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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발생 첫 농가 “30년·2대째 지켜온 파주 떠납니다”

중앙일보 2019.12.03 00:04 경제 5면 지면보기
돼지가 모두 살처분 된 후 텅 빈 돈사의 모습. 해당 농장은 한때 어미돼지 400마리를 비롯해 총 2369마리의 돼지를 사육했다. 허정원 기자

돼지가 모두 살처분 된 후 텅 빈 돈사의 모습. 해당 농장은 한때 어미돼지 400마리를 비롯해 총 2369마리의 돼지를 사육했다. 허정원 기자

지난달 27일 경기도 파주시 연다산동에 위치한 S농장. 지난 9월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수’를 뻗친 곳이다. 중앙일보와 만난 농장주 채수용(28)씨는 “자식같이 키워온 돼지를 묻을 때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면서 “이제 30년간 지켜온 파주 농장을 정리하고 경기도 밖으로 옮기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채씨는 양돈 사업을 해온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축산 2세다. 그의 요청에 따라 인터뷰에서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의 목소리로 그간의 심경을 옮긴다.
 

살처분에 농장 잃은 채수용씨 사연
2대가 구제역·ASF 차례로 겪어
“파주, 북한 인접해 재발 위험성”
생후 1일 돼지 매몰 ‘트라우마’

◆수익·위생 1등 농장=9월17일 아침 돈사 문을 열었는데 어미돼지 3마리가 죽어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본적이 없었어요. 뭔가 큰일이 났다 싶었죠. 저희 농장은 파주시에서 돼지 생산성이 제일 높습니다. 어미돼지 1마리당 25마리를 출하하는데 한국 평균이 17마리거든요. 위생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중국에서 ASF가 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전용 약품을 사서 소독하고 방문자를 일일이 체크하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기울였어요.
 
파주시 연다산동 농장에서 인터뷰 중인 채수용씨. 허정원 기자

파주시 연다산동 농장에서 인터뷰 중인 채수용씨. 허정원 기자

오후 5시쯤 동물위생시험소에서 비장과 피 등 표본을 가져갔어요. 처음에는 ‘다른 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 ASF라고 생각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결과는 양성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검역 당국에서 장비를 들여와서 바로 다음 날 살처분을 시작했습니다. 바이러스가 퍼지면 안 되고 이동중지 명령이 걸리는 바람에 저는 21일 동안 농장에 갇혀 지냈습니다.
 
아버지가 25년간 양돈 농장을 운영하셔서 어릴 때부터 돼지를 접했어요. 교배시키는 것부터 출산할 때, 새끼 돼지가 젖을 뗄 때, 출하할 때까지 모든 순간을 같이 합니다. 새끼 돼지를 보면 너무 귀여워요. 자식 같죠. 그래서 돼지를 묻을 때 차마 볼 수가 없었고, 안 봤습니다. 그중에는 매몰 전날 태어나 1㎏도 안 되는 새끼 돼지도 있었어요. 황망하니까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시에서는 상담치료 권유=매몰 작업 때는 용역업체에서 나왔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이분들은 충격을 받는 게 아니라 재밌어하더라고요. 가스 주입해서 안락사한 돼지를 놓고 사진 찍고 웃고 떠들고. 그래서 그분들과 크게 한판 싸웠죠. 용역업체 사장님한테 ‘초상집에 와서 뭐하는 짓이냐. 이러면 어떡하냐’고 따졌습니다. 자기들은 그 죽음이랑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죠.
 
우리 직원들도 충격이 컸습니다. 용역업체에서 매몰지로 돼지를 일일이 옮길 수 없으니까 저와 직원 4명이 같이 돼지를 몰아갔거든요. 자기가 키운 돼지를 자기가 사지(死地)로 몰아갔으니까…(한동안 침묵) 파주시에서 정신적 충격이 있으니 상담치료를 권하더군요. 지금은 그 순간을 안 떠올리려 합니다
 
매몰지는 바이러스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농장 안에 위치한다. 허정원 기자

매몰지는 바이러스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농장 안에 위치한다. 허정원 기자

◆구제역 무덤 옆에 ASF 무덤=매몰지 옆에 또 다른 돼지 매몰지가 있어요. 2011년 구제역 파동이 있었을 때 2500마리 정도 돼지를 묻은 곳입니다. 농장 밖이 아닌 농장 내부에 돼지를 묻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다른 데로 나가면 안 되니까 그런 겁니다. 2011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죠. 지금은 돼지를 가스로 안락사하고, 용기에 넣어 매몰하는데 그때는 살아있는 돼지를 산채로 구덩이에 묻었어요. 당시에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런데 피해가 복구될 때쯤에 또 이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파주 농장을 정리하고 경기도를 벗어난 남쪽으로 옮기려고 준비 중입니다. 파주는 북한이 인접했는데 북한은 상황이 더 심각하잖아요.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으니까. 지금도 멧돼지에서는 계속 ASF 바이러스가 나오고 있어요. 이 근처에서도 멧돼지를 3마리 정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소탕하더라도 다시 또 바이러스가 내려올 수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농장 재구축 비용 40억~50억원=이 정도 농장 시설을 다시 구축하는 데는 평균 40억~50억원이 들어갑니다. 시설 구축 외에 어미돼지를 추가로 사는 데만 10억원 이상 들어가고요. 더 문제는 시간입니다. 어미돼지를 사서 교배하고 분만하고 젖을 떼고 출하까지 1년 반 이상 걸려요. 그럼 그 동안 뭐 먹고 삽니까.
 
제 지인 중에 30대 중반으로 연천에서 양돈을 시작한 분이 있는데, 30억 빚을 내서 얼마 전에 시작했어요. 이분은 신용 불량자가 된 것 외에 미래가 안 보여요. 국가에서는 1마리당 30만원으로 잡고 그 절반인 마리당 15만원을 보상해줬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게 대부분이에요. 매몰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시 재기할 수 있게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인터뷰 이틀 뒤=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양돈 농가와 간담회를 열고 “접경지역 농장의 재입식(돼지를 다시 키우는 것)은 방역시설 기준을 보완한 후에야 이뤄질 것”이라며 “시설 보완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은 일정 부분 정부에서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방역시설을 강화하기 어려워 폐업을 할 경우 폐업 지원도 하도록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주=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 위 기사는 중앙일보 온라인판에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활용된 경어체를 그대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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