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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 황혼이혼을 권했습니다

중앙일보 2019.11.28 07:00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87)

엄마는 70이 넘으셨어요. 요즘 70대 할머니들을 보면 아직도 건강하고 취미활동도 열심히 하시는데 엄마는 80대처럼 보여 속상합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만나서 그저 조용히, 나만 조용하면 이 집안은 조용하다고 되뇌며 아버지의 폭언을 지금까지 참고 사셨어요. 아버지는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아버지를 호방하고 성격 좋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는 늘 맨 먼저 술값 내고 인색하게 하지 않으세요. 그런데 유독 엄마에게만 구두쇠처럼 낭비한다고 항상 큰소리를 하십니다. 아버지는 정년이 없는 자영업을 하셔서 비교적 오래도록 사회생활을 하셨습니다. 술을 많이 드셨지만 그래도 그때가 지금보다 나았는데 이제 사업을 접고 집에서 하루 종일 계시게 되니 엄마가 너무 불쌍합니다.

70이 넘은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언을 지금까지 참고 사셨습니다. 엄마는 이제 얼마나 더 살겠냐고 하시지만 저는 하루를 살더라도 편히 숨 쉬고 자유롭게 사시다가 가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진 pixabay]

70이 넘은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언을 지금까지 참고 사셨습니다. 엄마는 이제 얼마나 더 살겠냐고 하시지만 저는 하루를 살더라도 편히 숨 쉬고 자유롭게 사시다가 가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사진 pixabay]

 
참다못해 제가 언니 집이나 저희 집에 가서 며칠이라도 쉬었다 오시라고 하는데 엄마는 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그마저도 못하세요. 엄마는 이제 얼마나 더 살겠냐고 하시지만 저는 하루를 살더라도 편히 숨 쉬고 자유롭게 사시다가 가셔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몇 년을 보내고 엄마가 세상을 뜨면 제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엄마를 떠올리면 항상 아버지에게 억눌려 있는 모습, 아버지의 큰 소리에 쩔쩔매는 모습, 혼자 눈물짓던 모습이 먼저 생각납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아버지도 엄마 없이 살아보셔야 엄마의 소중함을 아실 수 있겠죠. 저는 엄마에게 이혼하라고 하는데, 언니는 소극적입니다. 이혼은 답이 아니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2018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상담통계자료에 의하면 60세 이상 남녀의 이혼상담 건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특히 남성의 경우 그 증가세가 높다고 합니다. 여성의 경우 장기 별거, 성격차이, 경제갈등, 폭언, 생활무능력, 과도한 채무, 알코올중독 등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사유나 남편의 폭력 등 부당한 대우, 남편의 부정행위 순으로 상담을 요청합니다. 남성의 경우 특이한 것은 배우자의 이혼 강요도 제법 되고, 배우자의 가출과 폭력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통계청의 혼인 및 이혼 통계를 봐도 30년 이상 혼인생활을 한 후에 이혼하는 부부가 제법 됩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이른바 황혼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례자 어머니의 경우처럼 젊었을 때는 자녀들이 혹시 부모의 이혼으로 불이익을 입을까 하는 걱정에 이혼에 대해 주저했지만, 자녀들이 장성해 결혼한 후에는 자녀보다 본인의 정신적, 경제적 자유를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이혼은 아니지만 재산도 나누고 서로 간섭하지 말고 살자는 이른바 ‘졸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황혼이혼을 하는 노부부의 배후에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례자의 어머니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혼인생활을 계속하겠다고 결정하면 존중해 주셔야합니다. [사진 pxhere]

황혼이혼을 하는 노부부의 배후에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례자의 어머니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혼인생활을 계속하겠다고 결정하면 존중해 주셔야합니다. [사진 pxhere]

 
아무리 연세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혼은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례자는 그렇지 않겠지만 황혼이혼을 하는 노부부의 배후에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머니의 고통을, 아버지의 절망을 주장하지만 실은 부모가 재산을 나눠 갖게 되면 그 재산에서 지원을 받으려는 욕망이 있는 자녀들을요. 사례자의 어머니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 하더라도 본인이 혼인생활을 계속하겠다고 결정하면 존중해 주셔야죠. 그리고 사례자도 부모님의 이혼보다는 부모님께서 서로를 아껴주면서 해로하길 원할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면 어떨까요? 제 생각에 어쩌면 사례자 아버지께서 겉으로는 이혼해보려면 하라고 큰소리를 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많이 걱정하실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와 같이 계시니까 일상을 편히 사실 수 있지만, 어머니가 옆에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많이 아득해질 겁니다.
 
만약 부모님이 이혼할 경우 어머니가 가정주부로만 생활하셨다고 해도 30년 이상 혼인생활을 한 이유로 부부의 재산을 공동으로 형성했다고 인정되기가 비교적 쉽고, 재산이 모두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어도 어머니는 50%에 육박하는 기여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신다면 아버지가 변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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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구 배인구 법무법인로고스 가사·상속센터장 필진

[배인구의 이상(理想)가족] 어쩌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오랜 판사 경험을 가진 필자가 이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내용을 재구성·각색해 매주 가족 이야기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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