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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자는 음원 사재기, 팬은 ‘스밍 총공’…차트 조작 꼼수 난무

중앙선데이 2019.11.30 00:02 663호 2면 지면보기
지난 24일 저녁 5시 40분. 유명 아이돌 가수 팬인 장유경(25)씨가 떨리는 마음으로 전자기기를 하나둘씩 켠다. 휴대폰은 물론 노트북, 태블릿PC, 잘 안 쓰던 데스크톱까지 총동원해 음원 사이트 ‘멜론’에 접속한 장씨는 저마다 다른 아이디로 로그인했다. 팬 커뮤니티를 통해 미리 지정한 노래를 6시 정각에 맞춰 재생할 수 있도록 노래 목록도 빠르게 짜놓았다. 특정 가수의 노래를 음원 차트 상위권을 올리기 위한 ‘스밍 총공’(음원 스트리밍 총공격)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장씨는 “팬들 사이에서는 스밍 총공을 전담으로 맡는 팀이 별도로 조직돼 있다”며 “멜론 차트는 가요계에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음원차트가 가수 성공 여부 좌우
순위 높아야 방송 출연도 쉬워
1위 만드는 데 3억원 ‘총알’ 필요

휴대폰·PC 등 총동원 상위권 공략
아이돌 팬 많지만 5060들도 가세

  
“신인 홍보 수단? 차트 진입 말곤 없어”  
 
음원 스트리밍

음원 스트리밍

음원 차트에 주목하는 것은 젊은 아이돌 가수 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40·50세대로 이뤄진 트로트 가수 A씨의 팬클럽 역시 팬 카페나 오픈 채팅방을 통해 주기적인 스밍 총공을 독려하는 모습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A씨는 최근 트로트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는 가수다. 디지털 서비스와 전자 기기에 익숙지 않은 중장년층도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음원 차트 변동에 나서는 모습이다.

 
음원 차트는 팬뿐만 아니라 음악 산업 종사자에게도 중요한 성적표다. 대중음악 시장이 음반에서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음원 차트가 소속 가수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멜론의 ‘실시간 top100’ 차트에 화력을 집중한다. 리서치 전문업체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멜론은 지난 8월 기준 PC와 모바일을 합한 월간 활성 이용자(MAU)수가 약 523만으로 시장 점유율 49.6%에 이른다. 15년째 업계 1위다. 멜론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것만으로 대중 홍보 효과가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셈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음원 차트를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꼼수도 나타나고 있다. 한 바이럴 마케팅 업체는 특정 곡의 스트리밍을 인증하면 상품권이나 커피 쿠폰을 증정하는 무작위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 업체는 멜론 차트에 반영되는 데이터 매뉴얼에 맞춰 이벤트 방법을 안내한다. 지정곡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가수의 노래라는 점에서 ‘차트 역주행’을 고려한 공격적 마케팅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는 “멜론 차트 순위권에 오르기 힘든 중소엔터테인먼트 위주로 마케팅 의뢰가 주로 들어온다”며 “프로그램을 통해 순위를 조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불법 순위 조작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음원 스트리밍

음원 스트리밍

최근에는 브로커를 통해 불법 프로그램으로 순위를 조작하는 ‘음원 사재기’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주요 음원 차트 1위를 만드는 데 3억원의 비용이 든다는 사실도 밝혀진 바 있다. 음악업계 전문가들은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차트 진입이 생존과 직결된 한국 음악 산업의 기형적인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방송, 행사 섭외가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나 인기가 높은 가수 위주로 짜이는 상황”이라며 “신인 가수가 500만 명 대중에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 차트 진입 외 다른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음악 방송 프로그램은 음원 차트가 높아야 출연 기회가 주어지는 대표적인 사례다. Mnet 가요프로그램인 ‘엠카운트다운’은 멜론, 지니, 벅스 음원이 방송 차트의 45%를 차지한다. KBS의 뮤직뱅크는 디지털 음원 비중이 65%에 이른다. 음원 차트가 높아야 방송 순위 차트가 상위권에 오르고 자연스레 방송 출연 섭외가 이어지는 구조다.  
 
가수들의 외부 행사 몸값도 음원 차트에 따라 책정되는 경우가 있다. 중소 규모의 행사 섭외 대행사를 운영하는 관계자는 “인디밴드나 마니아 팬층을 갖춘 가수들의 경우에는 시장 가격을 정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며 “이럴 때는 50위권은 100만원대, 박스권(100위)은 100만원 이하로 정해진다”고 말했다.

  
빌보드·오리콘은 음반 판매량이 척도

 
미국, 일본 등 해외에도 음원 차트는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음원 이용 실적이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구조는 아니다. 1940년대부터 집계해온 미국의 빌보드 차트는 음반 판매량이 기본 척도다. 음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횟수는 별도의 수치로 환산해 차트에 반영한다. 최근에는 콘텐트 소비 시장을 반영해 유튜브 다운로드 및 조회 수까지 합쳐 종합 차트 순위를 매긴다. 오리콘 차트는 실제 음반 판매량을 실적에 반영하기보다, 음반 판매 대리점과 계약을 맺은 샘플 지점의 판매량을 차트에 반영한다. 또 1위를 했다는 사실보다 몇 주에서 길게는 몇십 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는지에 의미 부여를 더 많이 한다.

 
차트 운영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다. 국내 주요 음원 플랫폼은 음원 제작사와 이해관계가 깊다. 카카오는 지난해 멜론을 인수했고 자회사 카카오M을 설립해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수 아이유가 이 회사 소속이다.  
 
지니는 지난해 CJ디지털뮤직과 합병해 CJ ENM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다. 음악제작자가 유통 플랫폼까지 장악한 탓에 소속 가수가 차트 순위에서 더 유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반면 빌보드, 오리콘 차트는 음반사와는 별개로 유통사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는 “방송 시청률처럼 현재 음반 업계가 시간대별 차트 순위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다 보니 차트 순위는 결국 음반 유통사의 수익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디지털 음원 순위가 절대적인 평가 기준으로 이미 자리 잡았다”며 “팬이나 일부 마케팅 업체가 스밍 총공 등을 통해 순위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나윤 기자, 김여진 인턴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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