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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 발생 1호 농가 "30년·2대째 지켜온 파주 떠납니다"

중앙일보 2019.11.30 12:50
파주시 연다산동에 위치한 아프리카돼지열병 최초 발생 농장 내의 매몰지. 지난 9월 2396마리의 어미돼지와 새끼돼지가 이곳에 묻혔다. [허정원 기자]

파주시 연다산동에 위치한 아프리카돼지열병 최초 발생 농장 내의 매몰지. 지난 9월 2396마리의 어미돼지와 새끼돼지가 이곳에 묻혔다. [허정원 기자]

27일 경기도 파주시 연다산동에 위치한 S농장. 지난 9월17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수'를 뻗친 곳이다. 바닥을 어지러이 헤집은 중장비의 바퀴 자국을 쫓으니 철제 울타리로 둘러쳐진 돼지 매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2369마리의 살처분 돼지를 담은 11대의 대형 용기(FRP)는 무덤이 비좁은지 땅 위로 머리를 내놓고 있었다. 이를 감싼 흰 비닐 천과, 바이러스가 사멸하도록 뿌려진 생석회 탓에 농장은 상복 같은 흰색으로 덮였다.
 

[주말PICK] 농장주 채수용씨 인터뷰

무거운 문을 열고 돈사 안으로 들어가자 환풍구를 통해 들어오는 뿌연 빛이 텅 빈 내부를 메우고 있었다. 두 달 전까지 살아있던 돼지의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농장주 채수용(28·남) 씨는 "자식같이 키워온 돼지를 묻을 때는 차마 눈을 뜰 수가 없었다"면서 "이제 30년간 지켜온 파주 농장을 정리하고 다른 데로 옮기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채씨는 양돈 사업을 해온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은 축산 2세다. 그의 요청에 따라 인터뷰에서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그의 목소리로 그간의 심경을 옮긴다.
 

파주시 수익·위생 1등 농장, 하루아침에 2369마리 살처분

ASF 발생 1호 농가 농장주 채수용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인터뷰에서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허정원 기자]

ASF 발생 1호 농가 농장주 채수용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인터뷰에서 얼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허정원 기자]

채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9월17일 아침 일어나 매일 하던 대로 돈사 문을 열었는데 어미돼지 3마리가 죽어있었습니다. 23살 때부터 5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가 없었거든요. 한 해에 5마리 죽을까 말까 한데 하루 만에 3마리가 죽다니. 뭔가 큰일이 났다 싶었죠. 저희 농장은 파주시에서 돼지 생산성이 제일 높습니다. 어미돼지 1마리당 25마리를 출하하는데 한국 평균이 17마리거든요. 위생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중국에서 ASF가 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전용 약품을 사서 소독하고 방문자를 일일이 체크하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모두 기울였어요. 그만큼 나름대로 잘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농장을 컨설팅을 해주시는 수의사와 전화로 상의했어요. “돼지를 부검해서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부검해 장기 사진을 보냈습니다. 비장은 부풀어 있는 것 같았고요. 오후 5시쯤 동물위생시험소에서 농장에 오더니 비장과 피 등 표본을 가져갔어요. 표본을 가져간 수의사는 처음에 ‘다른 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다. ASF라고 생각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결과는 양성이었습니다. 믿어지지 않았죠.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농장에 갇힌 3주…전날 태어난 새끼 돼지도 매몰

ASF 발생 1호 농가 내 돈사. 돼지는 모두 살처분 됐다. [허정원 기자]

ASF 발생 1호 농가 내 돈사. 돼지는 모두 살처분 됐다. [허정원 기자]

“처음에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ASF가 발생한 농가다 보니 앞에 살처분 절차가 밀려있는 농가도 없었고 급속도로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확진된 순간부터 인력을 구하고 장비를 들여와서 바로 다음 날 살처분을 시작했습니다. 잠을 못 잘 정도로 바빴습니다. 바이러스가 퍼지면 안 되고 이동중지 명령이 걸리는 바람에 저는 21일 동안 농장에 갇혀 지냈습니다. 한 번 들어오면 못 나가니 정작 농장을 세우신 아버지는 농장에 와보지도 못하셨고요. 3주 동안 농장에 갇혀서 검역 담당자로부터 여러 가지 조사를 받는 것도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아버지가 25년간 양돈 농장을 운영하셔서 어릴 때부터 돼지를 접할 일이 많았습니다. 농장 일을 시작한 후에는 직원들과 매일 사료를 갈아주고 분뇨를 치워줬습니다. 어미돼지 교배시키는 것부터 출산할 때, 새끼 돼지가 젖을 뗄 때, 출하할 때까지 모든 순간을 같이 합니다. 새끼 돼지를 보면 너무 귀여워요. 자식 같죠. 그래서 돼지를 묻을 때 차마 볼 수가 없었고, 안 봤습니다. 그중에는 매몰 전날 태어나 1㎏도 안 되는 새끼 돼지도 있었어요. 어미돼지도 400마리나 됐고 다음 날이 출하인 돼지도 있었어요. 돼지를 묻을 때는 현실 같지가 않았죠. 황망하니까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매몰 작업 외노자, 자기랑은 상관없다 생각했나 봅니다”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뉴시스]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돼지를 살처분하고 있다. [뉴시스]

