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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스틸컷   [왓챠플레이]

경계선 스틸컷 [왓챠플레이]

[김진아의 나는 내 재미를 구할 뿐] ‘나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누구나 한번쯤 받게 된다. 특히 주위 사람들과 내가 처지가 다를 때, 내가 그들보다 못나 보일 때 크게 와 닿는다. 나의 경우도 한창 감수성 예민한 스무 살 무렵 강남 한가운데서 강남 키드들과 함께 생활했을 때 느낀 계급적 이질감, 소외감은 성격을 바꿔놓을 정도였다. 노력으로 메울 수 없는 차이 앞에서 인간은 바깥 세계와 나 사이에 셔터를 내리게 된다.

히어로인가 괴물인가
세관업무를 맞고 있는 주인공 티나는 자신과 닮았지만 다른 성격을 지닌 보래를 만난다.  [사진 IMDb]

세관업무를 맞고 있는 주인공 티나는 자신과 닮았지만 다른 성격을 지닌 보래를 만난다. [사진 IMDb]

‘경계선’의 주인공 티나 역시 그런 상태다. 티나는 해안 경비대 소속으로 세관 업무를 맡고 있다. 여객선을 통해 입국하는 승객들이 몰래 들여오는 주류, 마약 등을 걸러내는 것이 그의 일이다.

티나에게는 타고난 능력이 있다. 고도로 훈련된 마약 탐지견처럼 불안, 두려움, 죄책감, 분노 같은 인간의 감정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다. 멀리서 걸어오는 얼굴만 봐도 가방 안에 신고하지 않은 술병이 몇 개나 들어있는지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직업 선택에 있어 이보다 최적일 순 없다. 그럼에도 티나가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코 호감을 가질 수 없는 외모 때문이다.

함께 지내는 남자가 있긴 하지만 애인이라기보다 티나 집에 얹혀 사는 기생충에 가깝다.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도 정신이 맑지 않다. 유일한 낙이 있다면 맨 발로 숲을 산책하며 동물들과 교감하는 것. 일터와 집을 묵묵히 오가는 티나의 일상은 삭막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보래가 등장한다. 비호감인 생김새는 티나와 비슷하지만 보래는 자신감 없고 주눅들어 있는 티나와 달리 행동에 거침이 없다.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겁 주길 즐긴다. 티나는 그런 보래에게 역겨움과 끌림을 동시에 느낀다.

이런 기괴함 견딜 수 있겠어?
티나는 맨발로 숲을 산책하길 좋아한다.  [사진 네이버영화 ]

티나는 맨발로 숲을 산책하길 좋아한다. [사진 네이버영화 ]

2018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상한 <경계선>은 스웨덴 판타지 영화다. 독특한 뱀파이어 영화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욘아이비데 린드크리스트의 동명 단편 소설이 원작이다. 둘 다 이 사회의 소외된 자들, 아웃사이더를 다룬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하지만 <경계선>은 감정이입의 장벽이 훨씬 높다. ‘이래도 공감할 수 있겠어?’라는 식의, 보는 이들을 시험하는 듯한 그로테스크함으로 가득 찬 동화다.

여기에 비하면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쉐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형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감독과 공동각본을 맡은 알리 압바시가 덴마크에서 활동하는 이란계라는 사실을 알면 영화를 이해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세상과 티나 사이의 공고한 벽은 감독 개인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넌 완벽해”

보래에 의해 티나는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욕망을 마음껏 폭발시킨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아마도 영화 사상 가장 섹시하지 않은 섹스씬을 보게 된다. 보래는 티나에게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대로 완벽하다고 말해준다. 자신의 외모가 염색체 이상이 아닌 그 자체로 정체성임을 알게 되자 티나는 자신감과 힘을 되찾는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으로 자신을 재단하지 않는 여성은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영화 속에서 가장 에너지 넘치는 지점이다. 그렇다고 티나가 보래를 선택할까? 나를 되찾은 여자는 어딘가에, 누군가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보래를 만나며 억눌려왔던 욕망을 발산하는 티나.  [사진 네이버영화 ]

보래를 만나며 억눌려왔던 욕망을 발산하는 티나. [사진 네이버영화 ]

<경계선>에선 아동 포르노그래피라고 하는 아동 성폭력 영상이 중요한 소재로 다뤄진다. 얼마 전 미국 FBI와의 공조 하에 세계 최대 규모 아동 포르노 사이트를 운영한 한국 남성이 체포된 데 이어, 한국 고등학생이 텔레그램 채팅방을 이용, 아동 성폭력 영상을 대량 유포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20년 전에 이런 미래를 상상한 이는 드물었다.

가상현실, 인공지능… 4차 산업 혁명이 이뤄 낼 미래는 오늘과 얼마나 다를까? ‘인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 지켜야 할 것인가 버려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 경계선에 서 있다.

글 by 김진아. 울프소셜클럽 대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책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를 썼다.


제목  경계선(Border, 2018)
감독  알리 아바시
출연  에바 멜란데르, 에로 밀로노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평점  IMDb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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