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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COS) 남성복…"멋보다 기능성, 건물 짓듯 옷 만든다"

중앙일보 2019.12.03 05:00 종합 22면 지면보기
“한국 남성들의 패션 감각은 정말 흥미롭다. 우리가 옷을 디자인하면서 ‘이 옷은 이런 식으로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옷을 입는데 그게 아주 멋지다.”
패션 브랜드 '코스'(COS)의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코핀.

패션 브랜드 '코스'(COS)의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코핀.

패션 브랜드 코스(COS)의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코핀의 말이다.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옥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 남성의 패션 감각을 칭찬하며 “흥미롭다”란 말을 거듭 반복했다. 코핀은 소비자 조사 및 내년 봄·여름 컬렉션 론칭 행사를 위해 10·11월 연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코스' 남성복 크리스토프 코핀
건축가를 꿈꿨던 패션 디자이너
"한국 남성들, 패션 감각 놀라워"

코스는 SPA브랜드 'H&M'의 프리미엄 라인이다. 2007년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설립된 후, 큰 인기를 누리며 전 세계로 매장을 늘려갔다. 국내엔 2014년 처음 소개됐다. 2017년 코스에 합류한 코핀은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니트 디자이너로 시작해 남성복 수석 디자이너까지 2년 만에 초고속 승진한 인물이다. 대학에선 건축을 전공했는데, 옷의 원재료인 섬유와 직물에 관심이 생겨 파리의 유명 패션학교 ‘에스모드’에서 다시 수학하며 패션 디자이너가 됐다.

코핀은 한국에 오면 늘 매장부터 찾는다고 한다. 남성복 코너에 앉아 몇 시간 동안 한국 남성 소비자들이 어떤 옷에 관심을 갖는지 지켜보기 위해서다.  

 
한국 남성 고객의 특징은.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통이 넓은 발목 길이의 ‘와이드 크롭 팬츠’를 좋아한다는 점이다. 보통 유럽에선 다리에 붙는 일자 바지를 많이 찾는다. 한국 남성들은 또 다양한 실루엣과 패턴의 셔츠·니트 스웨터·재킷을 섞어서 입는데, 민트·주황색처럼 화려한 색상의 여성복 니트까지 무리 없이 소화하더라. 이는 유럽인들과는 매우 다른 과감한 시도다. 형태·컬러는 물론이고 작은 디자인 요소까지 옷의 특색을 빨리 알아채고, 이를 어떻게 소화해낼지 자신만의 스타일링 방법을 찾아내는 데 정말 놀랐다.”
-매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매장에 들어온 고객이 가장 먼저 어떤 옷을 집는지, 또 입어봤다가 안 사는 옷은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고객이 원하는 옷’을 만들기 위해선 잘 팔리는 옷이 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킬트'에서 영감을 받은 남성용 스커트(왼쪽)와 아카이브 컬렉션으로 선보인 앞치마 스타일의 조끼. 실험적인 디자인이라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가졌던 옷이지만, 오히려 한국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인 '킬트'에서 영감을 받은 남성용 스커트(왼쪽)와 아카이브 컬렉션으로 선보인 앞치마 스타일의 조끼. 실험적인 디자인이라 '과연 소화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가졌던 옷이지만, 오히려 한국 남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한국 매장에 걸기 무섭게 팔리는 통 넓은 크롭 팬츠.

한국 매장에 걸기 무섭게 팔리는 통 넓은 크롭 팬츠.

코스는 SPA브랜드 군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와 자체 공장 운영 및 유통망은 갖고 있지만, 빠르게 트렌드를 반영해 옷을 만들고 또 빠르게 소비케 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과는 거리가 있다. 옷이 매장에 걸리기까지 준비 기간만 최소 18개월. 디자인은 '현대적인' '영속성 있는(타임리스)' '촉감이 좋은' '기능적인' 네 가지 원칙에 따른다. 현대적인 감각을 반영하지만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어야 하며, 눈으로 볼 때나 입었을 때 만족감을 주는 촉감을 중시한다. 코핀은 “특히 기능성을 따지는 것은 건축과 많이 닮았다”고 강조했다. 
 
건축과 옷의 공통점은.
"둘 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만큼 사용하기에 편해야 한다. 우리는 옷을 만들 때 ‘어떻게 하면 멋지게 보일까’보다 이 옷을 입게 될 사람들이 무엇을 기대할지를 먼저 생각한다. 옷의 기능성에 중점을 두는 사고방식이다."
 
옷의 기능성을 살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예컨대 바지 주머니 하나를 만들 때도 멋보다는 주머니가 어디에, 어떻게 달려 있어야 편할까를 먼저 생각한다. 한 가지 옷을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기능성 우선의 사고방식이다.”  
 
건축에서 받은 영감은 어떻게 옷에 반영되나.
“먼저 사용하고 싶은 건축물의 요소들(형태·선·각도 등)을 해체한다. 그 중 몇 가지를 반영해 옷을 스케치하고, 그에 맞는 소재를 선택해 여러 단계에 걸쳐 샘플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코스의 디자인 원칙과 맞지 않는 것은 과감하게 모두 제거한다.””

 
코스 아카이브 컬렉션. 여밈 단추를 어깨에 달아 앞판엔 아무것도 없는, 깔끔한 디자인의 셔츠를 만들었다.

코스 아카이브 컬렉션. 여밈 단추를 어깨에 달아 앞판엔 아무것도 없는, 깔끔한 디자인의 셔츠를 만들었다.

코스 남성복의 2019년 가을겨울 컬렉션.

코스 남성복의 2019년 가을겨울 컬렉션.

한 장의 천에 고리를 달아 만든 남성용 액세서리. 자신이 원하는대로 형태를 만들어 착용할 수 있다.

한 장의 천에 고리를 달아 만든 남성용 액세서리. 자신이 원하는대로 형태를 만들어 착용할 수 있다.

최근 코스는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지난 13년간 선보였던 옷 중에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 디자인 철학에 부합하는 옷 12개를 골라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아카이브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내놓은 것. 이 컬렉션은 11월 초 매장에 걸린 지 일주일 만에 완판됐다. 이 역시 건축학도였던 코핀의 주도로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영속성·실용성을 강조하는 디자이너로서 추천할 만한 옷은.
“촉감이 부드러워서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푸른 빛의 회색 티셔츠와 검정 크롭 팬츠, 그리고 양모 원단 두 장을 손바느질로 붙여 만든 남색 코트다. 이 옷들은 언제 어디서나 요긴하게 입을 수 있다.”
남성복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코핀이 추천한 "언제 어디서나 요긴하게 입을 수 있는" 남색 울 코트.

남성복 디자이너 크리스토프 코핀이 추천한 "언제 어디서나 요긴하게 입을 수 있는" 남색 울 코트.

 
옷을 잘 입는 비법이 있을까.
“나는 아침 출근길마다 그날의 기분과 분위기에 딱 맞는 음악 선택에 공을 들인다. 옷도 마찬가지다. 매일 매일 나의 상태·상황과 잘 맞는 옷을 선택하면 된다.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 ‘이것은 입어야 하고, 이것은 입지 마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다. 대신 자신이 선택한 스타일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라 권하고 싶다. 예컨대 무난하게 흰 티셔츠에 남색 니트 스웨터, 청바지를 택했다면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재킷이나 액세서리를 더해보라.”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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