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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도 행운으로 바꾼 당찬 LPGA 새내기 전지원

중앙일보 2019.11.28 10:10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데뷔하는 전지원. 김경록 기자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데뷔하는 전지원. 김경록 기자

전지원(22)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집안 형편 때문에 넉넉한 지원은 받지 못했다. 선수 지망 다른 아이들이 가는 이른바 ‘아카데미’에 못 다녔다. 전장 70m짜리 대구 동네 연습장에서 배웠다.  
 

재능이 특출한 편도 아니었다. 중고연맹전 9등이 제일 좋은 성적이었다. 전지원은 “또래 잘 치는 아이들이 이소영, 이다연이었다. 나랑은 수준 차이가 났다. 나는 그들을 알지만 그들은 나를 모를 것”이라고 했다.  
 

치열한 한국 여자 주니어 골프 무대에서 전지원은 조용히 사라질 운명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다. 전지원은 중학교 3학년 때 인생 최고의 라운드를 했는데 마침 해외 유학이 걸린 대회였다.  
 

전지원은 “내가 이렇게 잘 치나 생각이 될 정도로 그 대회에서 컨디션이 좋았다”고 말했다. 초중고 통틀어 1등을 했고 호주로 떠났다. 영어를 못하는 소녀는 두렵기도 했지만 “큰 세상을 보라”는 아버지의 말이 힘이 됐다. 
 
호주 힐스 칼리지는 남자 골프 전 세계 랭킹 1위 제이슨 데이가 다닌 명문 국제 스포츠 학교다. 이 학교는 여자 제이슨 데이를 만들고 싶어 했다. 여자 골프 최강국 한국에서 온 전지원에게 파격적으로 3년 지원을 약속했다.
 

전지원과 전인지. 이름이 비슷한 두 선수는 올해 US오픈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고 있다. [전지원 인스타그램]

전지원과 전인지. 이름이 비슷한 두 선수는 올해 US오픈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고 있다. [전지원 인스타그램]

언어도 서툰데 수업과 숙제까지 꼬박꼬박 다 하면서 골프하기가 어려웠다. 골프가 안 되면 마음이 답답해 공부도 잘 안 됐다. 전지원은 “돌아가고 싶다고 집에 전화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겨냈고 웃으면서 졸업했다. 전지원은 장학금을 받고 미국 워싱턴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이 됐다. 그러나 입학을 앞두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전지원이 받은 이수 과목으로는 입학이 안된다는 통보였다. 전지원은 “알아보니 호주 학교 교무 담당 직원의 실수가 있었다”고 했다.  
 

이미 대학 입학 사정은 끝난 상태였다. 전지원은 2년제 대학인 데이토나비치 대학에 가까스로 입학했다. 전지원은 “급히 수소문해 페이스북에서 감독님 연락처를 찾아내 겨우 들어가게 됐다. 미국 대학-LPGA 말고는 다른 진로를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앞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데이토나비치에는 LPGA 투어 사무국이 있다. 학교와는 7분 거리였다. LPGA에서 관리하는 LPGA 인터내셔널 코스에서 팀이 훈련했다. 하늘이 오히려 LPGA 투어에 갈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고 위안했다.
 

전지원은 데이토나비치 2년 동안 미국 주니어대학 최강전인 주니어대학 내셔널 챔피언십 포함 5승을 했다. 2017년 주니어 대학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그 덕에 미국 남부의 명문 대학인 앨라배마 대학교에 스카우트됐다.   
 
그가 합류한 직후 앨라배마 대학은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전지원은 2018년 US 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했다. 지난달 열린 LPGA 투어 Q스쿨에서도 단번에 합격했다.  
 

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한 IMG 박상현 팀장은 “성적도 좋았지만 US 여자 아마추어 64강부터 세 번의 연장전 승리, 네 번의 역전승을 하는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매우 훌륭한 선수”라고 평했다.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데뷔하는 전지원. 김경록 기자

2020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데뷔하는 전지원. 김경록 기자

전지원은 “대학 입학이 취소됐을 때 골프와 마찬가지로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이겨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불운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평범하게 워싱턴 대학에 갔다면 지금처럼 LPGA 선수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가 5년 연속 신인왕을 수상했다. 2020년엔 전지원이 유력 후보다. 불운도 행운으로 만드는 그의 능력을 보면 그렇다.  
 

전지원은 “5년 후에는 세계 랭킹 1등도 찍고, 올림픽 금메달도 따고, 무엇 보다 존경받는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도움도 많이 받았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유명 선수가 돼서 팬들이 사인받으려 한다면 1km 줄 서 있어도 다 해주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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