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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문화난장] ‘명법관’ 정약용, 법 앞에 특권은 없다

중앙일보 2019.11.28 00:32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젊은 시절 정조(正祖·1752∼1800)의 총애를 받았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다산의 개혁 사상은 실현되지 못하고 결국 희망 사항에 머물렀지만 정조라는 큰 그늘이 없었다면 온 백성이 고루 대접받는 세상을 꿈꾼 다산의 열망도 물거품으로 돌아갔을지 모른다. 전남 강진 18년 유배 중에도 다산은 숱한 저작을 남기며 나라다운 나라를 끝없이 궁리했다.
 

한국 첫 판례집 『흠흠신서』
20년 만에 새롭게 번역해
“왕족이라고 봐줄 수 있나”
임금에 직언한 다산의 뜻

다산은 할 말은 하는 실학자였다. 임금 앞에서도 바른말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흠흠신서(欽欽新書)』에 다산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국기(國紀)를 흔든 각종 사건에 대한 정조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펼쳤다. 인간의 도리, 이를 현실에 옮긴 법을 살리려면 원칙이 분명하고 절차가 공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예를 하나 들어본다. 경기도 고양에 사는 이경구가 한밤중에 몰래 이기종이 소유한 산에 부모 장례를 지냈다. 유교사회 조선에서 남의 땅에 묏자리를 내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분노한 이기종은 일가친척을 이끌고 현장에 들이닥쳐 이경구를 두들겨 팼다. 한창 멱살잡이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경구가 벼랑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정조는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많고 주범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가볍게 처리했다.
 
정약용의 애민정신을 기리는 다산문화제가 해마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에서 열린다. 지난해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된 곤장 체험 코너. [사진 남양주시]

정약용의 애민정신을 기리는 다산문화제가 해마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유적지에서 열린다. 지난해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된 곤장 체험 코너. [사진 남양주시]

‘명탐정’ 다산의 생각은 달랐다. 누군가가 크게 다친 이경구를 밀쳐서 사망 사고가 난 것으로 파악했다. 시체 검안서에 기록된 등뒤와 귀밑에 있는 상처 자국과 부러진 목뼈를 주목했다. 만약 실수로 떨어졌다면 다리부터 다치는 게 순리로 봤다. 다산은 주범이 일가 우두머리인 이기종임을 밝히고 엄한 처벌을 요구했다. 명확한 원인 규명과 일관성 있는 법 집행에 방점을 찍었다.
 
다산의 기량은 ‘함봉련 사건’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함봉련은 경기도 양주 김태명 집안의 머슴이다. 김태명이 환곡(還穀·춘궁기에 관청에서 빌린 곡식을 가을에 되갚는 제도) 납부를 촉구하는 호조 창고지기 서필흥과 한바탕 붙었다. 김태명에게 세게 맞은 서필흥은 며칠 후 숨지고 말았다. 김태명은 힘없는 함봉련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동네 사람들도 위세 등등한 김태명의 편을 들었다. 다산은 이를 10여 년 뒤에 재조사해 진상을 밝혀냈다. 유족들의 진술, 검시 기록 등을 종합해 김태명의 증거 조작을 찾아냈다. 이른바 유전무죄형 범죄였다. 정조도 이를 받아들여 함봉련을 석방했다. 요즘으로 치면 재심(再審)의 본보기쯤 된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 초상화.

실학자 다산 정약용 초상화.

다산은 특히 돈과 힘이 없는 약자들 보호에 힘썼다. 역으로 권력형 비리에 엄격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왕족·귀족의 범죄는 상민·노비들에 비해 처벌이 약한 편이었다. 예컨대 조선 초기 왕족 이백온은 자신의 여종 남편을 죽였는데, 태종은 이를 눈감아주려고 했으나 사헌부 관료들은 유배를 촉구했다. 다산은 이 사례를 들며 고관대작 범죄에 대해 비교적 너그러웠던 정조에게 예외 없는 법 집행을 주장했다. 조선 선조 때 함경남도 절도사가 관노 둘을 사사로이 죽이고도 사형을 면한 사건에 대해 “정당한 주장을 하는 신하가 없으니 조정이 텅텅 빈 지 오래”라고 개탄한 율곡 이이에도 적극 지지를 보냈다.
 
올해 저술 200년을 맞은 『흠흠신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판례 연구서다. 조선은 물론 중국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를 수집·조사·평가했다. 명탐정·명법관으로 손색이 없는 다산의 애민정신이 도드라진다. 『흠흠신서』 완역본(전 4권)이 20년 만에 다시 나왔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과 조선시대 사료·법전 전문가 이강욱씨가 꼼꼼한 주석도 달았다. 옛 번역본의 오류를 바로잡고, 글도 매끈하게 가다듬었다. 단편 탐정소설집을 읽는 듯 사례가 풍성하고 구체적이다. 드라마·영화 소재로도 훌륭하다.
 
한자 ‘흠흠’은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게’란 뜻이다.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하되, 실체적 진실은 밝혀야 한다는 다산의 뜻이다. 정경심·조국 수사, 유재수 특감 무마 논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집권층의 사법 난맥을 다잡는 기틀이 된다. 사족 하나, 조국 전 법무장관이 형사법을 전공한 이유를 인용해본다. “조선 말기 백성의 곤궁한 삶을 구제하기 위해 기존의 학문 틀에서 벗어나 실학을 추구한 선비들처럼, (내게) 형법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방책이자 책략이었다.”(『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190쪽) 이제 다시 『흠흠신서』를 공부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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