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한국 7인제 럭비 국가대표 김진. 미국 국적이던 그는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특별귀화했다. 장진영 기자
올림픽 첫 본선행 도운 귀화선수
고향 잠실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
중국회사 접고 어머니 나라 찾아
훈련 뒤 곱창으로 스트레스 풀어
1924년 파리올림픽을 끝으로 정식 종목에서 밀려났던 럭비는 92년 만인 2016년 리우올림픽 때 돌아왔다. 럭비는 축구장과 비슷한 면적의 경기장에서 공을 들고 상대 골 지점까지 돌파해 ‘트라이(득점)’하는 종목이다. 경기 시간은 전·후반 7분씩에 휴식 1분이다. 14분간 3㎞ 이상 뛸 만큼 활동량이 많고, 몸싸움과 태클은 거칠다.
김진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91년 태어났다. 탄탄한 체격(1m95㎝·100㎏)은 아버지(1m83㎝)와 어머니(1m75㎝)한테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1980년대 세계적인 모델로 활동했던 김동수(62) 동덕여대 패션학과 교수다. 아버지(67·노웰 코퀴야드)는 미국 다트머스대 미식축구 선수였다. 한 미국 식품회사 아시아지역 책임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12세까지 서울과 일본 도쿄를 오가며 자랐다. 어린 시절 한국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11세였던 김진은 “당시 차범근 축구 교실에 다니던 ‘골 좀 차는 어린이’였다. 한국 축구를 보며 흥분해서 방방 뛰어다녔다”고 회상했다.
럭비는 중학 3학년 때인 2006년 캐나다에서 유학하며 시작했다. 입문과 동시에 재능을 보였다. 17세 때인 2008년 아버지의 나라인 미국 럭비 청소년 대표선수로 뽑혔다. 김진은 “당시 키가 1m85㎝였다. 축구나 농구보다 럭비에 최적인 체격이었다. 럭비는 축구의 드리블, 킥 등과 비슷한 움직임이 많아 적응이 쉬웠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학 럭비 최강 UC버클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며 계속 럭비를 했다. 2014년 중국 상하이의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에 취직하며 선수 생활을 접었다. 저변이 넓지 않은 럭비 선수로 계속 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김진(안드레 진 코퀴야드)
한국에 적응하기까지는 어려움도 있었다. 일부에선 김진을 외국인으로 취급했다. 존댓말이 익숙지 않아 오해도 많이 샀다. 그는 “‘괜히 한국에 왔나’ 후회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올림픽만 보며 묵묵히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8월 특별귀화를 마쳐 한국 국적을 얻었다. 그는 “이젠 진짜 한국 사람이다. 자신 있게 잠실이 고향이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부주장인 그는 훈련 후 동료들과 곱창에 맥주 한잔하며 스트레스를 풀 만큼 끈끈하다.
김진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어릴 때 지켜봤던 한·일 월드컵 4강 같은 기적을 꿈꾼다. 그는 “2002년 축구는 전 세계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일”이라며 “우리도 도쿄에서 기적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올림픽에서 제대로 사고 한 번 치겠다”며 왼쪽 가슴의 코리아 엠블럼을 움켜쥐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