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세력은 정작 누구인가

중앙일보 2019.12.02 00:14 종합 34면 지면보기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청와대 관권 개입 의혹의 당사자인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이 검찰 수사를 향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공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상황에서 조사 대상자의 명예퇴직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법에 따른 것이다. 더욱이 그는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수사를 대가로 공천을 보장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야당의 지적을 받는 등 정치적 논란의 당사자이다. 그런데도 행복추구권, 재산권, 직업 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를 운운하며 ‘수사의 공정성 확보’라며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건 공직자로서의 올바른 처신이라고 볼 수 없다.
 

비서실장 ‘고래고기’ 해명은 국민 우롱
우리들병원 특혜대출 의혹 조사 대상

지금까지 진행된 검찰 수사에 따르면 선거를 석 달 앞둔 지난해 3월을 전후해 당시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김 전 시장과 측근들의 비리 첩보 수집 및 문건 작성을 주도한 정황이 있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백 당시 비서관이 건넨 문건을 경찰청에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백원우-박형철-조국 당시 민정수석으로 이뤄진 청와대 민정실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나의 가장 큰 소원은 그의 당선”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송철호 울산시장의 후원회장을 지냈던 조국 전 수석의 이력을 감안할 때 청와대와 황운하의 울산경찰이 조직적으로 정치공작을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은 또 울산지역 건설업자가 진정서 형태로 청와대와 민주당에 접수시킨 김 전 시장 측에 대한 비리의혹 문건에 청와대 민정비서관팀들이 추가로 첨삭을 하고 법률적 판단까지 기재하는 등 편집한 흔적도 발견했다. 당시 백 전 비서관 밑에서 별동대처럼 움직이던 행정관 두 명이 울산 현지에 직접 내려가 김 전 시장 관련 첩보를 수집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청와대는 선거를 전후해 수사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시 경찰이 고래고기 수사를 놓고 검찰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보도가 있어 사실 확인차 내려갔다”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해명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래고기가 느닷없이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는 민정비서관실의 업무 반열에 올랐다는 말인가”라는 야당의 지적에 오히려 수긍이 간다.
 
조국씨 일가족의 비리사건에 이어 연이어 터지고 있는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의 뇌물 및 감찰 무마 의혹과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구심이야말로 공정과 정의를 담보해야 할 우리의 법치주의를 뒤흔들고 있다. 국가기관이 나서 권력자들의 사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국민의 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다. 이들 사건에 연루된 특권층 인사들은 이상한 궤변으로 사태를 호도할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 터져나오고 있는 친정부 성향의 경영진들이 포진한 우리들병원에 대한 산업은행의 1400억원대 특혜대출 의혹은 또 무엇인가. 경제는 파탄 나고, 외교는 외톨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며, 국방은 불안한 평화가 계속되고 있는데 곳곳에서 비리의 악취가 풍겨나오고 있다. 과거 정권의 불행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단호하게 대처하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