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文 정부 ‘양날의 칼’ 공수처의 미래 “호랑이 잡겠다고 사자를 집 안에 들이나”

중앙일보 2019.12.04 00:03
‘12월 3일’ 직권상정 시한 다가오면서 여야 충돌 긴장 고조
부패방지 본래 목적 사라지고 정략적 이념대결 도구로 변질

정밀취재

 
11월 2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제12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 사진:연합뉴스

11월 2일 서울 여의도공원 앞에서 열린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제12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 사진:연합뉴스

국회를 마비시켰던 혼돈의 정국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국회가 온전히 정상화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언제든 강진으로 돌변할 수 있는 여진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이 바로 그것이다. 공수처 설치법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과 함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수처 도입을 검찰 개혁의 핵심 과제로 꼽는다. 더불어민주당은 10월부터 공수처 설치법안을 최우선 처리 과제로 지정했다. 검찰 개혁의 또 다른 기둥인 검·경 수사권 조정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처리 의지를 다지고 있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공수처 법안은 두 개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두 법안은 공수처장 임명 방식과 수사·기소 대상, 취급 범죄 등에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은 권성동 의원이 발의한 검찰독립법안을 별도로 낼 예정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못 박은 협상 시한은 12월 2일까지다. 이때까지 여·야가 합의하지 않으면 12월 3일 본회의에 부의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10일 안에 처리하지 못하면 내년 1월 말 이후로 미뤄지기 때문이다. 12월 국회가 끝나면 본격적인 총선 채비에 돌입하게 돼 공수처 입법 가능성은 더 희박해진다.
 
물론 차기 국회에서 공수처 입법을 재도전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동력 회복이다.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2년가량 남아 있다 해도 한번 시기를 놓친 카드는 이미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 바뀌게 될 국회 판도가 여권에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다. 민주당과 청와대가 공수처를 두고 총력전에 나서는 이유다.
 
한국당의 입장은 ‘절대 불가’다. 문 의장과 민주당이 반대를 무릅쓰고 12월 처리를 강행할 경우 국회 파행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당이 한 치도 양보할 틈을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직권상정이 이뤄질 경우 여의도 정가에선 국회를 장기 파행으로 몰고 갔던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충돌이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조국 쓰나미’ 지나간 자리에 ‘공수처 여진’

국민 여론은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는 쪽이 좀 더 우세하다. 지난 11월 6~8일 SBS가 전국 성인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는 의견이 56%였다. 반대는 38.9%였다. MBC, KBS 등 다른 방송사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공수처 설치를 찬성하는 응답자가 60%대로 조사됐다.
 
공수처에 대한 관심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 국면에서 증폭됐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 권한을 축소할 방편으로 공수처를 내세우면서 여권 지지층이 결집해 여론을 확산했다. 공수처 찬반 논쟁이 개혁 대 반(反)개혁의 대결 구도로 자리 잡힌 형국이다.
 
사실 공수처 논쟁은 20년 넘게 이어져 온 화두다. 처음 등장한 것은 1996년이었다. 참여연대가 검찰 권한을 분산할 목적으로 부패방지법 입법청원운동을 벌인 게 공수처 논쟁의 시초다. 이듬해 김대중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이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집권 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비처)’란 이름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대체하는 검찰 개혁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검찰과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수사권 없는 부패방지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으로 논쟁이 일단락됐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금 공수처 설치를 대선 공약으로 내놨다.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하자 같은 해 11월에 공직부패수사처 설치법안을 발의했다. 공수처 설치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한나라당은 “야당 탄압용 사정기구”라며 반대했다. 지금의 한국당이 반대하는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이후에도 선거가 닥쳤거나 검사 비위가 터져 검찰 개혁론이 힘을 얻을 때마다 공수처 설치가 단골 대안으로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2017년 두 번의 대선에서 꾸준히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삼았다.
 