“매몰 작업 때는 용역업체에서 나왔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이분들은 충격을 받는 게 아니라 재밌어하더라고요. 가스 주입해서 안락사한 돼지를 놓고 사진 찍고 웃고 떠들고. 그래서 그분들과 크게 한판 싸웠죠. 불난 집에 와서 부채질하고 있으니까. 말도 잘 안 통해서 용역업체 사장님한테 '초상집에 와서 뭐하는 짓이냐. 이러면 어떡하냐'고 따졌습니다. 자기들은 그 죽음이랑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죠”
 
“저도 그렇지만 우리 직원들도 충격이 컸습니다. 용역업체에서 매몰지로 돼지를 일일이 옮길 수 없으니까 저와 직원 4명이 같이 돼지를 몰아갔거든요. 자기가 키운 돼지를 자기가 사지(死地)로 몰아갔으니까…(한동안 침묵) 파주시에서 정신적 충격이 있으니 상담치료를 권하더군요. 직원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지금은 그 순간을 안 떠올리려 합니다"
 

구제역 무덤 옆에 ASF 무덤…“파주, 북한 인접해 이사한다” 

ASF가 처음으로 발병한 파주 연다산동 농장주 채수용씨는 2대에 걸쳐 2011년 구제역 파동과 올해 ASF를 모두 겪었다. [허정원 기자]

ASF가 처음으로 발병한 파주 연다산동 농장주 채수용씨는 2대에 걸쳐 2011년 구제역 파동과 올해 ASF를 모두 겪었다. [허정원 기자]

“매몰지 옆에 또 다른 돼지 매몰지가 있어요. 2011년 구제역 파동이 있었을 때 2500마리 정도 돼지를 묻은 곳입니다. 농장 밖이 아닌 농장 내부에 돼지를 묻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다른 데로 나가면 안 되니까 그런 겁니다. 2011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했죠. 지금은 돼지를 가스로 안락사하고, 포크레인으로 떠서 통에 넣는 방식인데 그때는 살아있는 돼지를 용기도 없이 산채로 구덩이에 묻었어요. 구제역 때는 지금보다 몇 배는 정신이 없었지요. 국가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방역 체계도 안 갖춰져서. 당시에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런데 피해가 복구될 때쯤에 또 이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파주 농장을 정리하고 경기도를 벗어난 남쪽으로 옮기려고 준비 중입니다. 파주는 북한이 인접했는데 북한은 상황이 더 심각하잖아요. 언제 괜찮아지리라는 보장도 없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으니까. 지금도 멧돼지에서는 계속 ASF 바이러스가 나오고 있어요. 이 근처에서도 멧돼지를 3마리 정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소탕하더라도 다시 또 바이러스가 내려올 수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사실 지금은 일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휴식이 필요합니다”
 

농장 재구축 비용 40억~50억원…“국가 보상으로는 재기 불가”

ASF 발생 농가에는 바이러스 전염을 방지 하기 위해 생석회가 뿌려진다. [허정원 기자]

ASF 발생 농가에는 바이러스 전염을 방지 하기 위해 생석회가 뿌려진다. [허정원 기자]

“이 정도 농장 시설을 다시 구축하는 데는 평균 40억~50억원이 들어갑니다. 시설 구축 외에 어미돼지를 추가로 사는 데만 10억원 이상 들어가고요. 더 문제는 시간입니다. 어미돼지를 사서 교배하고 분만하고 젖을 떼고 출하까지 1년 반 이상 걸려요. 그럼 1년 반 동안 뭐 먹고 삽니까. 사룟값도 계속 들어가는데. 그래도 저희는 그나마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재기하기 어려운 농가가 대부분일 겁니다”
 
“제 지인 중에 30대 중반으로 연천에서 양돈을 시작한 분이 있는데, 30억 빚을 내서 얼마 전에 시작했어요. 농장을 팔아도 땅값이 낮죠. 또 ASF 발생한 지 한참 후 돼짓값이 폭락했을 때 매몰해서 보상액도 적어요. 신용 불량자가 된 것 외에 미래가 안 보이는 거죠. 국가에서는 1마리당 30만원으로 잡고 그 절반인 마리당 15만원을 보상해줬습니다. 언론에서는 정부가 농가와 협상했다고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게 대부분이에요. 매몰을 안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시 재기할 수 있게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멧돼지 ASF 바이러스 검출 32마리째…요원한 재입식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1월28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에서 ASF 관련 농가 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1월28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북부청사에서 ASF 관련 농가 간담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ASF는 지난달 9일 경기도 연천 14차 발생을 마지막으로 양돈 농장에서는 추가로 나오지 않고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북한 인접 지역 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검출되고 있다. 29일에도 파주시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 멧돼지 2마리에서 바이러스가 다시 검출됐다. 국내 야생 멧돼지에게서만 32마리째다. 
 
파주 농장을 찾은 지 이틀 후인 28일,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의정도 경기도청 북부청사에서 양돈 농가와 간담회를 열었다. 김 장관은 “접경지역 농장의 재입식(돼지를 다시 키우는 것)은 방역시설 기준을 보완한 후에야 이뤄질 것”이라며 “시설 보완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은 일정 부분 정부에서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방역시설을 강화하기 어려워 폐업을 할 경우 폐업 지원도 하도록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며 “(ASF) 재발생을 막기 위한 조치인 만큼 농가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주문했다.
 
파주=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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