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명벌' 이번엔 펴졌다…제주 창진호 선원들 구한 구조보트

중앙일보 2019.11.25 15:54

숨진 선장, 배 뒤집힐 때까지 SOS 

세월호 사고 후 해양수산부가 구명벌(구명뗏목) 작동 시연을 하는 모습. 25일 창진호 선원들은 구명벌 덕분에 승선원 중 상당수가 목숨을 건졌다. [중앙포토]

세월호 사고 후 해양수산부가 구명벌(구명뗏목) 작동 시연을 하는 모습. 25일 창진호 선원들은 구명벌 덕분에 승선원 중 상당수가 목숨을 건졌다. [중앙포토]

“바다에 휩쓸렸을 때 ‘아, 이렇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고 당시에도 선장은 계속해서 구조요청을 보냈다.”
지난 19일 대성호 선박화재 사고에 이어 제주 해상에서 또다시 어선이 전복돼 선원 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이날 사고 어선에 탑승한 승선원들은 각종 구조장비 덕분에 상당수가 생명을 구했으며, 숨진 선장은 전복 때까지 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4명 탄 어선…3명 사망, 1명 실종
제주 마라도 87㎞ 해상서 전복돼
해경, 구명벌 발견해 잇따라 구조

 
25일 서귀포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5분께 서귀포시 마라도 남서쪽 87㎞ 해상에서 통영선적 어선 창진호(24t)가 전복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과 군 등은 승선원 14명 중 13명을 구조했으며, 실종자 1명을 찾고 있다. 창진호 승선원 중 8명은 한국인, 6명은 인도네시아인으로 파악됐다.
 
구조자 중 선장 A씨(61·경남)·B씨(69·경남)는 제주도의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숨졌다. C씨(60·제주)는 중태에 빠져 의식을 잃은 상태다. 나머지 구조자들은 저체온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일부는 병원으로 이송 중이다.
 
2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해상에서 승선원 14명을 태운 어선(24t)이 조업 중 전복됐다. 이날 구조된 창진호 선원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2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해상에서 승선원 14명을 태운 어선(24t)이 조업 중 전복됐다. 이날 구조된 창진호 선원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배가 넘어진다" 구명벌 올라탄 선원들

최근 11명이 실종된 대성호 사고 때와는 달리 창진호 선원들 상당수가 구조된 것은 구명벌(무동력 구명보트)과 구명환(구명부표), 구명조끼 등 덕분이었다. 이날 창진호 선원 중 4명은 어선이 전복된 직후 자동으로 펼쳐진 구명벌에 올라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나머지 선원들도 구명동의와 구명조끼에 의지해 표류한 끝에 해경에 구조됐다.
 
이날 사고 해상에 도착한 5000t급 경비함정은 오전 7시55분께 선원들이 탄 구명벌 등을 발견해 구조에 나섰다. 구명벌은 비상탈출에 대비해 어선에 탑재한 둥근 모양의 구조용 보트다. 동력원이 있는 구명정과는 달리 구명벌은 동력이 없으나 여러 명이 올라타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장비다.  
 
선원들은 이날 높은 파도와 궂은 날씨 때문에 구명벌이 펼쳐졌는지를 알지 못했으나 해경이 구조 위치를 파악하는 데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명벌은 물에 가라앉더라도 일정한 수압이 되면 수압분리계가 작동해 자동으로 펴지게끔 돼 있다. 불법 증·개축 등 각종 문제점이 드러난 세월호 사고 때는 배가 침몰했음에도 구명벌이 부풀어 오르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제주 서귀포 해상 어선 침몰 사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제주 서귀포 해상 어선 침몰 사고.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생존 선원 "아, 이렇게 죽는구나" 

창진호 기관장 D씨(39)는 “바다에 휩쓸렸을 때 ‘아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10여년 간 생활하며 함께 고생한 동료 선원이 숨져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해경에 따르면 창진호는 이날 오전 6시40분께까지 인근 어선과 교신했다. 마지막 교신 내용은 "배가 넘어질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오전 7시19분께는 사고 해상 부근에서 배가 전복되는 것을 인근 어선이 목격하기도 했다.
 
이후 현장에 도착한 해경 경비함정과 공군 헬기 등이 사고 해역 인근에서 발견한 구명벌과 해상 등에서 승선원들을 잇따라 구조했다. 현재 구조와 수색에는 항공기 9대와 경비함정 4척, 민간어선 4척 등이 투입됐다. 하지만 사고 해역에 북서풍이 초속 19m로 불고, 4m 높이의 파도가 이는 등 기상 상황이 나빠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서 제주도 해상에서는 지난 19일 차귀도 서쪽 76㎞ 해상에서 대성호에 화재 후 침몰해 승선원 11명이 실종된 상태다. 해경은 대성호 실종자 수색과 함께 창진호 실종자에 대한 구조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