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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이해찬, 힘 얻을수록 당은 더 깊은 무기력의 수렁으로?

중앙일보 2019.11.30 15:00
계속된 여당의 침묵에 ‘청와대 독주’ 가속화
당내 쇄신 목소리도 친문 헤게모니의 높은 벽 못 넘어

커버 스토리-심층진단(2)
조국 사태 후 유구무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등이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방안 논의를 위한 당·정·청 회의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낙연 국무총리,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등이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방안 논의를 위한 당·정·청 회의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전격 사퇴한 바로 다음 날인 10월 1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조국 얘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국면이 67일 만에 끝났다”고 밝혀 조국 사태가 그 배경이었음을 시사했다. 10월 24일엔 같은 당 표창원 의원도 불출마 대열에 가세했다. “조국 전 장관 때문만은 아니지만, 최근 가장 힘든 사건이었던 건 분명하다.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지만, 법사위는 지옥 같았다.” 그의 결정 역시 조국 사태와 무관치 않음을 내비쳤다.
 
당을 대표하는 ‘스타급 초선 의원’ 두 사람이 던진 폭탄선언의 파장은 컸다. 충분한 당선 가능성에도 자기를 버렸다는 ‘정치적 희생’이 부각되면서 당장 대대적 물갈이의 물꼬가 트였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정작 시선이 집중된 곳은 민주당 지도부를 겨냥한 당 쇄신 여부였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당의 무기력, 지도부의 안이한 상황인식, 중도층 민심 이반 등에 대해 두 의원이 대신 총대를 멨다는 분석 탓이었다.
 
조응천 의원은 10월 25일 의원총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 전 장관을 지명한 뒤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공정과 정의, 기회의 평등’이라는 우리 당의 가치와 상치되는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지는 상황이 돼 힘들었다. 많은 의원이 지옥을 맛봤다.” 그동안의 ‘벙어리 냉가슴’ 고백에 이인영 원내대표는 10월 30일 추가 의총을 약속하며 서둘러 회의를 끝냈다. 그러자 당 안팎의 시선은 일제히 이해찬 대표에게로 쏠렸다. 당장 대표직 사퇴까진 아니더라도 나름의 쇄신책 제시와 함께 그의 역할 축소 가능성이 대두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소한 현재까지 관측으론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은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10월 25일 의총 당시 러시아 방문 중이었던 그는 귀국하자마자 28일 이철희, 표창원 의원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당의) 혁신이 필요하고 노력하겠다”며 불출마에 담긴 두 의원의 요구를 흔쾌히 수용했다. 이 대표가 한껏 자신을 낮추자 그의 책임론을 거론했던 이 의원은 면전에선 아예 이를 꺼내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도옹(不倒翁) 이해찬, 당의 위기는 나 몰라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끈 그는 바로 대국민 여론전에 나섰다. 당초 예정된 일정보다 닷새 빠른 10월 30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여기서도 최대한 몸부터 낮췄다. “국민, 특히 청년들이 느꼈을 불공정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좌절감을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한 그의 공식적 사과는 처음. 그러나 사과 앞마디에 “민주당이 검찰개혁이란 대의에 집중하다 보니”라는 사족을 달면서까지 나름 방패막이를 만들어 놓았다.
 
당 혁신에 대해서도 “여당에게 쇄신은 국민의 요구에 맞는 정책을 만들어 국민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것”이라며 원칙론 언급에 그쳤다. 오히려 자신을 겨냥한 일부 당원들의 지도부 총사퇴 요구에 대해선 분명히 선을 그었다. “권리당원이 70만 명에 가깝다. 게시판에 들어와 사퇴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다 합쳐서 2000명 정도다. 아주 극소수가 그러는 것이다. 더구나 총선이 다섯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지도부가 물러나는 것은 선거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합리적 의견은 아니다.”
 
이 발언에 당 홈페이지 권리당원 게시판에선 난리가 났다. “극소수 의견은 무시해도 되느냐”, “수천만 인구 중 1000명, 2000명 표본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어떻게 믿느냐”는 등 발끈한 당원들 글이 쇄도했다.
 