오랜 논쟁 기간만큼 공수처 모델도 변화해 왔다. 검찰의 권한을 분산한다는 기본 취지는 달라진 게 없지만, 기구의 명칭, 조직 구성, 권한 등 세부 내용은 약간씩 달라졌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백혜련·권은희 법안은 우선 명칭부터 다르다. 백 의원 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권 의원 안은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수사 대상을 각각 ‘고위공직자 범죄’, ‘부패범죄’로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두 법안에 따르면 조직은 처장과 차장 아래 수사처 검사(25명 이내), 수사관(30~40명)을 둔다. 처장 임명은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국회 추천 4인으로 구성된 후보자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지명하는 방식이다. 다만 백 의원은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지만, 권 의원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국회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실질적인 임명권을 보장할 경우 공수처장을 통해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사·기소 대상은 두 법안에 차이가 없다.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경무관급(3급) 이상 경찰, 군 장성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를 수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에 대해선 공수처가 자체 기소권을 갖는다. 다만 권 의원 안은 공수처에 기소심의위원회를 두고 기소 전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했다.
 

“공수처 명분, 오류·왜곡 많다”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애국함성문화제’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공수처법 저지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0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애국함성문화제’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공수처법 저지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수처 도입 논쟁을 바라보는 법조계의 시선엔 걱정이 서려있다. “오랜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구축된 형사·사법체계를 감정적 여론에 기대 처리하려는 정략적 태도”(서초동 A 중견 변호사) 때문이다.
 
정치권의 공수처 논쟁은 피상적이다. 공수처를 도입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찬성 진영은 “그래도 지금의 검찰보다 낫다”는 논리로 문제를 상쇄하려 한다.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공수처 설치의 당위로 삼으려는 것이다.
 
사실 법조계 입장에서 공수처가 도입된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작은 규모지만 변호사들이 진출할 수 있는 공직이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사처 검사는 5년 이상의 변호사 자격이 있어야 한다. 법조계가 우려하는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정부가 공수처 설치의 당위성을 주장하면서 전개하는 논리에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대법관,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 등 사법부 인사 심의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A씨는 “공수처 설치의 목적부터 왜곡됐다. 논의 진행 과정을 보면 과연 순수한 의도로 설치하려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우선 ‘검찰 개혁을 위해 필요하다’는 정부 주장이 본질을 왜곡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애초부터 공수처 논의가 정치적 이유로 시작되다 보니 ‘검찰 힘 빼기’ 방편으로만 소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A 교수는 “명칭 그대로 권력을 쥔 공직자의 부패를 막는 감시의 도구로서 논의가 돼야 제2, 제3의 대안까지 모색하는 건전한 논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 도입 목적은 말 그대로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막고 청렴을 도모하는 데 있다. 입법·행정·사법 3부 권력이 모두 포함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공수처 설치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공수처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특별사정기구이며, 공수처법은 고위공직자를 청렴, 건강하게 만드는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목적이 섰다면 현행 시스템을 점검하는 게 다음 순서다. 부패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살피고 나서 비로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 대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공수처는 그 대안의 하나로 논의되는 것이지 만능의 보검이 아니다. A 교수는 “공수처 아니면 안 된다는 경직된 사고방식을 벗어나 공직자 부패 방지를 위한 최선의 대안이 무엇인지 근본 목적을 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의 논쟁은 정략적 계산에 머물러 있다. 여·야의 싸움에 시민사회가 가세해 이념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조국 전 장관 수사에 반대해 열린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참여자들은 ‘조국 수호’, ‘검찰 개혁’, ‘공수처 설치’를 외쳤다. 보수 진영은 맞불 집회에서 ‘공수처 반대’ 구호로 맞섰다. 이념이 아닌 부패 방지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공수처가 이념 대결의 소재로 전락하진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법조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치권의 셈법은 이와 다르다. 여권 내부에선 공수처를 검찰 개혁과 동일시하면서 여권 지지자들을 결집한 것은 물론이고, 중도층까지 정책 공감대가 확장됐다고 보고 있다. 소수긴 하지만 내부에서 반대 의견도 있다. 검찰 개혁과 공수처 논쟁에 매몰되면서 경제·외교·안보 등 민생 관련 의제들이 실종됐다는 우려다.
 

‘개혁-반개혁’ 이념 대결 구도로 비화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 권한 분산을 위해 또 다른 권력기관인 공수처를 신설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 사진:오종택 기자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 권한 분산을 위해 또 다른 권력기관인 공수처를 신설하는 것에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 사진:오종택 기자

지역에서 총선을 준비 중인 민주당의 한 원외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살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지지자들 이외에 포괄적인 공감대를 얻기 힘든 주제로 허송세월하고 있으니 국민이 설득되겠느냐”고 말했다.
 
