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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또 처리시한 넘긴 예산안…여야 수싸움에 협상카드 된 세금

중앙일보 2019.12.03 05:00
지난 1일 오후 5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여야 3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간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전해철 민주당, 이종배 한국당, 지상욱 바른미래당 간사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른바 ‘소(小)소위원회’라고 불린 예산안 조정 간사협의체를 가동해 예산안 심사를 해왔지만, 지난달 30일을 마지막으로 심사를 멈춰야 했다. 국회법85조의3에 따라 예산안이 예결위를 떠나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지상욱,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자유한국당 이종배 국회 예산결산특위 간사. [연합뉴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지상욱,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자유한국당 이종배 국회 예산결산특위 간사. [연합뉴스]

이 자리에서 “원내대표 간 합의가 어려우니, 3당 예결위 간사가 원내대표의 위임을 받아 협의를 이어가자”는 야당의 제안이 나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전해철 민주당 간사가 3당 간사 회동 직전 열린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 간담회의 결정사항을 갖고 와서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를 철회하지 않으면 예산안도 함께 협의할 수 없다. 간사에게 협상 권한을 위임한다는 것 자체도 원내대표 간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는 취지의 민주당 입장이었다. 앞서 한국당이 지난달 29일 본회의 안건 199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요구안을 제출하고 이에 민주당이 반발하면서 국회 일정은 파행 중이었다.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인 2일에도 예산안은 그대로 방치됐다. 아직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에서 보류했던 사업의 감액 심사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로써 국회는 “5년 연속 법정시한을 넘기는 부끄러운 국회”(문희상 국회의장)가 됐다.
 
지난 10년간 국회의 예산안 처리 날짜
2009년: 12월 31일 
2010년: 12월 8일 
2011년: 12월 31일 
2012년: 다음해 1월 1일 
2013년: 다음해 1월 1일 
2014년: 12월 2일(※예산안 본회의 자동부의 등 국회선진화법 시행) 
2015년: 12월 3일 
2016년: 12월 3일 
2017년: 12월 6일 
2018년: 12월 8일
2019년: ? 
문 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밤을 새워서라도 예산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기를 당부드린다”고 했지만, 여야는 이날도 정국의 핵(核)으로 떠오른 필리버스터를 놓고 ‘네 탓’ 공방만 벌였다. 이날 여야 지도부의 공개 발언은 이랬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해찬 민주당 대표=“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공식 철회하고, 비쟁점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한국당을 뺀 다른 야당과 협력해 예산안과 법안을 해결하겠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민주당은 야당이 예산안·민생법안을 가로막고 있다고 거짓으로 선동하고 있다. 국회법에 보장된 합법적 필리버스터를 방해하는 것이야말로 탈법·반민주·비민주적 처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일 오전 청와대 인근 사랑채 앞 정미경·신보라 의원의 단식농성장을 방문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임현동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일 오전 청와대 인근 사랑채 앞 정미경·신보라 의원의 단식농성장을 방문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임현동 기자

전해철 간사는 이날 민주당 예결위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 대표 발언을 재확인했다. “한국당이 근거도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필리버스터를 취소하고 철회해야만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끝까지 협력하지 않으면 ‘4+1’에서 예산안을 처리할 수 있다”면서다. ‘4+1’이란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내 비당권파인 변혁(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소속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정치세력의 연대를 뜻한다.
 
이에 대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제는 예산도 ‘4+1’에서 하겠다고 한다. 예산독재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간사도 이날 통화에서 “‘4+1’의 정당성은 대체 누가 준 것이냐. 국회법에 따른 교섭단체도 아니지 않느냐. 그럼 앞으로 원내대표 간 협상도 잘 안 되면 다른 당의 마음 맞는 사람 데려다가 협상하겠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그러나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는 10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고, 전 간사도 이날 오후 당 의원총회에서 “내일(3일)까지”라고 야당과의 협상 마지노선을 언급했다고 한다.
 
각 당의 이해관계가 얽힌 공직선거법 개정안, 여권이 사활을 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등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 처리의 불확실성이 촉발한 ‘필리버스터’. 그 필리버스터를 놓고 ‘치킨게임’에 돌입한 여야. 서로 손가락질 하며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까지야 막을 도리가 없다. 다만, 내 세금 513조5000억원(정부 원안)을 갖고 “에누리에만 골몰한다”며 분을 삭이는 국민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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