그런데 정작 의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원내대표가 약속했던 10월 30일 의총이 문재인 대통령 모친상을 이유로 열리지 못했던 탓도 컸다. 그러나 나흘 순연 끝에 열린 11월 4일 의총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의총 뒤 정춘숙 원내대변인은 “누구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정·청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면서 “질서 있는 쇄신”을 강조했다.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토론하되 외부적으로는 협상하는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 정 대변인이 전한 ‘질서 있는 쇄신’의 의미였다. 한마디로, 지도부 책임을 물으려다 오히려 재신임장을 준 꼴이었다.
 
이날 의원들 침묵엔 의총 직전 발표된 총선기획단 명단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호중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모두 15명으로 구성된 기획단 면면에 쇄신 의지가 두드러졌기 때문. 절반에 가까운 7명이 원외 인사인 데다, 여성 5명(33%), 2030 청년 4명(27%)으로 정치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돋보였다. 특히 조국 장관 임명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던 금태섭 의원 발탁은 ‘친문(親文) 순혈주의’ 타파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까지 낳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발표된 자유한국당 총선기획단 면면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황교안 대표 측근 일색인 데다 여성 1명에 2030 청년은 전무였던 것. 그래서 새삼 ‘이해찬 리더십’이 조명을 받았다.
 
결국 이 대표가 사태 민감성을 직감한 뒤 한 박자 빠른 정면 돌파와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총선기획으로 일단 위기에서 탈출하는 모양새임은 분명하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다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부도옹(不倒翁) 이해찬 대표의 노회한 정치력이 그 자신의 정치적 위기 탈출에는 도움이 됐는지 모르지만, 정작 당의 위기는…” 수도권 지역에서 내년 민주당 공천을 노리며 활발히 뛰고 있는 예비 정치인이 들려준 푸념이다.
 

진영에 치명상 입히는 ‘팬덤정치’의 그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철희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철희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조국 사태로 촉발된 당의 위기가 ‘이해찬 정치력’으로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잠복한 채 내연(內燃)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쇄신 몸짓과 의지에 감복하고 설득돼 당내 불만이 누그러진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작 의원들 입을 묶고 행동거지를 붙들어 맨 실체는 이른바 ‘팬덤정치’. 팬덤(fandom)이란 영어로 ‘열성 지지층’을 일컫는 단어다. 당초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열광적으로 쫓아다니는 팬들을 규정하던 이 말은 어느새 인기 정치인의 추종자로까지 의미를 확대했다.
 
문제는 정치인을 좇는 팬덤은 오직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유불리만으로 상황을 단순하게 판단해 집단적으로 행동한다는 점. 그 때문에 팬덤 자신들이 추종하는 정치인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고 판단하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그 행위자에게 철저한 정치적 응징을 가한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 본보기. 보수성향 정치인 팬덤은 ‘조국 사퇴’와 ‘문재인 탄핵’을, 반대로 진보성향 정치인 팬덤은 ‘조국 수호’와 ‘윤석열 사퇴, 검찰 개혁’을 외치며 강하게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 팬덤은 저마다의 결속력과 전투력을 배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조국 대전(大戰)이 끝났다고 해도, 사태 전개과정에서의 자기편 잘잘못을 따져 묻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의원들 입장에선 자칫 자신의 말 한마디, 섣부른 몸짓 하나가 당의 주류를 떠받들고 있는 ‘팬덤정치’와 어긋날 경우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권리당원이 사실상 공천권을 쥔 민주당 사정을 감안하면 의원들의 신중함은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 7월 확정된 민주당 공천룰에 따르면 공천은 경선이 원칙. 경선 선거인단 비율은 권리당원 50%, 일반여론조사 50%다. 권리당원을 일체 배제하고 일반 여론조사 100%로 경선을 치렀던 4년 전 공천 때와는 격세지감. 권리당원이 매달 1000원 당비를 자발적으로 6번 이상 내야 자격이 주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는 정치인 팬덤일 가능성이 높다.
 
당의 쇄신 기운이 삽시간에 식으면서 일그러진 당·청 관계 정상화 요구도 힘을 잃는 형국이다. 조국 장관이 사퇴한 직후인 10월 17일 3선 중진 정성호 의원이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올렸다. “조국은 갔다. (하지만 남은 사람들이) 후안무치한 인간들뿐이니 뭐가 달라지겠는가. 책임을 통감하는 자가 단 1명도 없다. 이게 우리 수준이다.” ‘책임 통감’이란 말에 빗대 볼 때, 당 쇄신 못지않게 반대 여론에도 조국 장관 임명을 밀어붙였던 청와대 관계자의 인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읽혔다.
 