공수처 구상이 이념의 산물이 아니란 점은 역대 논쟁 과정에서 드러난다. 공수처 설치가 오롯이 진보 진영의 유산은 아니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공수처 개념 도입을 공약한 데 이어 이회창 총재 역시 1년 뒤 참여연대를 만나 공수처의 기초적인 개념인 ‘특별검사제’ 도입 의사를 밝혔다. 2004년 총선에는 한나라당이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같은 시기 국무총리로 지명된 이해찬 현 민주당 대표는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기소권이 이원화되는 것과 대통령이 사정집행기관을 직접 운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2010년 지방선거 정국에서 정몽준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공수처 신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했고, 2012년 12월 대선 정국에서 친이명박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이 공수처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공수처는 검찰 개혁의 여러 대안 중 하나일 뿐, 그 자체가 유일한 검찰 개혁의 방도는 아니다. 지금 민주당과 청와대의 태도는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all or nothing)’, 즉 결전에 임하는 식이다. 선과 악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면 합의점 도출은 불가능하다. 합의가 불가능한 정치 협상은 무의미하다.
 
청와대가 항구적인 시스템 구축보다 당장 눈앞의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이슈 개발 중심으로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가지 정책이 벽에 부딪혔을 경우 우회할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새로운 정책을 던지는 식이다. 말하자면 ‘이슈로 이슈를 덮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공수처 설치가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해도 최근 갑자기 여론이 확산한 데에는 조국 사태와 관계가 깊어 보인다. 당초 법안 처리 시한을 정하지 않았던 여권은 조국 사태가 깊어지자 10월 말 법안 처리를 시도했다. 다분히 조국 사태를 수습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문 의장이 법안 협상 시한을 12월 3일로 늦춘 것에 대해 민주당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민주당에서 공수처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현역 의원은 금태섭 의원뿐이다. 사법연수원 24기인 금 의원은 검사 출신이다. 대검찰청에서 검찰연구관을 거쳐 2007년에 변호사로 개업했다. 현직 검사 시절 검찰 개혁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가 쫓겨나다시피 검사직을 내려놨다. 여권 지지자들은 금 의원을 향해 ‘반(反)개혁세력’으로 낙인찍고 비난을 퍼부었다. 금 의원이 여론의 뭇매를 알면서도 소신을 펼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반대 이유서를 통해 공수처에 대한 환상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공수처 설치가 검찰 개혁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공수처를 설치하더라도 오히려 개혁과 반대 방향으로 갈 위험성이 있다고도 했다. 근거는 이렇다.
 
우선, 새로운 권력기관이 만들어진다. 공수처는 본질에서 ‘사정기구’다. “사법 과잉, 검찰 과잉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또 다른 특별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금 의원의 생각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기존 권력기관의 권한과 힘을 축소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그는 봤다.
 
둘째로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에 맞지 않다고 지적한다. 금 의원은 “공수처는 세계 어느 국가에도 없다. 최근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사이에 공수처에 기소권을 주느냐 마느냐로 혼선이 빚어진 것도 선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잘 지켜지고 권한 남용이 없는 선진국의 예를 따라 우리 제도를 고치면 될 텐데 전례가 없는 제도를 만들어 실험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선 반론도 있다. 공수처와 유사한 반부패기구를 운영하는 나라가 몇 있다. 홍콩의 염정공서(ICAC),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조사국(CPIB)이 대표적이다. 두 기구는 수사권은 갖되 기소권은 없는 부패 전담기구다. 영국은 중대부정수사청(SFO)이란 기구를 두고 있는데, 공수처와 마찬가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부패척결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공수처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백혜련 의원은 “우리나라 검찰만큼 막대한 권한을 독선적으로 집행해 온 기구가 없다. 이를 제어할 기구도 마땅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태섭은 왜 욕먹을 각오하고 반대하나

10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 도중 공수처 관련 발언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손으로 엑스표를 그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0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 도중 공수처 관련 발언이 나오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손으로 엑스표를 그리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검사장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나라의 법체계는 이론부터 실무까지 일관된 철학과 기틀을 바탕으로 한다. 각 나라의 민주주의와 사법체계가 발전해 온 차이를 무시하고 좋은 것만 골라 본뜨는 것은 오랜 기간 연구와 경험을 통해 이룩한 법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금 의원은 “글로벌 스탠더드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검찰처럼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기관을 운영하는 곳은 세계 어느 선진국에도 없다는 전제 아래 금 의원은 “검찰의 수사권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면 개혁이 이뤄진다. 모든 선진국이 이런 방식으로 검찰 권력을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 의원은 이어 “공수처가 설치되면 악용될 위험이 매우 크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권력기관은 본질적으로 청와대를 바라본다. 역대 정권은 검찰 하나만으로도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공수처라는 권력기관이 더 생기면 양손에 검찰과 공수처를 쥐고 전횡을 일삼을 위험성이 있다.”
 
