과 2012년 마잉주(馬英九)의 재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 과정에서 민진당 대선 후보였던 차이잉원(蔡英文)과의 악연을 쌓았다. 중국이 시도하는 영향력 행사의 핵심은 1992년의 양안합의인 ‘92 컨센서스(92共識)’에 입각하여 ‘하나의 중국’ 원칙에 충실한 국민당 후보를 전폭 지지하는 반면 눈엣가시인 민진당 후보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대륙에 진출한 대만기업(臺商)들을 총동원하여 민진당 후보가 집권하면 양안 경제교류의 대대적인 위축이 불가피하고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임을 집중 부각시켰다. 이는 중국과 불가분한 관계인 대만 경제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인 동시에, 요원한 대만독립보다는 양안의 상생공영을 원하는 대다수 대만 유권자들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의 이런 전략은 2016년 1월 대선과정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당시 민진당 후보였던 차이잉원이 국민당의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크게 앞서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선거일이 임박한 2015년 11월 7일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싱가포르 회담을 전격 연출했다. 겉으론 1949년 이후 초유의 양안 정상회담을 통해 ‘양안의 뿌리는 하나다’라는 점을 확인했지만 실제 의도는 중국이 ‘뼈속까지 대만 독립주의자’라며 비난한 차이잉원의 낙선과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국민당 구하기였다.
 
한궈위

한궈위

내년 1월의 대선을 한달 남짓 앞둔 지금도 중국의 다양한 개입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예년과는 다르게 뭔가 김이 빠진 모습이다. 가장 큰 원인은 홍콩의 대규모 시위사태가 몰고 온 일국양제 및 중국지도부에 대한 대만 주민들의 강한 거부감이다. 사실 차이잉원 정부는 출범 초기와 달리 국정 운영 전반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대만 유권자들의 실망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심지어 민진당의 표밭인 남부지역 최대 도시 가오슝(高雄) 시장 선거에서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 여세를 몰아 한 가오슝 시장은 일약 국민당 대선 후보가 되어 차이 총통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 사태는 외면당하던 차이 민진당 정부가 기사회생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최근에는 차이와 한궈위의 지지율이 20% 가까운 격차를 보이면서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차이잉원이 재선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 대선 후보 지지율 추이

대만 대선 후보 지지율 추이

물론 아직은 중국이 차이 총통의 재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중국은 국무원 대만판공실을 주축으로 20여 개 부처가 연합하여 ‘양안의 경제문화 교류협력 촉진을 위한 조치’를 발표하는 등 대만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 중 대만인과 대만기업에 대한 내국인 대우 보장, 해외 주재 중국공관의 대만인 영사 보호 등은 다른 때 같으면 대만인들이 솔깃할 내용이지만 지금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만 정부는 중국의 이러한 선심성 조치가 노골적으로 대만 대선에 개입하려는 불순한 의도임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부장도 “대만인에게는 일국양제가 불필요하니 자국민에게나 자유를 더 주라”며 중국의 선심성 조치를 비웃었다.
  
미국의 전략적 변화
 
역대 대만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또 다른 변수는 미국이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이 원하는 통일과 대만이 원하는 독립을 모두 배제한 ‘불통불독’(不統不獨)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미국은 천수이볜 같은 과격한 대만 독립주의자를 문제아로 인식했으며 차이잉원도 그 범주에 속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전면적 부상을 제어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하에서 중국의 심기를 적당히 건드리는 친미 성향의 대만 독립주의자들은 더 이상 문제아가 아니다. 대만과의 공식적 접촉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타이베이 법안’(Taipei Act) 비준을 통해 대만의 외교 무대를 넓혀주려는 미 의회의 움직임은 미국의 전략적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는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의 중국과 하나의 대만’(一中一臺)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여기에서 차이잉원은 오히려 미국이 잘 키워야 할 유용한 재목이다.
 
이처럼 홍콩 사태는 대만의 2020 대선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민진당의 독립 구호를 부정적으로만 인식했던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대만에 대한 애정 표현이 부쩍 늘어난 미국의 움직임도 차이 총통에겐 더 없는 지원군이다. 그러나 차이의 재선도 양안관계의 구조적 한계와 미국의 자국 중심적 이중전략을 바꿀 수는 없다. 양안관계의 현실을 꿰고 있는 시진핑이 도에 넘는 독립 시도를 좌시할 리 없고 미국도 중국을 압박하는 선에서만 대만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키워드
대만 총통선거
1996년부터 4년에 한차례씩 직선제로 치러지고 있다. 1996년 국민당의 리덩후이(李登輝)에 이어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이 당선함으로써 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2008년 마잉주(馬英九)의 당선으로 국민당이 재집권했으며 2016년 다시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이 당선했다. 2020년 선거는 1월11일 실시된다.  

92컨센서스(92共識)
중국과 대만의 반(半)관영기구가 1992년 싱가포르에서 만나 구두로 합의한 공통인식을 일컫는다.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각자 알아서 한다는 내용이다. 대만의 국민당은 이를 인정하지만 민진당은 이 합의의 효력을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국양제
하나의 나라(중국)에 사회주의(본토)와 자본주의(홍콩ㆍ마카오)의 두 가지 제도가 공존함을 일컫는 용어. 1982년 시작된 홍콩 반환 협상에서 중국은 통치권 반환을 주저하는 영국에 “홍콩의 사회제도, 생활양식, 법률은 반환 후 50년간 변함없을 것”이라며 일국양제의 실시를 약속했다.
 
문흥호 한양대 중국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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