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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19번째 대입 흑역사

중앙일보 2019.12.02 00:17 종합 32면 지면보기
천인성 교육팀장

천인성 교육팀장

기자는 재수한 94학번이다. 마지막 학력고사(1993 대입)에서 ‘낙방’하고, 이듬해 처음 도입된 대입 수능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94학번은 수능을 한 해 두 번 치른 전무후무한 학번이기도 하다. 아이디어야 그럴듯했다. 두 번 수능 치고 그중 나은 걸 반영하는 게, 딱 한 번만 기회를 주는 것보다 공정하고 안전하다고 여긴 거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8월 1차 수능에 비해 12월 2차가 너무 어려웠다. 대다수 수험생의 2차 성적이 1차보다 10~30점 떨어졌다(200점 만점). 2차 대비에 열중했던 수험생은 무려 넉 달을 헛고생한 셈이었다. 물론 정부는 이듬해 연 1회로 다시 변경했다.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내놓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은 1945년 광복부터 헤아리면 19번째 대입 개편이다. 지금껏 4년에 한 번꼴로 입시판이 뒤흔들렸단 얘기다. ‘대입 흑역사(黑歷史)’엔 94학번의 헛고생 같은 사례가 숱하다. 그럴듯한 목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지만 학생·학교의 부담·혼란만 가중시켰다는 게 공통점이다.
 
노트북을 열며 12/2

노트북을 열며 12/2

고교생 시위까지 초래했던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대표적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수능을 9등급제로 고치고, 절대평가이던 고교 시험을 상대평가 9등급제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수능 부담을 줄이고 내신의 신뢰도를 높여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였다. 의도야 훌륭했지만 학생은 수능·내신·논술 모두를 대비해야 하는 ‘삼중고’를 겪었다.
 
목표와 방향만 보면 이번 개편도 공감 가는 면이 꽤 있다. 물론 대통령의 지시, 조국 전 장관 딸 문제와 관련 없다는 교육부의 ‘정치적 수사’는 빼고 말이다. ‘금수저·깜깜이 전형’이란 사회적 불신에도 불구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이 너무 빨리 확대된 게 사실이다. 사회통합전형의 의무화는 기회의 평등이란 면에서 설득력이 있다.
 
디테일을 보면 걱정되는 지점이 많다. 개편안은 정시 확대 여론과 학종 유지 주장 사이의 절충안에 가깝다. 이대로라면 대입 지형이 ‘4:4:2(수능:학종:사회통합)’로 재편될 텐데, 벌써 교사 사이에선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부활할 것”이란 걱정이 나온다. 논술과 학생부 비교과를 폐지하면 수능·내신이 중요해지는데, 대학이 면접 등 대학별 고사를 강화하면 수험생은 새로운 삼중고에 빠질 수 있다.
 
개편안은 대통령이 공정성 강화를 지시한 지 석 달, 정시 확대를 언급한 지 37일 만에 발표됐다. ‘속도전’에 매달렸던 교육부에 학생·고교·대학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따져볼 시간이 과연 있었을까. ‘흑역사’가 또 반복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천인성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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