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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남긴채…스스로 목숨 끊는 실무자들

중앙일보 2019.12.03 05:00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휘하에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 A씨가 1일 오후 숨진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 [연합뉴스]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휘하에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 A씨가 1일 오후 숨진채 발견된 서울 서초구 한 사무실. [연합뉴스]

이른바 ‘백원우 별동대’로 지목된 검찰 수사관 A씨가 검찰 조사를 앞둔 1일 오후 숨진 채 발견됐다. A수사관은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아래에서 민정비서관실 소속 특별감찰반원들과 별도로 사무실을 두고 활동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수사관 등이 근무한 특감반이 특감반의 권한을 넘어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첩보를 위법하게 수집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A수사관은 A4용지 9장가량의 메모 형식 유서에 가족들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공공기관 문건 유출이나 민간인 사찰 의혹 등 위법성 소지가 있는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때 실무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앞서 2014년 12월에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고(故) 최경락(당시 45세)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최 경위는 “문건을 유출할 수도 없었고 유출할 이유도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를 조사하고 있었다. 이후 검찰은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 비서관의 주도로 박관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문건을 작성했고 한일 전 서울청 정보과 경위가 해당 문건을 복사한 후 같은 과 소속 최 경위가 외부(언론)에 이를 유출했다고 결론지었다.
고 최경락 경위 [중앙포토]

고 최경락 경위 [중앙포토]

 
최 경위는 유서에 자신을 지목한 동료 경위에게 "너를 이해한다, 민정비서관실에서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당연히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썼다. 한 전 경위는 2016년 11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건 유출자로 지목돼 수사받을 때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의 회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문건을 최 경위에게 넘겼다고 진술하면 불기소도 가능하다’며 협조를 종용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 전 경위는 2년여가 지나서야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에 대해 "당시에는 너무 무서웠고, 말단 공무원이 청와대ㆍ검찰과 맞서려 하니 겁이 났다"고 말했다.  
 
최 경위의 친형 역시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간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최씨는 동생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한 지난 4년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으로 표현했다. 당시 최씨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동생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는 것을 바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정원 해킹관련 자살직원 유서공개 [중앙포토]

국정원 해킹관련 자살직원 유서공개 [중앙포토]

지난 2015년 7월에는 국정원 직원이었던 임 모 과장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이탈리아 해킹업체 내부자료가 유출됐고,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인 RCS(Remote Control System)을 이용해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RCS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설치해 파일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고 실시간 감청도 가능하다고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임씨는 해당 프로그램 담당 실무자로 알려졌다. 당시 공개된 임 과장의 유서에도 ‘국장님, 차장님 원장님께’라는 제목아래 “동료와 국민께 큰 논란이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국정원 2017년 10월 개혁발전위원회를 통해 “RCS를 이용한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 사찰은 없었다”는 결론을 냈다. 임 과장의 사망에 대해서도 타살로 판단할만한 근거는 찾지 못했다고 봤다. 2019년 7월 검찰은 RCS와 관련해 통신비밀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29명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검찰은 RCS 활용이 국정원 기술개발부서 부서장(국장급) 승인 아래 진행됐기 때문에 국장의 상급자인 국정원장이나 2ㆍ3차장이 관여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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