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영준의 시선] 이겨도 이긴 척 않는 게 외교라 했거늘

중앙일보 2019.11.28 00:16 종합 36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그들의 말대로라면 정말 완벽한 윈윈(win-win) 외교를 한 셈이다. 한쪽은 퍼펙트게임으로 완승했다고 하고, 한쪽은 원칙과 포용으로 판정승을 했다고 하니 말이다. 불행히도 이에 동의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외교는 이긴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는 기술”이란 금언을 남긴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외교 달인’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가 “이런 하수들 같으니…”라며 혀를 찰 일이 대한해협의 양쪽에서 펼쳐지고 있다.
 

정의용 판정승 주장 과연 맞나
승패 갈리는 운동 경기와 달리
외교는 상호 양보로 윈윈 추구

윈윈은커녕 양측 모두 루저(패자)라 해야 맞다. 지난 몇 달 동안의 소동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잃은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얼핏 일본이 승자로 보이는 측면이 있지만, 따져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한동안 휴화산이던 한국 국민의 반일감정이 폭발한 건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 발동으로 자초한 것이다. 한국인의 가슴속엔 인두로 지진 자국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을 화상이 남았고 그만큼 한·일 관계는 후퇴했다. 일본이 이겼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1년여 전 강제징용 판결 이후 벌어진 이 소동은 외교의 실패가 어떤 비용을 치르게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반면교사로 역사에 기록됨 직하다. 그러고서도 양국 관료들은 누가 이겼니 누가 졌니 유치한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으니 보기 민망할 따름이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을 대동하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비(非)외교적 발언을 쏟아부은 건 문재인 대통령의 심기를 대변한 것일 게다.  
 
2012년 야당 대선 주자이던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체결하거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길은 일본의 군사 대국화, 핵 무장화에 멍석을 깔아주는 일입니다. 세상에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상대에게 군사비밀 정보를 제공하겠다니 그런 얼빠진 나라가 있습니까. 제가 대통령이 된 후에 그 협정을 폐기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그 생각은 2017년 대선 과정에서도 변치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일본과의 군사정보 공유는 모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관된 지소미아 파기론자의 면모였다.  
 
그 발언에 모두들 지소미아 파기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틀 만에 급선회했다. 좀처럼 마음을 바꿔 먹는 법이 없다는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었다. 어려운 결심을 했건만, 상대방은 마치 문 대통령에게 KO승이라도 거둔 양 의기양양해하며 ‘퍼펙트게임’ 운운했으니 대통령은 한편으론 서운하고 한편으론 화가 났을 것이다.  
 
거기다 소신인 지소미아 파기 대신 현실론에 손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답답함이 더해졌을 수도 있다. 그런 속 타는 심정을 정 실장이 화끈한 말로 대신 표현한 것이라면 대통령의 속은 후련해졌을지 모르지만, 가까스로 만들어진 대화 분위기에는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심기관리 비서관’이라면 모를까 안보실장으로서 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설령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 해도 “앞으로의 협상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일”이라고 직언했어야 했다.
 
문제는 또 있다. 필자는 정 실장이 쏟아낸 말들 가운데 “원칙과 포용 외교로 판정승을 했다”는 발언을 가장 심각하게 본다. 엉터리 ‘셀프 채점’이라고 트집 잡는 게 아니라 승패를 나누는 발상 자체가 문제란 것이다. 외교 협상이란 게 본디 한쪽이 이기면 나머지 한쪽이 지는 운동 경기가 아니다. 서로 한발씩 양보하며 각자에겐 최선이 아니지만, 총합은 최선이 되는 길을 찾는 건 외교의 기본 중 기본이다.
 
‘상대방의 승리는 곧 나의 패배’라는 제로섬 마인드로는 윈윈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 사고의 소유자에게 ‘잠시 지는 것이 영원히 이기는 것’이라는 고차원적 전략을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아집은 ‘너 죽고 나 살자’며 치고받는 이전투구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정의용 실장이 이런 이치를 모른다 하진 않을 것이다.
 
윤도한 수석은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일본은 놔두고 한국 정부만 비판하다니 대체 어느 나라 기자냐”며 “일본 편에 선다”는 낙인을 찍으려 할 것이다. 모름지기 언론의 가장 큰 소임은 권력의 감시에 있다. 한국 기자는 마땅히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게 1차적 소임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건 1차적으로 일본 언론의 몫이다. 베테랑 기자 출신인 윤 수석이 이런 이치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예영준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