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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내정 간섭" 격렬 반발에도 트럼프, 홍콩인권법 서명

중앙일보 2019.11.28 08:5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인디언 원주민 관련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다음날인 27일 트럼프는 홍콩 인권법안에 서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인디언 원주민 관련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다음날인 27일 트럼프는 홍콩 인권법안에 서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법안에 서명했다. 법안이 상원과 하원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통과한 지 일주일여만이다. 법안은 지난 19일 상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고, 하원에서는 20일 417대 1로 가결됐다. 

27일 백악관에서 법안에 서명
중국과 무역합의 노리는 트럼프
중국 반발에도 인권법안 서명

인권 침해 공권력 제재 가능
매년 홍콩 자율권 검토키로

 
로이터ㆍ블룸버그통신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거듭된 항의에도 불구하고 홍콩인권법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역전쟁을 끝내기 위한 1단계 무역합의를 협상 중이다. 양국은 전날 무역합의에 긍정적 신호가 있다고 밝혔는데, 하루새 합의가 멈춰설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된 셈이다. 
 

그간 중국은 미국이 홍콩인권법을 제정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해왔다. 이 때문에 무역합의 서명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할지가 워싱턴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인권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서에서 “나는 시 주석과 중국, 그리고 홍콩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이 법안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시 주석과 홍콩에 양다리를 걸친 것이다. 이어 “중국과 홍콩 대표들이 서로의 차이를 우호적으로 해결해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홍콩 인권법은 홍콩에서 사람을 고문하거나 임의 구금하거나 중대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 자에 대해 미국이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자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고, 미국 입국과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조치를 담았다. 
 
국무부는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충분한 자율권’을 계속해서 인정받고 있는지를 조사해 연례 보고서를 작성해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충분히 자율적인 상태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홍콩에 대한 특별 경제적 지위를 계속 인정하기로 했다. 
 
홍콩은 미국이 부여하는 무역 관련 특수 지위를 누리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예외를 인정받아 홍콩산 제품은 부과 대상이 아니다. 덕분에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도 금융 허브로서 입지를 유지해왔다. 이 지위를 계속 부여할지를 매년 심사하겠다는 게 새 법의 골자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또 다른 법안은 홍콩 경찰에 최루 가스와 후추 스프레이, 고무탄, 전기 충격기 같은 시위 진압 용품 수출을 금지했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할지 거부권을 행사할지를 놓고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끝내기 위한 1단계 무역합의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협상을 계속하고 있어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됐다.
 
지난 22일 TV 토크쇼 '폭스 앤 프렌즈' 전화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우리는 홍콩을 지지해야 하지만 나는 시 주석도 지지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는 시 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무역협상이 진전하면 홍콩 시위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홍콩 시위를 "폭동(riot)"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중국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은 홍콩을 비롯해 중국의 다른 국내 문제에 대한 간섭을 즉각 멈춰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에 해로운 결과를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토록 무역합의를 바라는 트럼프는 왜 홍콩 인권법에 서명했을까. 트럼프 대통령에게 서명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트럼프가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안은 다시 의회로 돌아가 3분의 2 찬성으로 재의결할 수 있다. 이번 표결 결과를 고려하면 3분의 2 찬성 가능성은 충분하다. 만약 트럼프가 서명도, 거부도 하지 않을 경우 법안은 12월 3일 자동 발효된다.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대통령에게 상당한 자유재량권이 있다. 트럼프는 이날 별도의 성명에서 "이 법의 특정 조항은 미국 외교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 행사를 방해한다"면서 "내 행정부는 법 각 조항을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에 따른 외교정책과 일관되게 취급하겠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 발표에 주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부과에서 일부러 시간을 끌거나, 더 나아가 제재를 부과하겠다는 위협을 무역협상에서 '곤봉'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홍콩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지역으로 남는 게 미국 국익에도 부합한다고 전했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등 미국 금융 기업을 포함해 1300개 이상 기업이 홍콩에 진출해있다.

 
전문가들은 “홍콩의 기업 친화적 환경의 수혜를 입은 미국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손해이며, 만약 홍콩이 중국 여느 항구 도시처럼 바뀌면 미국 기업은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홍콩은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50년간 일국양제를 통해 현 체제 유지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최근 베이징의 홍콩에 대한 관여가 늘면서 민주주의 침해를 우려한 홍콩 시민들이 수개월째 민주화 시위에 나섰다.
 

트럼프의 홍콩 인권법안 서명에 대한 중국 정부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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