그 후 열린 두 차례 의총에서도 청와대 ‘독주’를 의미하는 ‘청와대 정부’가 아닌 당·청 관계의 복원을 통한 ‘민주당 정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쇠 귀에 경 읽기’. 조국 대전이 끝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청와대 어느 누구도 “내 탓이오”라며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에선 불평 하나 새나오지 않았다.
 
당이 침묵하는 사이, 당·청 관계 정상화는커녕 오히려 청와대 ‘독주’는 가속화하는 느낌이다. 11월 1일 열린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가 한 사례. 조국 사태 책임론을 놓고 노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측의 고압적 답변에 야당이 반발하며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던 회의는 결국 사달이 났다.
 
안보 불안 여부를 놓고 정의용 안보실장과 티격태격하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우기지 마시라”고 하자 정 실장 뒤에 앉아 있던 강기정 정무수석이 ‘버럭’ 하고 나선 것. 그는 나 대표를 향해 “우기는 게 뭐예요”라며 “피감기관은 사람도 아닌가. 말씀 조심하라”고 외쳤다.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정회 후 강 수석의 유감 표명으로 국감은 가까스로 끝났다. 하지만 야당은 이후 강 수석 사퇴를 요구하며 국회 예결위 회의를 거부했다.
 
하루의 파행 뒤 이낙연 총리가 예결위에서 직접 사과하는 것으로 사태는 봉합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드러난 민주당 부재 현상. 운영위 회의에서 야당 의원의 도발적 질문을 효과적으로 봉쇄하지도, 여당이 먼저 청와대에 대한 회초리를 드는 모양새로 야당 공세의 김을 빼놓지도 못했다. 일각에선 야당 시절 투사로 이름을 날렸던 강 수석이 이처럼 야당과 청와대 공방만 지켜보는 ‘구경꾼’ 여당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터뜨린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았다.
 

‘구세주는 이낙연’ 시나리오의 맹점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앞줄 오른쪽)이 11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앞줄 오른쪽)이 11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당·청 관계에서 민주당의 저자세는 구조적 원인을 간과할 수 없다. 대통령 지지율이 당보다 우위로 진행되면서 당의 대통령 의존현상이 심화된 탓이다. 특히 조국 사태로 흔들렸던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반등세를 타면서 또다시 당과의 차이를 벌리는 양상. “지지율에 목을 매는 상황에서 당·청 관계 정상화는 요원하다”는 당 관계자의 하소연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민주당 인사들은 “그래도 남은 한 방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1등 문패론’이다. 총선 국면에서 차기대선 여론조사 선호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총리를 당 간판으로 내세우면 만사형통이라는 논리. 4선 의원의 정치 경험에다 재선 전남지사와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 재임을 통해 국정운영 능력까지 검증된 이 총리가 실질적인 당 얼굴이 되면, 그 자체가 당 쇄신이라는 것이다.
 
특히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한 미래 권력이 정치 전면에 나설 경우 여권 내 헤게모니는 자연스레 그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당·청 관계 역시 최소한 균형점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구세주 이낙연’ 시나리오에도 허점은 있다. 이해찬 대표와의 역할 충돌에 따른 갈등 가능성이 그 첫째다. 특유의 장악력에다 내년 총선 승리를 통한 정권재창출을 정치 인생 역정의 마지막 소임으로 여기고 있는 이 대표로선 ‘이낙연과의 동거’는 받아들이되 ‘이낙연 당’으로 전환에는 소극적일 공산이 크다. 쉽게 말해 이 총리를 선거용 당 간판으론 적극 활용할수록, 오히려 당 대표로서의 ‘오너십’은 강화로 치달을 수 있다. 자칫 공천과 유세 등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불거질 수 있다. 두 번째 우려는 ‘이낙연 대망론’이 오롯이 그 스스로가 만들어낸 정치적 결실이냐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총리’라는 상징 탓에 모아진 열성적 ‘문팬’들의 지지가 큰 힘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청 관계 재조정 등 미래 권력으로서의 독자적 행보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초빙교수 jwhn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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