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소련 해체와 베를린 장벽 붕괴는
고르바초프의 독재 포기 결단 덕
1989년 봄의 폴란드 정권 변화, 같은 해 8월 동독 여행자들의 헝가리를 통한 서독 입국은 모두 폴란드인들과 동독인들의 점진적 현실 인식의 결과다. 여행자 신분으로 동독인들이 헝가리로 몰려들었다. 당시 헝가리 총리 미클로스 네메스가 고르바초프에게 전화를 걸었고, 고르바초프는 국경을 열어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1989년 8월부터 동독인들은 자유롭게 서독으로 갈 수 있게 됐다.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는 1985년 소련 고르바초프 집권이라는 충격으로 서막을 연 대격변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② 소련 붕괴 원인은 미국의 통상 금지가 아니다: 미국은 소련 붕괴와 미국의 통상 금지 간 상관관계를 근거로 자신들이 경쟁국을 굴복시켰다고 오해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오늘날 전 세계 어디서나 모든 경쟁국들에 대해 동일한 전략(성공 사례가 없다)을 구사한다. 놀라지 마시라. 소련 패망의 원인은 단 하나, 고르바초프가 전임자인 유리 안드로포프와는 철저하게 대비되는 전략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안드로포프는 중국과 같은 시장독재를 원했던 반면 고르바초프는 계획민주주의를 원했다.
시장독재는 장기적인 작동이 가능하지만(중국에서는 상류층이 일당 체제에서 벗어나려 하는 날까지 작동할 것이다), 계획민주주의는 장기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이른 시일 내에 민영화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포프가 치명적인 종양으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소련은 지금도 강력한 일당 체제라는 견고한 독재 아래 눈부신 시장경제를 구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③ 프랑스는 독일 통일에 반대하지 않았다: 프랑수아 미테랑은 이미 1988년 가을부터 독일인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독일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사실과 독일 통일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가 콜 총리에게 거듭 이야기하는 것을 나는 직접 봤다. “독일 통일은 독일의 일입니다. 그래도 굳이 프랑스의 지지를 바란다면 선제적으로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승인해야 합니다. 오데르·나이세 국경 문제 인식, 독일 비핵화 재천명, 유로화 단일 통화 구축 참여 개시입니다.” 콜 총리는 해당 사안을 거부하거나 답변을 통일 독일의 소관으로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통일되지 않은 독일의 이름으로 저 조건들을 승인한 것이 그의 위인적 면모다.
④ 동유럽 국가들은 오늘날 유럽연합이 된 조직에 가입하려 하지 않았다: 동유럽 국가들의 목표는 단 하나, 나토(NATO) 가입이었다. 공동의 시장이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관료제처럼 보였다. 이들의 가입을 밀어붙인 것은 공동 시장 약화 목적이 있었던 미국이다.
이 모든 것을 이해해야 우리는 영리하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이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며, 결국에는 오늘날 나머지 세계에 외롭게 대항하고 있는 전 유럽의 결집을 위함이다.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