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사에 "강제징용 해법, 한국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 던져야"

중앙일보 2019.12.02 01:30 종합 10면 지면보기
사사에 겐이치로(佐々江賢一郎)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 “한국이 먼저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해결책을 한국이 먼저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미대사, 외무차관 지낸 한ㆍ미 전문가
6자회담 일본측 수석대표로도 활동
"한일, 침묵하는 다수에 귀 기울여야"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지난달 2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지난달 2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그는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한 문희상 국회의장의 ‘2+2+α’안(한일 기업과 정부, 국민의 성금으로 배상금 마련)에 대해선 “문 의장의 선의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는다”면서도 “만약에 일본 기업이 돈을 내지 않아도 용인될 수 있는가. 일본 기업에 자발성을 강요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6자회담 일본측 수석대표, 외무성 사무차관, 주미대사를 지낸 그는 한·일관계에도 깊숙히 관여해왔다. 그는 2012년 사무차관 재임 당시 위안부 문제 해법과 관련 ▶일본 총리의 직접 사과 ▶주한 일본대사의 피해자 면담 ▶일본 정부 예산을 통한 피해자 보상안을 담은 이른바 ‘사사에안’을 한국 측에 제안했던 장본인이다. 
 
주미대사를 끝으로 직업외교관을 은퇴한 뒤, 2018년부터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이사장 겸 소장을 맡고 있다. 사사에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7일 50분 동안 진행됐다.  
 
지소미아는 결국 연장됐다. 이에 대한 평가는?
잘된 일이다. 조건부 유예 결정이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의 모멘텀이 생겼다. 지소미아 연장 종료 통고는 솔직히 지나쳤다. 이제는 나쁜 사이클을 끊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수출규제 문제는 (강제징용 문제와 연결지어) 정치화하지 말고 순수하게 처리해 나가면 된다.  
 
일본 정부도 수출당국 대화를 수용했다. 관계 개선의 의지가 있었던 건가, 아니면 미국의 압력 때문인가.
딱 잘라 어느 것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 정부가 가장 우려했던 건 북한문제에 있어서 한·미·일의 안보 태세였다. 지소미아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큰 요소다. 미국도 같은 생각을 공유했고, 그 우려는 일본보다 더 컸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도 압력을 받았는가는 받아들이는 방식의 문제다. 미국은 한·일 양측에 문제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를 압력이라고 한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이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중재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소미아는 미국을 움직이려 했던 카드라는 시각도 있다.
우선 지소미아는 카드가 아니다. 동맹 관계에서 안보상의 중요한 협정이나 관계를 다른 문제를 위해 카드로 사용하는 건 좋지 않을뿐더러, 한국이 그런 의도로 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본다. 만약 미국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과연 정상적인 건지 의문이다.  
 
지소미아 사건으로 인해 미국 내 한국에 대한 신뢰에 변화가 있었다고 보나.
지소미아 연장 유예 결정에 의문을 가진 건 사실이고, 그런 의미에서 신뢰감 저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미동맹의 근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은 일본의 안보상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한국이 최전선에 서 있다는 건 사실이며, 일본의 평화와 안전과도 크게 연관이 있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일본 역시 미·일안보조약에 의해 배후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즉 억지력은 한국군과 주한미군 뿐 아니라, 주일미군과 그 동맹협력관계인 자위대를 포함한 전체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 점을 한국인들이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미교섭은 어떻게 전망하나. 북한은 올 연말을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는데.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이 시간벌기에 나선 것 뿐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은 교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무 협의에서 북한이 세게 나오다가 다시 과거의 길로 돌아갈까 걱정된다. 지나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단거리 미사일발사도 문제지만,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의 시험발사 같은 도발을 하면 교섭은 중단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 이전의 ‘스테이지 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북한이 냉정한 판단을 한다면 그런 일은 안할 거라 생각한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2+2+α’안은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일본 정부가 수용할 수 있다고 보나.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에 있어선 원칙의 문제다. ‘문희상 안’이 한국 국내에서 얼마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문 의장의 선의를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한국 정부의 정식 제안이라도 나중에 입장이 바뀔지도 모른다. 위안부 합의 때도 그랬다. 기업의 자발성이라는 점이 실제로 기업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허용할 수 있는가. 강요된 자발성이어선 안된다.  
 
강제징용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지금 필요한 건 대화로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이다. 한국이 강제징용 해법을, 야구로 치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공을 던져야 한다. 감정의 문제와 거리를 두고 보다 냉정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2월 말 한·일정상회담을 조율 중인데 어떤 성과를 기대하나.
수출규제 해제나 강제징용 해결책이 나온다면 환영할만한 일이다. 다만 처음부터 어떤 성과를 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식의 논의는 생산적이지 않다.  
 
최근 한일 양국의 신뢰도 크게 손상됐는데, 관계 회복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대화를 중단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좋은 관계를 기대하는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 외교의 문제에 휩쓸리지 말고 시민들의 교류나 비즈니스는 독립적으로 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한·일 양국 국민에게 하고싶은 말이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