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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곯는 청춘들, 새벽 무료급식소에 100명 가까이 줄선다

중앙일보 2019.12.02 00:05 종합 2면 지면보기
서울 종암동 성복중앙교회 식당에 무료급식을 먹은 학생들이 적어둔 감사 인사. ’참위로를 얻습니다“ ’집밥이 그리웠어요“라고 적혀 있다. 이 교회는 4년 전부터 청년들을 위한 아침 무료급식인 ‘새벽만나’를 시작했다. 편광현 기자

서울 종암동 성복중앙교회 식당에 무료급식을 먹은 학생들이 적어둔 감사 인사. ’참위로를 얻습니다“ ’집밥이 그리웠어요“라고 적혀 있다. 이 교회는 4년 전부터 청년들을 위한 아침 무료급식인 ‘새벽만나’를 시작했다. 편광현 기자

“편의점 기프티콘을 휴대전화 요금으로 청구해 일단 끼니를 때워요.” 대학생 A씨(23).
 

노량진·종암동 교회식당 가보니
“알바 2개 50만원 벌이 생활 빠듯”
“밥 안 먹는 게 돈 아끼기 가장 쉬워”
대학생 “달걀 2알로 하루 버티기도”
취준생 83% “하루 1끼 이상 굶어”

“아침 1000원 학식(학교 식단)으로 배를 채우고 점심은 거르거나 간단하게 먹어요.” 대학생 박모(21)씨.
 
2019년의 이야기입니다. 어르신들이 보기에 요즘 청년들은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죠. 지난달 25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난 김모(74)씨도 “요즘 애들은 씀씀이가 크니 돈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는 끼니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대학생 강수민(23)씨는 “돈이 없을 때는 삼각김밥 ‘존버’(오래 버틴다는 뜻)를 외치면서, 삼각김밥을 고를 때마저도 800원짜리랑 1200원짜리 중 고민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 강씨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청년수당 줘봤자 치킨이나 먹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걸 듣고 상처를 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외 익명을 요구한 청년들은 “달걀 두 알로 하루를 버틴 적도 있다”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바나나 5개를 1000원에 사서 버텼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19일 오전 7시 한 청년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 편광현 기자

지난 19일 오전 7시 한 청년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다. 편광현 기자

대학생 형모씨는 “돈을 아끼려고 끼니를 대충 해결하지만, 소득분위 1분위(최하위 20%)는 아니라 생활비장학금은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학 4학년인 박모씨는 “방세 내고 책을 사야 해서 돈을 아끼다 보니 돈을 절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밥을 안 먹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다른 대학생 김모(21)씨는 “주 7일 내내 아르바이트 2개를 하면서 월 50만~60만원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아이스크림 하나로 끼니를 해결한 적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청년만의 고충이 아니라는 조사도 있습니다. 2017년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업준비생 114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83.1%가 하루 한 끼 이상 굶는다고 답했는데요. 그 이유로 ‘식비 부담이 크다’(42.3%)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런 청년을 위해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서울 노량진 강남교회와 종암동 성복중앙교회입니다. 최저기온이 영하 4도였던 지난달 19일. 기자는 새벽 무료식사를 제공하는 두 교회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배 곯는 대학생

배 곯는 대학생

이른 아침 청년들은 검은 패딩으로 몸을 감싸고 한두 명씩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봉사자들은 몇몇 청년의 얼굴이 익숙한 듯 “오늘은 일찍 왔네”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죠. 이날 강남교회에는 100명 이상, 성복중앙교회에는 80명이 넘는 청년들이 왔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요. 강남교회에서 만난 박찬미(21)씨는 부산에서 올라와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요. 박씨는 “아침밥을 먹으려면 최소 3000원이 드는데 수험생 입장에선 부담이 된다”며 “무료 식사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성복중앙교회에 온 김동영(22)씨 역시 “아침과 저녁만 먹는데도 한 달에 20만~30만원 정도 든다”며 “이곳 덕분에 10만원은 절약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음식을 제공하는 건 전도(傳道) 목적이 아닙니다. 밥 먹기 전 기도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길성운 성복중앙교회 담임목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과일·야채 제공, 주 2회 고기반찬 제공, 전도하지 않기를 원칙으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김상순 강남교회 목사도 “권사님들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최소 200인분 식사를 준비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회의 무료식사만으로는 이들의 배고픔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겠죠. 이들에게 필요한 건 뭘까요. 청년들은 ‘1000원 학식’ ‘생활비 장학금’ 등을 꼽기도 했고요. 대학 4학년 김모(24)씨는 “마음 편히 밥 먹기 위해선 물가를 낮추고 월세를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이승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식사권(굶지 않을 권리) 문제의 원인은 소득 부족뿐 아니라 불안정한 노동시장, 스펙 경쟁으로 인한 시간 부족 등이 얽혀 있다”며 “이들의 다른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지아·편광현 기자, 신윤아 인턴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