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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지소미아 사과 논란 그만, 진짜 싸움 집중할 때

중앙일보 2019.11.28 00:04 종합 16면 지면보기
유지혜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유지혜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한·일 간 ‘사과 신경전’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일본은 또 “사과한 사실이 없다”(26일 모테기 도시마쓰 일본 외상)고 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22일 발표 때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푸는 방향으로 논의하기로 합의하고선, 발표에선 이게 전제는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후 한국 정부가 불필요하게 발끈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일본을 향해 “you try me”, “계속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고 경고한 게 대표적이다.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관련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의 참모인 안보실장이 ‘한 판 붙자’ ‘거짓말쟁이’라며 경제산업성 실무자와 말다툼을 벌였다. 이렇게 했는데 안보실장 말이 안 통하면, 다음엔 대통령이 나서야 하느냐”(이정현 무소속 의원)는 비판이었다.  
 
말을 바꾼 쪽은 경산성인데, 사과를 전한 외무성을 때리는 듯한 모양새도 한국엔 이로울 게 없다. 일본 정부 내에서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쪽이 외무성인데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 명의로 사과했다”며 물밑 소통 내용까지 공개하는 건 하수나 다름없다.
 
“지소미아는 언제든 종료할 수 있다. ‘언제’는 우리가 판단한다”(조세영 외교부 1차관, 26일 외통위)는 말도 그렇다. 일본에 양보하지 않았다는 얘기인 건 알겠는데, 일본이 아닌 미국을 향한 위협으로 들릴 수 있다.
 
일본의 언론 플레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5년 11월 서울에서 2년 8개월 만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도 일본 언론은 “한국이 회담 합의문에 원하는 내용을 넣어주면 오찬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아베 총리가 ‘점심 따위로 국익을 깎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오찬을 제공하면 일정을 한국 위주로 맞춰주겠다”고 흥정을 시도한 쪽은 일본이었다. 당시에도 청와대는 격분했지만, 외교부 당국자가 한국 언론에 이같은 사실 관계를 설명하는 선에서 일단락시켰다.
 
대응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세련되게 대응하자는 이야기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일본의 언론플레이에 우리가 흥분하면 말려든다.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됐기 때문이다. 향후 협상을 통해 일본의 수출 규제 철회를 끌어내고,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선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면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상 문제까지 해결해 명분도 실리도 다 챙겨야 한다. 갈 길이 먼데 흥분부터 하면 진다.
 
유지혜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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