금 의원은 “이런 권력기관을 만들려면 최소한 깊이 있는 토론을 벌여야 하는데 마치 공수처 설치에 반대하면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치부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의 공수처 논쟁이 “정책으로 얻으려는 목표가 아니라 특정한 제도 그 자체에 대한 집착”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금 의원의 주장에 대해 지방검찰청에 근무하는 한 현직 부장검사는 “검찰뿐만 아니라 법조계에서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집대성했다”고 평가했다. 공수처를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두는 것에 대해 위헌 소지도 있을 수 있다.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는 “단행 법률로 둘 수 있는 단독 행정기관은 ‘위원회’ 형식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공수처는 위원회가 아닌 ‘처’의 형식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처장의 단독 지휘를 받는 등 삼권분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수사하면서 기소권까지 있어 결국 대통령 직속 사찰 수사기구가 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수처장을 비롯한 조직을 어떻게 구성하든 정치적 중립성은 절대 보장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공직 비리 상당 부분은 민간 부문의 부패와 연계하는데, 이를 무 자르듯 잘라 공수처와 검찰이 나눠 수사할 수 없다”며 “설립 취지와 달리 사찰기구로 변질할 우려가 크고 (검찰과 공수처가) 기소 권한을 나누는 건 근대 형사사법 체계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검사 출신인 조응천 민주당 의원도 공수처 설치 자체에는 “수사기관의 과거 행태에 비추어 필요성은 불가피하다”고 찬성하면서도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이 분리돼야 한다는 대 원칙에 일부 반하는 수사, 기소권을 겸하는 조항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수처 도입 가능성? 대안은 없나

그렇다면 공수처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 논의가 확장되지 않았을 뿐 대안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공수처만큼이나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지만, 정치 공방으로 매몰된 공수처 논쟁을 벗어나 발전적인 대안 모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가 있었다면 국정농단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에도 국정농단을 막을 제도 장치는 존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공직자 비리 척결과 대통령 친인척 비리 대책으로 도입한 특별감찰관제도다.
 
2014년에 특별감찰관법이 제정됐고, 2015년 3월 이석수 변호사가 초대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장남 군복무 특혜의혹과 탈세 및 배임 혐의가 불거지자 그에 대한 감찰을 시작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일로 이석수 특감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후 정권이 바뀌었지만, 특별감찰관은 여전히 빈자리로 남아 있다. 특감 직무대행의 임기가 지난해 4월 종료되면서 사실상 특감의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 고위공직자 부패를 방지한다는 취지로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면서 정작 대통령 친인척과 청와대 고위직들을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제도를 무력화해 방치한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개헌을 통해 특별감찰관제도와 공수처를 통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반부패기구를 만드는 방안도 거론된다. 개헌을 전제로 할 경우 감사원과 공수처의 통합 형태 등 다양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다만 개헌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현실적인 논의는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한 수정안도 대안으로 떠오른다. 권 의원 안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분리를 전제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만 갖는 공수처 설치를 제안하고 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검찰 개혁의 요체는 검찰이 독점해 온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는 것이고, 이 대원칙에 여야 3당 모두 이견이 없다”며 “민주당이 한발 양보해 수사권만 갖는 반부패전담 수사기관을 만들자는 데 동의만 하면 공수처 문제는 여야 3당 의견조정을 통해 합의처리가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박지원 대안신당(가칭) 의원은 입법 전망에 부정적이다. 박 의원은 11월 11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분권형 개헌과 공수처 설치가 불가능해졌다고 내다봤다. 그는 “대통령의 의지를 받들어서 민주당이 꼭 통과시키려고 했으면 최소한 정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의원들을 설득해서 과반수를 가지고 갔어야 한다. 지금 현재는 제가 볼 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 선거구 조정, 정치개혁 입법 통과 후 검찰개혁법안을 통과시키자, 이런 우선순위를 정해놨기 때문에 안 된다”고 덧붙였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